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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와 나오키 1 - 당한 만큼 갚아준다 ㅣ 한자와 나오키
이케이도 준 지음, 이선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6월
평점 :
한자와 나오키.
처음 책 제목을 보고는 우리나라 김진명 작가의 '글자전쟁' 처럼 한자와 일본어와의 관계를 다룬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자와 나오키가 사람 이름이라는 것을 안 순간 피식했다. 나의 추리란ㅠ.
그럼 어떤 소설이지? 금새 호기심이 발동하여 책장을 넘겼다.
Banker! 은행원? 그럼 혹시 이번에 모 방송에서 은행을 주제로 했던, 몇주간 은행이 이렇게 무서운 곳인가하고 흥미롭게 시청했던, 모뱅커의 원작인가해서 찾아보니, 그건 노다 시게루 만화가 원작이었다.
이케이도 준이라는 책 표지 중앙 왼쪽에 있는 저자명이 눈에 들어온다. 나의 눈썰미란ㅠ.
그럼 어떤 내용일까? 한층 더한 궁금증에 조바심이 났다. 당한만큼 갚아준다는 소타이틀도 한몫했다. 뭘 당했고 갚겠다는 것인지.
그렇게 책을 거침없이 넘겼다. 런닝타임 3시간.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 모르게, 정신없이 읽었다. 읽었다는 표현보다는 그냥 한편의 드라마, 영화를 본 것 같았다.
한자와 나오키라는 인물, 그 주변인물, 시대 상황, 은행이라는 조직, 갈등, 해결 과정 등등. 모처럼 흥미진진하게 재미있게 잘 쓴 소설을 만난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닌게, 책 마지막 페이지에 <2권 계속>이라는 글자를 보는 순간, 책 맨 뒤쪽 겉표지를 급히 찾아봤다. 몇편 이 더 있는지 궁금해서였다. 시리즈 '4'! 4라는 숫자를 보는 순간 이런 흥미로운 내용을 앞으로도 3편을 더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뭔가 앞으로 재미와 희망의 느낌이 충만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느낌을 들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이책은 좋은 책이다.
이책은 1편만 읽어도 재미있다. 1편에서 갈등과 해결이 나오기 때문이다.그러나 2편도 궁금하게 만든다. 2편 소타이틀이 복수는 버티는 자의 것이라고 되어 있고 마지막 부분에 과거 회사가 어려웠을 때 매몰차게 등을 돌린 나오키가 다니는 이 은행의 '염병할 은행원'에게 원수를 갚아달라는 나오키 아버지의 말로 짐작컨데 2편은 1편의 연장선상에 있음이 틀림이 없다.
나오키 아버지가 뒤끝이 있구나.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나오키도 뒤지지 않는다. 그렇다 나오키는 뒤끝이 장렬하며, 난 나오키의 뒤끝이 마음에 든다. 승자가 패자에게 아량을 배푸는 것이 우린 미덕이라고는 하지만, 결말은 훈훈할지 모르지만 뭔가 허전할 때가 많다. 그렇게 당하고도 용서라니.. 그런데 나오키는 그렇지 않다. 한편으로 고집스럽고 영웅스럽지 않게 찌질하리라 만큼 뒤끝 장렬이다. 그러나 속은 후련하다. 권선징악? 우리의 바램대로 세상은 권선징악이 아니기에 소설에서만이라도 그랬으면 하는 나의 바램과 맞아 떨어져서인 것 같다. 그래서 2편 복수도 기대된다.
너무 수다를 떨었는데 그럼 이제 이 소설은 어떤 내용인지 아주 조금만 살펴보자.
이야기는 한자와 나오키가 일본의 대기업 은행에 취업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수재들만 가는 일본의 SKY급 대학교에 들어간 나오키.
평소 아버지의 영향으로 은행원이 되고 싶어했고, 똑똑한 머리와 사람들을 돕는 은행원이 되겠다는 꿈이 어우려져 일본 제일의 은행에서 강제로 모셔가는 행운을 누리며 입사를 하게된다. 그러고는 시간이 훌쩍 넘어가 어느 덧 나오키도 과장이 된다. 입사할 때의 꿈은 사라지고 평범한 직장인의 모습으로 말이다.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꿈은 무엇이었는지, 어디에 두었는지 잊어버린채 삶에, 돈에,일에 쫓겨 하루하루 버티는 인생. 나오키도 그랬다.
