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쇼몽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61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김영식 옮김 / 문예출판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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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이기만 한 타인의 백과사전- 라쇼몽, 덤불 속>

 




  세상을 평가하는 기준에는 크게 상대평가와 절대평가 두 기준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라쇼몽과 덤불 속은 상대적 기준에 따라 달라지는 인물들의 행동을 보여준다. 먼저 라쇼몽에서 백성은 먹고 살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도둑질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시체의 머리를 뽑는 노파를 만나게 된다. 백성은 노파의 행동을 보며 분노를 느끼지만 노파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자신이 머리를 뽑은 시체의 부정당했던 행동을 근거로 들며 자신을 정당화시킨다. 이러한 노파의 태도 앞에서 백성 역시 도둑질이라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시키며 노파의 옷을 훔쳐 달아난다. 도둑질이라는 것은 절대적 기준으로 보면 당연히 하지 말아야할 그른 일이지만 노파는 죽은 여인에게, 백성은 노파에게 비추어 자신들의 행동을 상대적으로 평가하며 극악무도한 일을 행하게 된다. 이렇듯 상대적이기만 한 타인의 백과사전을 평가의 잣대로 들이댄다면 이는 주관적인 개인의 백과사전보다 훨씬 불공정한 평가기준이 될 수 있다.

  덤불 속은 화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사건이 어떻게 왜곡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상대적 기준의 위험성을 라쇼몽보다 더욱 잘 드러내준다. 덤불 속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에 대하여 도적, 여인, 남편은 각자 자신의 기준을 드러내어 사건 정황을 설명한다. 포청의 심문에 대한 나무꾼, 노파 ,행려승, 나졸들의 답을 종합하면 어느 정도 전반적인 사건의 윤곽이 드러난다. 하지만 남편의 시체가 있던 덤불 속 안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절대적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도적, 여인, 남편은 각자 자신들의 백과사전에 따라 사건을 진술한다. 하지만 상대적이기만 한 타인의 백과사전은 진실을 규명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사건을 더욱 미궁 속으로 빠지게 한다. 모두가 각자의 기준에서 자신의 명예를 높이기 위한 발언을 할 뿐 진실은 알 수가 없다. 누구의 말도 진실이 될 수 없고 누구의 말도 거짓이라 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덤불 속 인물들의 진술에는 절대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비록 포청이 그들을 심문하고 있지만 포청은 사건을 위에서 바라보는 절대자가 아니라 그 역시 하나의 개인으로서 사건을 바라보기 때문에 상대적 진술을 종합시키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라쇼몽의 서두에서도 언급되었듯이 라쇼몽과 덤불 속은 당시 혼란스러웠던 일본의 사회상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사회적 법규와 도덕기준들이 무너진 상황의 일본은 공황상태에 빠져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절대적 기준이 무너지자 상대적 기준이 난무하기 시작했고 세상은 점점 더 아비규환의 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사람들의 양심은 무뎌지고 모두가 자신만의 백과사전을 기준으로 개인의 목소리를 내세우는 상황에서 진실은 점점 자취를 감추었을 것이라 예상된다. 자신의 백과사전이 옳은 것처럼 여겨지지만 이를 타인과 비교해보면 그 역시 상대적이기만 한 타인의 백과사전일 뿐이다. 이런 면에서 라쇼몽과 덤불 속은 상대적 기준의 위험성의 단면을 보여주며 모두의 목소리만 높인다고 해서 정의롭다는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결국 상대평가와 절대평가 두 가지 기준 중 하나의 목소리만 높이는 것은 치명적 결점이 있음을 드러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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