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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제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정지돈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5월
평점 :
건축이냐 혁명이냐/ 정지돈 [완독일 2015.6.2]
대상을 수상한 작품인데 정지돈 작가의 작품은 처음 읽어 보는데 (사실 한국 작가의 책을 최근에는 거의 안 읽은터라 이 책에 실린 작가들의 작품은 모두 처음 읽어보는 것이지만.) 일종의 실험소설 같은 느낌을 받았다. 텍스트를 벗어나려는 시도가 보였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짓는 것은 흔히 집을 짓는 것에 비유되곤 한다. 시를 쓰고 싶었던 '이구'라는 건축가가 이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집을 짓는 것은 이야기를 짓는 것과 비슷하지만 또 실제로 집 속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담긴다. 이야기에는 특정한 공간과 인물, 시간이 필요하다. 어떤 한 인물을 중심으로 그를 둘러싼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당긴다. 이 소설은 '이구'라는 인물이 등장하긴 하지만 이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는 않는다. 이구를 둘러싼 공간이나 건축물, 또 그를 아는 또다른 인물들에게로 끊임없이 이야기의 기둥이 옮겨간다. 그래서 사실 술술 읽히는 작품은 아니다.
이구에서 김원으로 김원에서 라스트 포에츠로 순식간에 이동하는데 이 인물들은 유기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 서로 연결되어 있는 느낌 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이야기 속에서 둥둥 떠 다니는 그런 느낌이랄까? 이 소설에도 등장하는 밤섬처럼 인물들은 서로에게 관계되어 있는듯 하면서도 관계되어 있지 않은 느낌이다.
작가는 이구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나라 건축에 부재하고 있는 '건축물에 깃든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끄집어내려 했던 것 같다. 정체성 없는 문화에 대한 이야기랄까?
새서울계백지계획을 통해 기존에 있던 것들을 지우고 (이것은 치부일 수도 있겠지) 밤섬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내치듯 감추려하고 왜곡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잘라버리는 야만적인 행위를 통해 역사를 부정하거나 왜곡하는 행위들로 인해 오히려 역사가 사라지고, 정체성의 혼란과 상실을 야기하는 건축물로 가득한 도시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로 읽혔다.
이승만과 박정희가 등장하는 것으로 봤을 때 이들이 '혁명'이라고 말하며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겠다고 한 것과 새로운 건축물이 들어서고 새서울백지계획이 등장하고 부끄러운 과거의 흔적들을 지우는 일련의 작업들로 인해 우리는 제대로 된 역사에 대한 인식을 하지 못하게 된 것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공간에는 사람의 혼이 깃든다고 한다. 영혼이 깃드는 곳이 곧 집인 것이다. 무분별한 도시계획으로 인해 집들이 사라지고 사람들이 거리로 내몰리고, 이야기가 담긴 공간이 사라진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슬픈 일이다. 혁명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무분별한 건축의 야만성과 시대의 폭력성에 대해 말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독일 수도 있지만)
서울은 육백 년이 된 수도지만 도시의 측면이나 건축의 측면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역사는 사실상 거의 없었고 이제 비로소 역사가 형성되어 과거를 회고하거나 하는 등의 태도가 생겨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서울의 현대식 건물은 흉하고 무성의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매력적인 오브제가 되었으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7쪽)
우리 모두의 정귀보/이장욱 [완독일 2015년 6월 5일]
빈센트 반 고흐가 그랬듯이 살아서는 무명에 가까웠던 한 화가의 이야기다. 이 화가의 이름은 정귀보. 고흐처럼 죽고 나서 작품들이 주목을 받게 되며 유명해진다. 이야기는 그 화가의 평전을 집필하게 된 화자에 의해 진행된다. 어떤 인물에 대한 평가가 사후에 판이하게 달라지는 광경을 우리는 종종 목도(目睹)한다. 그러나 한 인물에 대한 평가는 결코 객관적일 수 없고, 사후에 뒤바뀌는 한 인물에 대한 평가 역시 그래서 올바른 것인지, 과연 얼마나 그 인물을 올바르게 바라보고 평가한 것인지 의문을 품게 만든다. 사실 한 사람의 삶과 죽음에 담긴 의미를, 한 사람의 삶을 조명하는 일이 정확히 무슨 의미가 있는지도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고 평가되는 이들은 사후에 그 인물의 삶을 조명하는 평전이 그 이름 뒤에 남게 된다. 업적만으로 한 인간을 위대하다고 평가하고 판단하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어리석은 일인지도 모른다.
