리모노프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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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 인물인 '리모노프'라는 남자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이다. 소설가 정이현과 평론가 허희의 낭만 서점이라는 책 팟캐스트를 낄낄거리면서 듣다가 흥미가 생겨 읽고 싶은 도서 목록에 올려두었다가 구입해서 읽게 되었다. 다른 사람이 쓴 서평도 읽어 보았는데 좀 부정적인 내용을 읽었지만, 내가 읽어보지 않고는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빨리 이 책을 읽고 싶어졌던 기억이 난다.


개인의 기록은 그 자체로 역사라고 생각하는데 집안의 가계부 같은 것도 오래된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대의 물가를 알 수 있고 가정경제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듯이 개인이 살아온 발자취, 삶 그 자체는 시대와 함께 하는 것이라서 먼 훗날 뒤돌아 보면 개인의 사소한 기록도 (가령 일기 같은 것이라 할지라도) 역사를 알아볼 수 있는 중요한 사료(史料)가 되기도 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시간을 들여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인가?라는 생각을 했다'라는 서평을 이 책을 읽기 전에 읽었는데 다 읽고 나서 그 생각에 부분적으로 동의하긴 했지만, 누구의 삶이든 어떤 사람에게든 배울 것이 있다는 생각을 평소 갖고 있는지라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는 시간은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인물이 주변에 있다면 그 인물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그의 시행착오 속에서 그와는 다르게 삶을 사는 법을 배울 것이고, 또 존경할만한 인물이 주변에 있다면 그의 삶의 방식을 들여다보면서 이를 통해 뭔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내용도 좋지만 전체적으로 리모노프라는 인물을 잘 표현한 책 표지인 것 같다. 리모노프라는 말을 상징적으로 잘 표현한 표지. 책 표지 디자인이 잘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좋은 디자인이라는 생각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들었다. 읽기 전에는 궁금증이 이는 (호기심이 생기는) 표지고, 다 읽고 나서는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는 디자인인 듯.


나는 개인적으로 괴짜들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다. 아버지가 괴짜 기질이 다분한 사람이라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다른 사람에게 괴짜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지만. 특이한 사람이라고. 뭐가 특이하다는 것인지? 사실 모친으로부터 "내가 낳았지만 넌 참 이상하다."라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나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라 괴짜들을 좋아한다. 얼마 전에 심리테스트해봤는데 '당신은 자신이 평범하다고 생각하지만 당신은 괴짜 기질이 다분한 사람입니다.'라는 결과가 나와서 약간 놀라기도 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괴짜를 '세상을 보는 눈이 남들과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틀에 자신을 집어넣기 보다는 스스로 자신이 틀을 만들기를 좋아하는 사람. 남이 세워놓은 기준이 아닌 자신이 세운 기준대로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사람.


리모노프는 괴짜 같은 인물이다. 아니, 괴짜다. 그래서 나는 이 인물이 마음에 들었다. 여러모로 좀 특이한 사람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도 리모노프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을 집필하려 했던 것 같지만. 이 책의 저자는 이 작품 속에서 리모노프와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누며 이 책을 집필하게 된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내가 현관에 나와서야 드디어 그가 질문을 던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굳이 나에 대한 책을 쓰고 싶은 이유가 뭡니까? 」


당혹스러웠지만 나는 진심을 얘기했다. 당신이 흥미진진한 인생을 살고 있기, 또는 살았기 때문이라고. 어떤 시제(時制)를 썼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소설 같은 아슬아슬한 인생. 역사 속으로 몸을 던지는 위험을 택한 인생. 그러자 그의 입에서 나를 경악케 만든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그는 내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피식 메마른 웃음을 흘렸다.


「개떡 같은 인생이지, 한마디로.」(515쪽)

스스로의 삶에 대해 '개떡 같다'고 평가할 정도로 (리모노프는 과시욕이 강하고 명성에 매달리는 야망이 큰 인물이었지만) 객관적으로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놀랍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측면에서 에티엔 리갈의 '자기 자리를 아는 사람'이라는 리모노프에 대한 평가는 적확한듯 하다. 물론 그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는 작가에게는 모욕처럼 들렸을지도 모르겠지만. 공산주의에 대한 이야기 같은 것이 평소 내 생각과 닿아 있는 부분도 있어서 (공산주의가 나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늘 했는데 이념 자체는 좋은데 실현하기 어려워서 (너무 이상적이라) 그렇지...공산주의 이념 자체는 순수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평등한 세상? 그러나 인간의 욕심 때문에 파이를 균등하게 나눈다는 것은 실현되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파이를 모든 사람들이 균등하게 나눠 먹을 수 있다고 믿는 공산주의자들은 지극히 순진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공산주의에 대해 표현되어 있는 부분을 읽으면서 공감했다.


공산주의가 끔찍한 짓도 했다. 동의한다. 하지만 나치즘과는 달랐다. 서방 지식인들이 이제 아주 당연하게 두 가지를 동일시하는 것은 모욕이다. 공산주의는 위대하고 영웅적이며 아름다운 어떤 것, 인간을 신뢰하고 인간에게 신뢰를 준 어떤 것이었다. 그 속에는 순결함이 있었다.

리모노프는 시대의 변화와 함께 몰락의 길을 걷는다. 그는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인물이었다. 리모노프라는 인물을 통해 러시아의 시대 변화, 러시아 민중의 내면의 혼란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낭만 서점이라는 책 팟캐스트를 들으며 리모노프라는 인물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 것은 정이현 작가가 읽은 엠마뉘엘 카레르의 리모노프에 대한 다음과 같은 묘사 때문이었다.


현실에서, 나는 리모노프가 여러 번 바닥으로 추락했다고 생각한다. 여러 번 넘어지고 의지가지 없이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그토록 망가지고, 처절하게 외롭고 곤궁해도, 역정의 삶을 선택한 사람이 필연적으로 치러야 하는 대가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언제나 힘을 얻고, 언제나 털고 일어서고, 언제나 다시 전진한 것은 내가 리모노프를 존경스럽게 생각하는 점이다. (214쪽)

남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질투를 숨기지 않으며, 가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사람. 그러면서도 내적으로는 외롭고 불안해하기도 하고, 또 그러면서도 늘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멈추지 않고 희망을 놓지 않았던 사람이 리모노프인 것 같다. 위의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는 작가가 은근히 리모노프를 비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고 나서는 순수하게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함이 없는 사람은 없으니까. 리모노프라는 인물에 대해 묘사할 때 장단점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것은 독특한 점인 것 같기도 하지만 리모노프와 작가가 그런 점에서는 (남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통하는 데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원래 사람은 자신과 좀 닮은 구석이 있는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고 한다. 무의식중에 끌린다고 함. 작가는 리모노프를 있는 그대로 그리려 노력한 것 같다. 원래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가장 어려운 법이니까. 편견없이 보는 것이. 그런 점에서 높게 평가해주고 싶은 작품이기도 했다.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다. 리모노프라는 인물에 대해 궁금하다면 한 번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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