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한 존재들 - 결함과 땜질로 탄생한 모든 것들의 자연사
텔모 피에바니 지음, 김숲 옮김 / 북인어박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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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는 사전에 종이에 계획을 그려둔 공학자나 건축가라기보다 그 당시에 필요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멋진 임기응변의 재능을 지닌 땜장이다.”


책의 부제가 ‘결함과 땜질로 탄생한 모든 것들의 자연사’다. 여기서 ‘결함’은 ‘불완전함’을, ‘땜질’은 ‘진화’를 의미한다. 저자는 불완전함이 ‘진화적 가능성’의 원천이라고 설명한다. 완벽하다면 더 이상 변화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불완전함을 둘러싼 여러 법칙 가운데 ‘재사용의 법칙’은 이미 존재하는 구조를 재사용하기 때문에 최적화되지 않은 구조가 자연에서 매우 흔하게 나타날 수 있음을 설명한다. ‘푸바오’ 덕분에 우리에게 친숙한 판다는 원래 육식동물이었지만 진화를 거친 현재는 초식동물로 하루 종일 대나무를 먹는다. 판다는 변화된 환경(기후변화로 인한 먹이 부족)에 적응하기 위해 대나무를 주식으로 삼기 시작한다. 판다는 육식동물의 소화기관(간단한 위장과 짧은 소장)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식습관과 생활습관을 바꿨고(끊임없이 엄청난 양을 먹고, 에너지를 아낌), 대나무를 맨손으로 잘 잡기 위해 손목의 작은 뼈인 종자골을 엄지손가락으로 재사용했다.


또 ‘붉은 여왕의 법칙’은 환경이 우리보다 빠르게 변할 때 우리는 진화적으로 뒤처지게 되고, 그 결과 틀에서 약간 벗어나거나 불완전해짐을 설명한다. 몇천 년 만에 식량은 많은 인류에게 ‘부족하고 불확실한’ 것에서 ‘풍부하고 늘 존재하는’ 것으로 변한데 반해, 고대로부터 천천히 진화한 미생물군과 대사 과정이 이에 잘 적응하지 못해 우리는 ‘비만’이라는 불완전한 상태를 맞이하게 됐다.


DNA가 불완전함을 포용한 결과, 우리는 쓸모없는 특징을 계속 지니게 된다. 자연선택은 생존과 번식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쓸모없게 된 특성을 그래도 둔다. 제거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에서다. 우리 유전체에 있는 대부분의 DNA 정보는 집안에 저장해 두는 쓸모없는 물건인 잡동사니(junk, 정크)에 해당한다. DNA 정보 중 약 1~3%만이 실제 유전형질 발현에 관여한다. 우리 유전체가 지금 당장 쓰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쓸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는 정리정돈 못하는 사람, 나를 닮은 구석이 있어 웃음이 났다. 진화의 세계에서는 당장은 쓸모없는 DNA(정크 DNA)에서 새로운 기능을 끌어낼 수도 있으므로, ‘쓸모없음’은 혁신의 원천이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5-6장은 인간의 진화에 대해 설명한다. 과거 뇌의 크기와 지능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고 오래 전부터 뇌의 크기를 키우는 방향으로 진화가 진행됐을 거라 추정해 왔다. 하지만 최근 발견과 연구를 통해 인류 역사 중 3분의 2에 해당하는 시간(약 400만년) 동안 인간은 작은 크기의 뇌(오늘날 우리 뇌 크기의 3분의 1)를 가지고 살아왔음이 밝혀졌다. 뇌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늦게 커지기 시작했으며, 뇌의 크기가 지능의 유일한 진화적 지표가 아니란 이야기다.


저자는 ‘걷기’를 가장 불완전한 혁신이라 표현한다. 인류가 이족보행을 하게 된 이유를 (두 다리로 서서) 먼 곳에 있는 포식자 찾기, 체온조절 등과 연관지어 설명한다. 인간은 직립보행을 하면서 손과 팔이 자유로워져 도구도 사용할 수 있게 됐지만, 동시에 좌골신경통, 탈장, 평발과 같은 부정적인 결과도 함께 떠안게 됐다. 다만 도구 사용(석기 기술)이 뇌가 커지기 시작한 시점보다 100만년 이상 앞섰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한 고고학자는 이를 멋지게 한 문장으로 표현했다. “인류의 역사는 위대한 두뇌가 아니라 훌륭한 발에서 시작했다.”


책에 최근 연구 결과까지 반영되어 있어 유전과 진화에 대한 새로운 지식과 이슈들을 많이 학습할 수 있었다. 특히 다양한 연구사례, 저자의 적절한 비유와 문헌 인용, 사진과 그림은 진화생물학 이론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책은 두껍지 않은 편(276쪽)이지만 그 안에 많은 양의 지식과 생각할 거리를 담고 있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을 감명 깊게 읽으셨거나 평소 진화생물학, 유전학, 과학철학에 관심이 많은 분들은 꼭 읽어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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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장미꽃향기(@bagseonju534) 님, 독서여인(@vip77_707) 님을 통해 북인어박스(@bookinabox21)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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