평범함 속에 숨은 비범함은 쉬이 드러나지 않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 그 사람이 한 일, 이루어놓은 성취만으로 한 인간을 제대로 평가하기란 사실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소설의 작중 화자는 정귀보의 평전을 쓰면서 '평전이 아니라 차라리 연보만으로 한 권의 책을 만드는 게 낫지 않겠는가?'(101쪽)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시간 순서에 따라 철저하게 객관적이며 확인 가능한 정보만으로 이루어진 책을 말이다.'(101쪽)
내게는 '한 사람의 손에서 마음대로 평가되는 삶. 죽은 뒤에도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고 평가되고 점수가 매겨지는 우리 모두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연도별 숫자의 건조한 나열 속에 한 인간의 처음과 끝이 정확하게 배열되는 풍경. 결국 그것이 인생이라는 것에 대한 쓸쓸한 수긍. 마침내 동사무소의 승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무엇이, 인생에는 있는 것이다. (작가노트 '정귀보의 약력과 정귀보의 몸') 104~105쪽
루카/윤이형 [완독일 2015년 6월 5일]
동성애자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동성애자의 이야기지만 외형적으로 보면 이성애자의 사랑 이야기와 그리 다르게 서술되지 않는다. 그래서 읽다가 이성애자의 사랑 이야기인가하고 착각을 했을 정도였다. 그러다 다시 앞장을 펼쳐보고 '아, 맞다. 동성애자의 사랑 이야기이지' 깨닫기도 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동성애에 대한 나의 편협한 시각을. 사랑은 본디 같은 것인데 이성애와 동성애를 나누다 보니까 그 속에서 본질이 흐려지고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구나 새삼 깨달았다.
사랑과 이별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동성애에 대한 편협한 시각과 성적 소수자를 포함한 소수자에 대한 차별에 대해, 사회적 약자의 삶에 대해 곱씹어 생각해보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참된 사랑에 이르는 길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또한 존중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작품이었다.
아무도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 세상을 살 수는 없다. 언제나 누군가의 뼈는 상한다. 깨닫기는 했으나 나는 모른척하고 싶었다. (119쪽) [루카, 윤이형]
근린(近隣)/최은미 [완독일 2015년 6월 5일]
카메라를 들고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관망하는 자세로 누군가를 관찰하며 써 내려간듯한 소설이었다. 그래서 일상적인 풍경이 낯선 풍경으로 변모하는 순간에 맞닥뜨리게 되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우연들이 겹쳐서 어떤 사건으로 귀결되는 순간을 우리는 현실에서 종종 목격하게 된다. 그러한 인과관계를 '우연의 겹침'을 통해 응집해 놓은 소설을 현실에서 만나기란 매우 어렵다. 우연의 나열은 소설가를 무능하게 보이게 하며 허구의 세계에서는 설득력을 잃어버리며 그 힘을 잃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사소한 순간들이 겹쳐 하나의 결말(사건)을 향해 나아가고 귀결되는 이 소설의 사실적인 묘사에 입을 다물 수 없었던 것 같다. 인생이란 본디 그런 것이 아니던가.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만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해서 어제까지 멀쩡했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지기도 하는 것이...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연결되지 못하고 각자 하나의 점으로 떠 있는 현대인들의 소외된 일상과 고독, 서로를 소외시키는 사회적 관계를 잘 표현한 작품인 것 같다.
