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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컬러 명화 수록 무삭제 완역본) - 명화와 함께 읽는 ㅣ 현대지성 클래식 63
알베르 카뮈 지음, 유기환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4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는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사유를 담은 작품이지만, 현대지성에서 출간된 이번 판본은 단지 문학적 감동에 그치지 않고, 예술과 철학, 시대정신을 함께 아우르는 새로운 독서 경험을 선사해주었어요. 클림트, 뭉크, 시슬리 등 삶과 죽음을 주제로 한 명화 15점이 소설의 주요 장면과 조응하며 배치되어 있어서, 감정의 밀도를 높여주고 묵직한 메시지를 시각적으로도 전달해줍니다. 단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느끼게’ 해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특별했어요.
소설의 무대는 알제리의 오랑이라는 도시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수많은 쥐가 나타나 죽고, 뒤이어 사람들에게 정체불명의 열병이 퍼지면서 도시는 순식간에 폐쇄돼요. 닥터 리외를 중심으로 한 인물들이 이 끔찍한 전염병과 싸워나가는 과정은, 우리가 겪었던 코로나19 팬데믹의 혼란과 닮아 있어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습니다. 생사를 오가는 공포, 무기력, 불신, 그리고 그 안에서도 인간다움을 지키려는 노력들이 익숙하게 느껴졌고, 그 속에서 우리도 결국 '페스트의 시대를 살았던 이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카뮈가 이 작품을 통해 전하려 했던 ‘부조리’에 대한 시선이었어요.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괴로워하고 질문하지만, 답은 없고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는 것. 그 사실이 오히려 삶을 더 치열하게 살아야 할 이유로 다가왔습니다. 리외가 말하듯 “인간은 패배하게 되어 있다 해도 싸워야 한다”는 메시지는, 단지 병에 맞서는 태도를 넘어 우리 삶 전반에 대한 태도이기도 했어요.
책에 함께 실린 명화들은 그런 감정의 결을 더 깊게 만들어주었어요. 클림트의 <죽음과 삶>은 죽음 앞에서도 이어지는 인간의 사랑과 욕망을 은유처럼 표현해주었어요. 문학과 미술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니, 한 편의 서사시를 읽는 듯한 감각이 들었어요.
[페스트]는 단순한 전염병 소설이 아니었어요. 그것은 우리의 삶, 태도, 그리고 인간다움에 대한 치열한 탐구였고,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다시금 돌아보아야 할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런 질문을 오랫동안 곱씹게 만들어주는, 깊고 아름다운 매개체가 되어주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