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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공부 - 자기를 돌보는 방법을 어떻게 배울 것인가
엄기호 지음 / 따비 / 2017년 7월
평점 :
우리 사회 문제의 근원은 교육에 있다.
대한민국은 사건 공화국이다. 눈만 뜨면 새로운 논란이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사회적 문제엔 다양한 원인과 배경이 있다. <공부공부>는 문제의 근원을 우리가 받아 온 교육, 우리가 해온 공부에서 찾고 대안을 제시한다.
올해 치러진 공무원 7급 한국사 시험문제가 논란이었다. '본조편년강목', '사략', '고금록', '제왕운기' 등 고려 후기 역사서를 시간 순서대로 배열하라는 문제였다. 변별력을 높이기 위한 지엽적인 문제였다고 해도 도가 지나쳤다는 것이 수험생, 강사, 학계의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변별력의 핵심은 떨어뜨리는 데 있다.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그걸 제대로 배우고 익혔는지 확인하는 데 있지 않다. (중략) 많은 시험이 여전히 ‘변별력’을 중심으로 출제된다. 학교 공부뿐만이 아니다. 대다수의 고시는 변별하기 위해 시험을 내고, 사람들이 열심히 공부할수록 변별이 힘들기 때문에 더 어렵고 쓸모없는 문제를 낸다. p.51
2010년 서울에서 열린 G20의 폐막 기자회견 때 미국 대통령 오바마는 마지막 질문권을 주최 측인 한국기자에게 주었다. 장내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중국 기자가 일어나 아시아를 대표해서 질문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기자들에게 질문을 요청했다며 거부 의사를 표하자, 중국 기자는 직접 한국기자들에게 자기가 질문해도 되는지 물어보자고 한다. 다시 한번 한국기자들에게 질문할 기회가 돌아갔지만, 손을 드는 사람은 없었다.
한국의 학교는 모르는 이의 용기를 환대하고 자리를 내어주기는커녕 박대하고 조롱한다. (중략) 대다수 학생은 초등학교 때부터 질문을 했다가 타박을 받은 경험이 있다. 교사로부터 “도대체 너는 수업 시간에 집중 안 하고 뭘 들은 것이냐?”라는 봉변을 당하기도 하지만, 쉬는 시간에 동료 학생들로부터 “에, 넌 그것도 모르냐?”라는 면박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함부로’ 질문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운다. 입을 다물게 되는 것이다. 이런 모욕의 경험은 절대 질문을 하지 않게 만든다. p.209
대한항공 자매의 갑질도 논란이다. 회의 중에 자신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한 광고팀장 얼굴에 물을 뿌렸고, 이륙 중이던 비행기 안에서 마카다미아를 서비스 매뉴얼대로 제공하지 않았다며 사무장과 여승무원을 무릎 꿇리고 비행기를 회항시켰다. 재능과 같이 개인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불공정하고 불평등하게 갖게 된 것들을 바르게 사용하지 못해 생긴 일이다.
좋은 사회란 주어질 수 있는데 주어지지 않은 것을 평등의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보정하는 사회다. 좋은 사회란, 사회만 훌륭하고 그 사회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은 별 볼 일 없는 사회가 아니라 그 사회의 구성원 하나하나가 훌륭해지는 것을 공공선으로 삼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만일 신분이나 재산, 성별 등에 의해 불평등하게 주어지거나 주어지지 않은 것 때문에 누군가 훌륭해 질 수 없다면, 그건 더 이상 훌륭한 사회일 수 없다. p.228
공부의 목적은 효력을 다했다.
책에서는 공부의 목적이 1990년대를 기준으로 ‘신분상승’과 ‘자아실현’으로 나뉘며, 금융위기 이후 ‘생존’으로 변화했다고 말한다. 공부가 이제 신분상승과 자아실현의 도구가 되지 못함은 현재가 증명하고 있다. 오늘날 성과 중심 경쟁 사회에선 아무리 노력해도 생존할 수 있는 수는 너무나도 미약하다. 끊임없는 노력이 탈락의 근거가 될 뿐이다. 공부의 목적이 효력을 다했기 때문에 이토록 많은 사건·사고가 일어나는지도 모르겠다.
앞 세대는 공부를 통해 성공도 하고 사회도 바꾸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에는 공부를 통해 생존을 도모할 수 있는 극소수의 학생을 제외하면, 사람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기제로서 공부의 목적은 그 효용을 다했다. P.115
工夫와 共扶, 공부의 쓸모
책 제목인 <공부공부>는 工夫와 共扶다. 앞의 공부는 우리가 알고 있는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힌다'는 의미이고, 뒤의 공부는 '함께 돕고 베푼다'는 의미다. 우리의 공부(工夫)가 공부(共扶)로 전환해야만, 내 삶도, 교육도, 사회도 바뀔 수 있다고 저자는 얘기한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발견하는 진로 교육보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내 삶을 돌볼 수 있는가’를 생각하고 발견할 수 있는 전환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이것을 ‘자아실현’에서 ‘자기에 대한 배려/돌봄’으로의 전환이라고 제안한다.
물론, 가장 먼저 전환되어야 하는 것은 이 사회다. (중략) 아침부터 저녁까지, 요람에서 무덤까지 자아실현이라는 이름으로 성공을 강요하며 구성원 대다수를 패배자로 몰아가고 있는 이 ‘발전 중심의 사회’를 전환하지 않으면 우리 삶 전체가 끝장날 수 있다. P.134
살아남기만도 벅차고, 먹고살기 바쁜 각자도생의 시대, 대학 입학이 최고의 성과인 제도교육, 끊임없이 노오력하는(죽자고 노력하는) 자기계발을 권하는 사회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공부共扶는 큰 힘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공부를 통해 한계, 능수능란함, 자유, 탁월함, 멋짐, 향유와 같은 새로운 기쁨을 느낄 수 있다면 공부야말로 삶을 살아가는데 가장 쓸모있는 것이 아닐까?
사람은 배움으로써 이 두 가지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세상의 법칙을 알고 목적에 맞게 잘 사용하는 선용을 넘어, 그것을 변용함으로써 사람은 자유로워지고 창조의 기쁨을 누린다. 창조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능수능란한 기예를 배우고 익히며 연마하는 과정이 바로 공부다. 한편, 인간은 창조하지는 못할지라도 여전히 공부를 통해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누릴 수 있다. 창조하고 향유하는 삶, 이것이 멋진 삶이며, 멋지게 사는 것은 삶의 목표이자 공부의 쓸모다. p.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