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공간에서 너를 그린다 - 세월호참사 10년, 약속의 자리를 지킨 피해자와 연대자 이야기
세월호참사 10주기 위원회 기획, 박내현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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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힘이세지

10년이 지났다. 2014년 4월 16일 둘째를 9개월째 품고 있을 때,
외출길에 마주한 긴급 뉴스. 커다란 배가 침몰하고 있었고, 어떡해 하며 마음을 졸이고, 전원 구조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심하고, 볼일을 보았다. 하지만, 그 기적 같은 이야기가 오보였음을. 집에 돌아오는 길에 핸드폰을 붙잡고, TV를 켜놓고 제발 살아돌아오길 울며 기도했다. 안타까움과 가라앉는 배를 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망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울며 기도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마음 한 켠에 자리 잡은 미안함. 안타까움이라는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아픔이 우리 모두에게 새겨진 날.

10년이 지난 지금도 4월이 되면 그날이 떠오른다. 바다에 잠겼던 세월호는 뭍에 나와 있지만, 여전히 참사의 진상은 규명되지 않았고, 또 다른 참사들이 잇달았다. 그럼에도 자신과 같은 비극을 겪지 않아야 한다는 다짐의 피해자 유가족과 생환자는 여전히 싸우고 있다. 글로, 그림으로, 극, 영화, 노래 등 문화적인 방식으로 시민들에게 다가가는 사람들이 있으며, 봉사를 통해 아프고 지친 이웃들을 보듬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삶이 '기억의 공간'을 중심으로 여기에 모여있다.

<기억의 공간에서 너를 그린다> 책은 세월호 참사 10주기 사업으로 기획되어 오마이뉴스에 2023년 12월부터 2024년 2월 중순까지 '세월호 참사 10년의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두 달 보름간 연재한 글을 묶고 다듬은 것이다.

목포신항만에 7년째 세월호는 인양되어 정박되어 있지만, 정권이 바뀐 지금은 붕괴 위험이 있단 이유로 출입조차 통제되어 있다. 인양된 세월호에서 희생자의 흔적과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자료들조차 그간 정부가 아닌 유가족들이 하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시간이 10년이 흘렀고, 희생자와 그 가족들은 남고, 관계자들은 무죄에 형량 없음으로 풀려나 없었다.

인천가족공원에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이 있었다는 사실 또한 책으로 알게 된 사실이다. 단원고 학생들의 수많은 안타까운 죽음에 일반인 희생자는 뭉뚱그려 기억하거나 존재 자체를 잊고 있지 않았나.

가방에 멘 노란 리본이 어쩌면 양승미씨가 만들어주신 것일 수도 있겠다.

"저는 평범한 주부예요. 노란 리본을 10년 동안 만들었어요."-P149 양승미

손이라도 보태려고 시작한 노란 리본 만드는 일이 벌써 10년이 되었다. 안양에서 처음에는 일주일에 사흘, 그다음은 거의 매일을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을 오갔다. 그렇게 만든 리본은 뉴욕, 호주, 캐나다로 이국에서 추모하는 이들의 가슴에도 매달려 빛을 내었다.

<기억의 공간에서 너를 그린다> 책을 읽는 중 북토크 소식을 들었다.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덜지 못하더라도, 매번 집회에 나가지 못했지만, 찾아가지도 못했지만, 노란 리본을 가방에 달고, 읽고, 보고, 기록하며 간절한 작은 힘을 보태고 싶었다. 그렇게 50 여명의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그날을 기억하고, 가슴에 담았다. 북토크 중에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지만, 세월호 글자만 알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질문이 있었다.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한다고 신정임 저자가 답해주었다.
이 간절한 마음들이 가닿아 모두가 꿈꾸는 안전한 세상이 되길.

잊지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기억은 힘이 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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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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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산타인 한 소녀가 있다. 크리스마스 즈음은 물론 언제나 다른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선물을 전해주는 엄마는 늘 바쁘다. 내가 학교에서 언제 발표회를 하는지 무슨 일이 있는지 알지도 못할 만큼.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려 해도 선물 상자들 때문에 안된다 하고, 놀러 가자고 해도 다음에 라고만 하기 일쑤이다. 요즘 친구들은 산타를 믿지 않아서 일본에서는 산타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엄마의 이야기에 산타가 없어지면, 엄마는 한가해져서 나랑 놀아주고 사랑해 주려나? 은근히 기대하는 작은 어린 나를 본다.
나는 외롭고, 쓸쓸하고, 서운하고, 속상하다.

아이들과 책 수업하던 <허둥지둥 산타가족>의 내용의 일부이다. 교재로 편집해 읽어서 뒤 내용을 아직 모른다. 나와 엄마는 서로 서운하고 미안한 마음을 이해하고 화해를 했겠지?

