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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신화 ㅣ 千년의 우리소설 14
김시습 지음, 박희병.정길수 옮김 / 돌베개 / 2024년 12월
평점 :
고전 소설을 찾아 읽는 편임에도 한국 고전 소설들을 부러 찾아 읽진 못했다. 고전하면 유명한 외국의 소설들이 금 떠오르는 반면, 우리의 고전 소설들은 잘 모르는 탓일 것이다. 학교 다닐 적 교과서에서 소설 제목과 지은이, 내용과 의의를 외우고 시험을 치던 일만 생각이 났다. 끽해야 춘향전, 허생전, 별주부전 등이 생각이 날까. 비단 나만의 경험일 것 같진 않다. 천년의 우리 소설 시리즈, 김시습의 <금오신화>를 옮긴 박희병 작가님도 외국의 빼어난 소설이나 한국의 흥미로운 근현대소설을 이미 접한 오늘날의 독자가 한국 고전소설에서 감동을 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며, 우리 것이니 무조건 읽어야 하는 애국주의적 논리는 통하지 않는다는 간행사를 쓰셨으니 말이다. 하여, 21세기의 한국인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새로운 한국 고전소설의 레퍼토리를 재구축하려는 시도로 천년의 소설 총서는 시작되었다.
김시습의 <금오신화>는 총 5개의 단편소설 - 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 취유부벽정기, 남염부주지, 용궁부연록- 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만복사저포기와 취유부벽정기, 이생규장전은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이다. 애절하고 안타까운 사랑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짧은 하룻밤에 서로의 대화를 통해 시를 주고받으며 이루어진다. 짧은 시간에도 그들의 깊은 애정과 교감은 사무치게 다가온다. 마치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고전이다 보니, 한자어가 많이 나오는데, 이로 인해 내용이 어려울 것도 같으나, 주석을 친절하게 페이지마다 덧붙여주어 함축된 내용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 준 것도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였다.
하지만, 단순한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것이 이 책의, 고전의 매력일 것이다. <금오신화>를 지은 김시습이 살았던 시대적 배경과 함께 생각해 보면 작품이 보여주는 외연적인 내용 안에 작가가 말하고 싶어 하는 메시지를 알 수 있다. 김시습은 조선 세종 17년 1435년에 태어나 신동 소리를 들을 만큼 한시를 잘 지어 세종대왕에게 ‘나중에 내가 이 아이를 크게 쓰리라’는 칭찬을 듣기까지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스물한 살, 과거를 준비하던 중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한 소식을 듣고 3일을 통곡을 하고 책을 불살라 없애며, 미친 척하며 방랑을 한다. 관직에 있지도 않았던 김시습이지만, 세종의 아들, 단종에 대한 절의가 남달랐으며, <금오신화>는 단종을 향한 절의를 미학적으로 보이고,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에 대해 비판한 문학적 의의가 있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부당하게 얻어진 현 정권에 목숨을 걸고 대항하는 작가였던 김시습. <남염부주지 : 남쪽 염부주 이야기> 속에서 나오는 염라대왕과 박생과의 대화는 내란으로 어지러워진 작금의 상황에도 매우 맞아떨어진다.
-나라를 소유한 자는 폭력으로 인민을 겁박해서는 안 되오. 인민이 비록 두려워하며 따르는 듯 보이지만 속으로는 반역할 마음을 품어 시간이 흐르면 큰 재앙이 일어날 것이오
-덕 있는 자는 힘으로 군주의 자리에 나아가서는 안 되오. 하늘이 비로 자상히 말을 해 사람을 깨우치지는 않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일로써 보여 주거늘, 상제의 명은 지엄하다오. 대개 나라란 인민의 나라요, 명이란 하늘의 명이라오. 천명이 이미 떠나고 민심이 이미 떠나면, 비록 몸을 보전하고자 한들 어찌하겠소?
국가의 주인은 군주가 아닌 인민이며, 왕위가 (무력으로) 찬탈된 상황에서 선비는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김시습이 던진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외국의 유명하고 멋지다 평가되는 여러 소설만큼이나 우리 고전 소설 또한 그 시대의 말과 멋이 살아 있다는 걸 이 책을 읽고 다시금 느꼈다. 고전은 한자의 해석에 따라 이본이 많은 만큼 좋은 번역 또한 고르는 데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한국고전에 있어 길이 남을 한국고전문학사를 쓰신 한문학과, 국문학과 교수이신 박희병 작가님과 돌베개의 합작품인 천년의 우리 소설 시리즈는 추천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덧붙여 <금오신화> 와 함께 한국고전문학사 강의 2권의 13장 세조의 왕위 찬탈에 대한 문학적 대응들 편을 함께 본다면 김시습의 생각과 작품에 더 깊이 빠져들어 만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