산에서 내려오자 부채꼴 광장에는 여자들이 앉아 있었다. 중년 여자는 그들이 조금씩 이상한 여자들이라고 생각했다. 레깅스 여자는 집에 들어가서 편히 자지 않고 왜 공원에 나와서 자는지 이해가 안 됐다. 아이 엄마는 얼굴에 이미 우울증 중증 상태가 나타나 있었다. 바깥에 꼬박꼬박 나오는 걸 보면 어떻게든 버텨보려는 생각이 있는 것도 같았지만 또래 아이들이 나오는 오후가 되면 여자는 아이를 데리고 사라졌다. 나란히 앉아 있는 여자 노인 셋은 한 계절씩 돌아가면서 서로를 따돌리는 사이였다. (180쪽) [근린(近理), 최은미]
조중균의 세계/김금희 [완독일 2015년 6월 6일]
조중균의 세계를 읽으면서 필경사 바틀비가 떠올랐다. 조중균과 바틀비는 어쩐지 닮은 구석이 있는 인물처럼 느껴졌다. 원칙대로만 사는 것을 고수하는 조중균. 그는 성실하지만 사회에서 인정 받지 못하고 소외되는 인물이다. 약간 유머러스한 작품이기도 해서 처음에는 웃으면서 읽었는데 다 읽고 나서는 눈물이 약간 났다. 조중균의 세계, 수많은 조중균들의 그 쓸쓸한 세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문장과 시와 드라마는 있지만 이름은 없는 세계, 내가 간신히 기억하는 한, 그것이 바로 조중균씨의 세계였다. (232쪽) [조중균의 세계, 김금희]
임시교사/손보미 [완독일 2015년 6월 7일]
제일 재미있게 읽었던 작품이다. 임시교사 출신인 P부인이 중산층 가정의 보모로 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P부인은 헌신적으로 자신이 보모로 일하게 된 가정의 아이를 돌보고 알츠하이머에 걸린 노부인까지 보살피지만 결국 그녀는 쫓겨난다. 그녀는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헌신적으로 일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사회적인 냉대 밖에 없었다. 임시보호자로서의 역할에 그치지 않고 그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으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 자리를 알지 못한다는 이유로, '보모'의 신분을 망각했다는 이유로 내쳐진다. 이 소설의 해설에 등장하는 것처럼 영화 내니 다이어리를 연상케하는 작품이기도 했다. 임시교사는 임시에 머무를 수밖에 없고, 보모는 아무리 다정해도 엄마가 아닌 보모일 수밖에 없다. 그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던 P부인은 결국 일자리를 잃게 된다. 보이지 않는 유리벽과 차별, 우리가 스스로 선을 그어 놓은 것들. 그 선 바깥에 무엇이 서 있는지. 선 바깥의 삶과 보이지 않는 계급주의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사는 건 그런 거지. 그녀는 생각했다. 아, 괜찮을 거야. 언젠가 마치 끈 하나를 잡아당기면 엉킨 끈이 풀어지듯이 잘못된 일들이 고쳐질 거야. P부인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잠들기 위해 눈을 감았다. 잠들기 위해 눈을 감는 건, 생각보다는 언제나 쉬운 일이었다. (276쪽) [임시교사, 손보미]
여름의 정오/백수린 [완독일 2015년 6월 7일]
이 소설은 사실 좀 재미가 없었다. 섬세한 감정을 잘 표현한 작품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개인적으로 내 취향의 소설은 아니었다. 사랑과 이별의 풍경을 섬세하게 묘사한 작가의 필력은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소설로서의 재미는 좀 덜했던 작품이었다.
어디에도 미래가 없다면 차라리 자기 나라에서 사는 게 낫지 않아? 이방인으로 평생 사는 건 외로운 일이야. 내 말에 짧은 침묵을 두고, 그가 말한다. 자기 나라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것보다 더 외로운 일은 없어. (301쪽) [여름의 정오, 백수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