수업 준비를 하려 책을 읽고, 교재 내용을 살피며 원도를 떠올렸다. 책을 읽다 덮어도 생각나는 사람. 원도. 혼자 두고 싶지 않아 다시금 책을 펴고 끝까지 찬찬히 그를 읽어 내려갔다.

세상 모든 게 궁금하고 질문이 많았던 아이 원도. 수많은 질문 만큼 수많은 대답을 거절당한 원도. 엄마가 아니면 그 무엇도 아니었던 아이 원도. 하지만 다른 아이들과 노인들을 살피느라 있지만 곁에 늘 없었던 어머니.
만족스럽다 한 마디를 남기고 원도 눈앞에서 죽어버린 아버지와
엄격한 규율과 냉정한 태도로 원도를 바라본 살아있는 새아버지.
그리고 어느 날 원도의 인생에 불청객으로 나타난 장민석. 원도가 있어야 할 가져야 할 모든 것을 빼앗은(빼앗겼다 생각한) 원도의 삶의 이유이자 죽음의 이유가 되었던 그. 원도는 혼자였다.

삶의 고비고비를 넘어 죽음을 실패하고 모든 걸 잃고 홀로 찬 겨울밤 피를 토하며 걷는다.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지만, 일어나 걷고 또 걸으며 묻는다.

왜 사는가.
이것은 원도의 질문이 아니다.
왜 죽지 않았는가.
이것 역시 아니다.
그것을 묻는 당신은 누구인가.
이것이다. _p.240


사랑받기 위해 처절히 애쓰고, 저항하고, 사는 이유가 죽지 않음인 원도의 모습이 마치 나의 어느 모습과도 닮아서 그냥 그를 이해하고 싶었다. 원도가 살아 앞에 있다면 그저 꼭 안고 나의 온기를 나누어주고 싶었다. 왜 사는가. 왜 죽지 않았는가는 원도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의 개정판으로 다시 독자들에게 선보인 <원도>이다. 사랑이 필요하다는 외침은 살고 싶다는 외침과도 같다. 원도를 통해 우리네 삶과 죽음, 구원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난 혼자요 하고 말하자 여인숙 주인이 숙박부에 그렇게 적었다.
이 추운 겨울밤.
_고바야시 잇사

원도 책 머리에 나온 문장이다. 책을 다 읽고 이 문장을 다시 읽으니, 원도가 너무도 선명히 다가온다.

나 혼자요.
원도가 대답한다._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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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블루칼라 여자 - 힘 좀 쓰는 언니들의 남초 직군 생존기
박정연 지음, 황지현 사진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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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에게는 당연한 것들도 여성은 스스로 목소리를 내 쟁취해야 한다. 애초에 세상은 남성으로만 돌아간 것 같이 남성 중심 문화, 산업들 속에서 투쟁하며 살아간다. 전업주부나 육아를 담당하게 된 남자들에게는 아내가 돈 잘 벌어 좋겠다는 부러움 혹은 자상하다는 긍정적 시선과 함께 무능한 건 아닌지(경제적으로) 정도의 불편한 시선이 오가는 것 같다. 남성이 어떻게 여성 고유 영역을 침범할 수 있는가에 대한 분노 어린 시선은 보지 못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소위 남성의 영역이라 여기는 건설 현장, 화물업에서 일하는 블루칼라의 여성 노동자들에게 불편한 시선과 대우는 당연한 듯 여겨지고 스스로 맞서 싸워야 한다.

남성이 대다수인 소위 남초 직군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있을까? 라는 질문에서 <나, 블루 칼라 여자>책은 출발하였다. 건설 현장, 화물업, 자동차 정비 등 거친 현장에서 오늘도 열심히 하루를 마치며 일했을 10인의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남성의 영역 안에서 차별받고, 무시당하고,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같은 동료로 인정받기 위해 울고 소리치고 달래며 싸워야 했던 이야기들.

전업주부로 살다 가정 형편상 일을 시작해야 했던 지나씨는 자신의 유일한 기술인 운전을 활용해 화물차 운전을 시작했다. 하지만, '초보', '여성'이라는 편견이 따라붙으며 같은 초보임에도 여성에게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어렵게 취업을 하고 생계를 위해 일을 했지만, 마치 놀러 나온 사람처럼 대하고, 자기를 동료가 아닌 '여자'로 바라보며 선 넘는 행동과 편견에 정면으로 맞섰다. 내는 낸데! 나는 그저 나, 여자로 당당하게 행동하고 열심히 일하는 지나씨는 현재 화물연대 부산 서부지부 지부장으로 일을 한다._화물 노동자 김지나