더구나 때는 일본 경제의 거품이 꺼진 90년대. 은행도 살아남기 어려운 시절. 어디서 들어본 상황이다. 데칼코마니처럼 우리나라도 그랬다. 가끔보면 일본이 뭐든 좀 앞서가는 것 같다. 좋던 싫던.
그래서 더더욱 현실에 안주해야 먹고 살 수 있는 그때, 부장의 지시로 급하게 처리한 한차례 이상한 대출 건에 나오키가 휘말리면서 갈등이 전개된다. 어떻게 문제의 실마리를 풀고 결말이 나는지는 꼭 읽어 보시기를 권한다.
도저히 풀 수 없을 것 같은 정말적인 상황에 처한 나오키의 애처로운 모습에서 우리를 볼 수 있고, 작지만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집념에서 실타래가 하나씩 풀리기 시작할 때는 앞으로 우리에게도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포기하지 말라는 무언의 용기와 희망을 주는 것 같다.
이 소설은 읽다보면 일본과 우리의 공감되는 부분들이 자주 등장한다.
일본의 90년대 초 거품 경제는 90년대 말 우리 IMF와 2000년 초 IT 거품을 거치며 많은 기업들이 도산했던 그 시절이 겹쳐온다. 언제나 승승장구할 것 같았던 은행들도 대출 기업들의 도산과 함께 같이 무너지던 그시절. 도산은 오너나 그 가족과도 같았던 직원들에게 온 세상이 무너지는 것과 같았으리라.
일본 조직문화, 은행에서 근무해 보지 않아 정확히 어떤 조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상명하복, 모략, 따돌림 등 사람 사는 곳은 여기나 거기나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지금은 좀 달라졌다고 하지만, 직장에서 상사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만 했고, 공은 상사의 것이고 과는 부하 직원의 탓으로 돌리는 상황도 인내할 수 밖에 없었던, 누구나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불합리, 불공정에도 앞으로의 삶과 처자식을 위해 숙명처럼 감내했던 모습들.
그러나 우리 나오키 과장은 조금 달랐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 하고, 부당한 건 부당하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군대와 같은 조직 문화에 길들여진 사람이라면 이렇게 말하고 행동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나오키 과장이 마음에 들었나보다.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대신 해준 것 같은,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나 할까?
무엇보다 불의, 부당한 상황이 만연해 있는 요즘. 누군가 잘못을 했어도 상식적이지 않은 결과로 흘러가는 것이 솔직히 정신적으로 힘들고 지친다. 그렇다보니 정통 활극처럼 사회 부조리를 뚫을 수 있는 인물이나 사건이 나오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만큼 우리 사회도 아직 건전하지는 않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일까?
마지막으로 이 소설은 은행, 경제에 대한 다양한 상식을 제공하고 있다. 은행과 경제 관련 용어는 듣기만 해도 어려운데, 어떤 상황에서 사용되고,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알려주다보니 은근 경제 상식도 올려주는 것 같다.
이 소설은 570만부의 일본 베스트셀러이며, 2013년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50.4%의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다고 한다. 7년만인 올해 시즌 2가 나올 것이라고 해서 많은 시청자들을 기대에 들뜨게 하고 있다. 글을 읽는 것만으도 보는 듯이 실감나게 잘 표현되어 있는데, 드라마 제작은 화면에 잘 옮겨만 놓아도 되니 땡잡은거다.^^(개인적인 생각)
결론적으로 이 책은 재미있다. 거기에 더해 더 좋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내가 하는 일부터, 작은 부조리라도 맞서 분노하고 바로 잡으려는 시도가 언젠가 우리 아이들이 공정하고 깨끗하게 꿈을 펼칠 수 있는 미래의 텃밭을 만들어 줄 수 있다는 희망을 꿈꾸는 독자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