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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보이
엘리엇 페이지 저자, 송섬별 역자 / 반비 / 2023년 10월
평점 :
#페이지보이
근래 읽고 있고, 마음을 움직이는 에세이는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사회적인 메시지가 있는 이야기들이다. 페이지보이도 그러하다. 엘리엇 페이지. 엘렌 페이지 이름으로 영화 주노에서 배가 볼록한 아기를 가진 소녀의 포스터가 생각이 나고, 영화 인셉션에서 보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2014년 커밍아웃을 하고, 2020년 트랜스젠더로 또다시 커밍아웃을 했을 때에도, 있을 수 있는 일 특히나 헐리우드에서는. 이라며 크게 놀라지 않았던 기억도 떠올랐다.
가십의 일부로 나와는 관계없는 먼 나라의 먼 사람의 이야기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혐오의 시선은 없었지만, 나와 다른 세상에 있는 그 사람들의 삶과 사랑이 호기심의 대상이기는 했었다. 어떤 마음이고, 느낌일까 정도의 얕은 호기심.
엘리엇이 스스로를 알게 된 건 네 살 때라고 말한다.
‘나는 내가 여자가 아니라는 걸 애초부터 알았다. 의식적으로 안 게 아니라,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의미에서였다. 그 감각은 내가 가진 가장 오래된, 그리고 선명한 기억 중 하나다. (35쪽)
여자의 몸으로 남자로 살아간다는 것을 가늠할 순 없지만, 책에 토로한 그의 가장 많은 말들이 공포, 공황, 가혹, 외로움, 괴로움, 고통. 더 이상 부정적일 수 없이 부정적인 감정들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아무것도 모르면서 얕은 호기심에 그들의 삶을 구경하고 싶었던 마음이 부끄럽고 미안함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고의가 아니더라도 이런 시선조차 상처가 될 수 있을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서 사회에서 엘리엇과 또 다른 엘리엇들은 숨 쉴 수 없이 힘든 삶들을 살아가고 있었다.
다른 LGBTQ+와 다르게 사람들 앞에 드러내야 하는 배우로 엘리엇은 개인의 삶에서 하고 있는 연기를 스크린 앞에서 또 하는 압박과 영화계에서 추방될 수 있는 두려움과 우울 속에서 고통스러워했다. 스스로를 수치스러워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두려워했던 그가 용기 내어 자신을 밝힐 수 있었던 건 살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
‘도저히 언어를 찾을 수 없었지만, 찾았다. 마치 그 말들이 스스로 내 몸속에서 꿈틀꿈틀 대다가 쏟아져 나온 것만 같았다. 내 몸은, 내 몸속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었다. 무언가가 바뀌었다. 지금이 아니면 영영 안 되는 것이었다. 죽기 아니면 살기의 문제였다.(291쪽)
그리고 그는 커밍아웃을 했다.
그는 그동안 몸에 찰싹 붙게 입었던 원피스 수영복과 스포츠 브라를 벗어버리고, 가슴 제거 수술을 한 상처를 드러내 보이며 웃고 있는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공개했다. 그를 옥죄고 있었던 모든 것들을 벗어난 기쁨일까? 활짝 웃는 미소가 아름다웠고 안심이 되었다.
‘나’. 세상에 하나의 우주인 나, 자기 자신으로 살고자 하는데, 이토록 많은 용기와 시간과 고통이 따랐다. 나라는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투쟁하고, 증명해야 했다. 어쩌면 또 다른 엘리엇들에 비해 그는 많은 운이 따랐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그 자리에 있기에 개인적인 의무감과 사회적인 책임감을 느끼며 용기 있게 세상에 나왔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기꺼이 누구나 사랑을 경험하고, 삶을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엘리엇 페이지의 용기 있는 고백은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모두의 아름다운 삶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