회사 구조조정으로 해고당한 뒤 지인의 권유로 발전소 아르바이트를 하다 용접사를 시작하게 된 신혜씨. 당시 신혜씨가 있던 충남 서산에는 여성 용접자가 한 명도 없었다. 주위의 부정적인 시선과 우려를 딛고 용접을 시작했지만, 기회조차 없었다. 여자라는 이유로, 용접사가 아닌 조공으로 일당을 적게 받고 일을 시작했다. 용접사들 사이에선 용접 불꽃이 눈에 튀어 화상을 입었을 때 모유를 짜 넣으면 괜찮아진다는 속설이 있었는데, 신혜씨보고 '니 젖 좀 짜줘라' 라는 성희롱을 받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선 바로 사과를 요구하고 받았다. 잊지 못할 일이지만 하루 이틀 지난 뒤 안에서 작은 일로 만들었다.
_플랜트 용접 노동자 김신혜

현장에서 가장 힘든 일은 생각지 못했던 화장실이었다. 그렇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가장 당연한 일. 여성용 화장실을 요구하는 것조차 투쟁이었던 그녀들.

이런 첫 번째 지나씨, 신혜씨가 남초 직군에 한 명 한 명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성역은 무너지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벽은 낮지 않다. 일터에서 이루고 싶은 꿈과 목표가 원하는 만큼의 노동을 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이다. 남편에게 눈치 받지 않고 돈을 스스로 벌 수 있음이 당당하고 든든하다고 말한다. 당연히 누려야 하는 것들이 여성에겐 꿈과 목표가 되고, 돈을 버는 일이 아닌 이유로 집안 노동을 하는 전업주부들의 보이지 않는 그림자 노동은 가치를 멸시 당한다.

인터뷰 그대로의 대담이 실려 있어 읽고 있지만, 듣는 듯 생동감을 주었다. 황지현 사진작가의 인터뷰이들의 생생한 표정 사진이 생동감을 더함은 물론이다.
내가 지금 당연하게 여기는 투표할 수 있고, 학교를 다닐 수 있고, 일을 할 수 있는 것들은 이처럼 편견과 차별을 뚫고 눈물을 훔치며 독하게 나아가는 10인의 언니들 같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을 했다. 남들의 시선보다 내 스스로의 결정과 신뢰를 믿고 오늘도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그녀들을 보며 나 또한 내 삶의 부조리한 것들에 맞설 용기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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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말들 - 시간 부자로 살기 위하여 문장 시리즈
조현구 지음 / 유유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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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말들

요즘같이 정확히 올해 24년 2-3월 같이 하루하루를 책과 시간과 투쟁하며 보낸 적이 있을까 싶다. 아이들 방학이 지나면 조금 여유가 있을까 했는데, 새로 시작한 일이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면서 새 학기 이벤트와 사업 등록이 맞물리고 함께 부수적인 잡일들과 매주 매주 새롭게 준비해야 하는 수업들, 새롭게 시작되는 나의 학과 공부들이 한꺼번에 몰아치니 아침에 눈을 떠서 늦은 밤 실신하듯 잠이 들고 깨길 반복이다.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시간이 더 필요해! 하는 울부짖음. 어느덧 책이 쉼이 아닌 일이 되어 버렸지만, 그럼에도 책으로 하는 일을 할 수 있음은 다행한 일이라면서 스스로를 다독이며 보내었다.

어려서부터 남이 정해 놓은 시간에 나의 시간을 맞춰야 하는 것이 싫어 시간표 없는 삶이 장래 희망이었던 조현구 작가.
현재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프리랜서 직업으로 희망을 현실로 만들었다. 시간을 보내는 것'(낭비하는 것)과 시간을 '갖는 것'(축적하는 것)의 차이를 느끼며 '시간의 말들'을 찾아 나선다.

보아야 할 책이 쌓여 있지만, 1도 보기 싫을 때, 쉬엄쉬엄 한 꼭지씩 쉬며 보았던 책이다.
한 손에 가볍게 들기 좋은 사이즈와 무게, 재생종이로 만들었다는 것 또한 기분 좋게 자주 읽을 수 있었던 책의 매력이다. <시간의 말들>은 100가지의 시간에 관한 책 구절 혹은 유명하거나 작가에게 인상 깊었던 문구에 대해 쓴 에세이이다.

100가지의 이야기가 200여 페이지에 담겨 있어 글의 내용은 길지 않지만, 매 꼭지 꼭지마다 형광펜 줄과 다시 확인하고자 붙인 플래그가 한가득이다. 아름다워서 외우고 싶은 문장들로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고, 여러 짧은 글 안에 시간에 대한 단상이 유쾌하게 때로는 진지하고, 깊이 생각하고 책장을 넘기도록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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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에는 시간을 자연적으로 분할하는 수많은 문자반이 존재하며, 저마다 모양새가 다른 수많은 그림자들이 시간을 가리킨다._헨리 데이비드 소로, <소로의 문장들> 박명숙 옮김, 마음산책 2020

