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구가 아프다
니콜라이 슐츠 지음, 성기완 옮김 / 이음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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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20쪽 정도의 짧은 소설이다. 파리에 사는 화자가 불면과 불안, 심장 두근거림, 육체피로를 겪는다. 왜냐하면 자신의 온갖 행위가 환경을 박살낸다는 생각 때문이다. 고통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화자는 포르크롤이라는 섬으로 떠난다. 그리고 섬에서의 경험을 통해 지구가 처한 문제를 더 서술해나간다. 말미에 다시 배를 타고 돌아오면서, 바다 위 화자는 한 가지 깨달음을 얻게 된다.

 

책에서 화자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환경을 파괴하는 괴물 내지 지구의 불청객, 골칫덩이 취급한다. 환경 파괴의 온상과 무너져가는 지구의 현주소를 고발하면서도, 그 날카로운 화살은 '아무개'로 가정되는 일반 대중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향한다. 거기에 더해 화자는 유약한 인상을 준다. 시종일관 울렁거리고 통증이 있다며 머리를 부여잡고, 미끄러운 배 위에서는 휘청거린다. "실제적인 것들, 기술적이고 물질적인 것에는 젬병"(123쪽)이라는 자기성찰과, 뱃일을 똑바로 수행하지 못해 친구이자 뱃사람인 '빅터'의 한숨 어린 포기를 부추기는 행태도 그렇다.

화자는 시대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파악하는 '지식인' 같아 보인다. 그러나 그는 120쪽 내내 적극적인 실천이나 행동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자기가 인식한 지구 속 문제들을 나열하고, 그 중심에 선 골칫거리 '나'를 고백하는 것이 그가 하는 일이다. 그러니까 『나는 지구가 아프다』의 화자는 '인식하는 자'이지 '행동하는 자'가 아니다. 이론에만 빠삭하고 쓸모있는 일이라고는 할 줄 모르는 화자에 비하면 빅터와 폴이라는 뱃사람들은 모터의 힘 없이 바람의 힘만으로 배를 움직일 수 있는 능력자들이다. 화자가 깨달음을 얻고 독자들을 향한 선언 격의 마무리를 하게 되는 곳은 그들의 영역인 '배 위'다.

박진감 넘치는 바다와의 협상 끝에 바람에 배를 맡기게 된 그때. 배는 더 세차게 요동치지만, 왜인지 화자의 마음은 더 평온해진다. 화자는 비로소 자연이 나를 그냥 흔들게 두는 것, 내가 몸담은 공간과 나의 관계를 계속 질문하는 것, 소통과 외교를 통해 그 수많은 갈등과 수난을 극복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마주한 문제의 해결법임을 이해한다.

이 책은 환경 문제에 관한 한 예민한 감각을 지닌 화자의 여정이다. 그리고 이 여정은 저자만큼 예민한 감각을 지니지 못한 모든 이들에게, 화자가 ‘스스로에게 겨눈’ 위태로운 화살과 그가 겪은 ‘흔들림’을 체험시키는 과정이다. 다시 말해, 기후 위기를 통감하는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가며 독자들은 전지구적 문제를 맞닥뜨리게 된다.

평생에 한 번도 환경 보호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지구가 아프다』는 인류세 속 우리가 당면한 선택의 기로에서 취해야 할 자세를 선택할 수 있게 돕는 지침서다. 동시에, 저자는 문제는 인식하지만 실제적인 기술이 없는 사회학자로서, 모든 평범한 지구인들에게 '행동'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은 주제에 대한 강력한 은유와 문학적인 장치로 긴장감을 유지해낸다. 또, 환경 문제에 대한 시야를 넓혀주면서도 앞으로의 행동에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는 책이다. 청소년들이 읽어도 참 좋겠다. 다양한 사람들이 비교적 편안하게 환경 파괴와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을 가진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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