... 오밀조밀한 자연과 삶의 흔적들이 제각각이면서도 시계부속품처럼 정밀하게 조화를 이룬다. 이런 풍경 위헤서 햇빛은 시침이 되고 골목에 드리운 그림자는 분침이 되고 그 사이로 흐르는 바람은 초침이 된다._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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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저녁 7시 40분과 8시 사이의 마법. 차원의 틈. 그 틈에서 새어나와 지상에 번져가는 시간의 색'_허은실 <내일 쓰는 일기> 미디어창비, 2019

... 묘박지(배들이 정박하는 장소) 너머 수평선으로 해가 넘어가는 붉은 시간은 심장을 간지럽힌다. ... 그곳에서 세상 가장 아름다운 노을과 매일같이 만나고 황홀하게 이별한다.'_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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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는 낮이든 밤이든 어느 시간에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예술이다._홀브룩 잭슨, <애서가는 어떻게 시간을 정복하는가><<천천히 스미는>> 봄날의책, 2016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새로 산 신간의 첫 페이지를 드디어 여는 순간, 이 시대 생각의 흐름과 마주하는 그 순간은 늘 두근두근 황홀하다. 그야말로 휴일의 아침이 예술이 되는 순간이다.'_p63

100가지 이야기에 각기 다른 시간에 대해 언급한 수많은 책들을 보는 재미도 또한 이 책의 매력이다. 고전, 소설, 에세이, 자기 계발 등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소개하는 책들을 보며 또 한껏 읽고 싶은 책들을 메모해 놓았다.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고, 시간을 가지고, 축적하며 시간 부자로 살기 위해 오늘도 바쁜 우리들이 읽어보면 좋겠다. 덕분에 읽는 동안 나의 정신없던 시간들도 그저 흘려보내는 시간이 아님을 깨닫고 즐겁게 하나씩 파이팅 할 수 있게 되었다. 손에 닿으면 바로 읽을 애장도서가 모인 침실 책장에 <시간의 말들>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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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오래 산다 - 30년 문학전문기자 생애 첫 비평에세이
최재봉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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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오래산다

34년 7개월. 한 사람이 나고 자라 어엿한 성인이 되는 긴 시간.
문학 전문기자로 한 회사에서 마무리 퇴직까지 마친 최재봉 기자의 근속연수이다.

같은 일을 30년 오래 할 수 있어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었다며 편집인의 제안으로 문학 기자 30년 동안 쓴 기사를 책으로 엮어보았다.

<이야기는 오래 산다>는 이렇게 작가의 30년 긴 세월 함께 한 이야기와 함께 한다. 의미 없는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런 이야기를 대표하는 것이 문학이라고 책머리에 밝혀두고 있다. 문학사가 있기 전에 문학이 있었듯, 퇴직 후에도 이야기, 문학은 오래 살아갈 것이라는 말도 덧붙이며 말이다.

여러 기사 중 <밤이 선생이다> 산문집을 내었을 즈음 황현산 작가(당시 고려대 명예교수)와의 인터뷰 기사가 인상적이었다.
(밤이 선생이다. 이 책을 인상 깊게 보아 더 그러했나 보다^^) 책이 나올 당시 문인들 사이에서 '필독서'로 회자되며 '완전소중 황현산'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많이 읽히고 인기를 모으고 있었다.

최근(그 당시) 문단에서 벌어지는 시의 정치성 논의 또는 문학과 현실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 황현산 작가는
"실제 현실에서는 구체적으로 정치적이어야 하지만, 작품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라 함은 인간 존재의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작지만 오래 영향을 주어서 인간 자체를 바꿔 놓는 것을 말한다. 문학의 역할이 바로 그런 것이다." 답한다.

저자 또한 문학기자로 오랜 세월을 보내며 문학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음을 이야기한다.

'이제 문학의 영향력은 예전 같지 않아보인다. 종이신문 역시 생존의 기로에 놓여 있다. 같은 활자 매체로 문학과 산문은 어쩌면 같은 운명을 지녔는지도 모르겠다'._p25

문학의 본질과 역할에 대해서는 칼럼 코로나 시대의 문학 중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에서도 인용된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판매가 급증했다고 한다. <페스트>가 당시 코로나 사태와 유사하고 얻을 수 있는 교훈도 여전함을, 문학은 여전히 힘이 있음을 느껴본다. 페스트 의사 리외가 이 글을 쓰게 된 까닭은 설명하는 문장,

'입 다물고 침묵하는 사람들의 무리에 속하지 않기 위하여, 페스트에 희생된 그 사람들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기 위하여, 아니적어도 그들에게 가해진 불의와 폭력에 대해 추억만이라도 남겨 놓기 위하여, 그리고 재앙의 소용돌이 속에서 배운 것만이라도, 즉 인간에게는 경멸해야 할 것 보다는 찬양해야 할 것이 더 많다는 사실만이라도 말해 두기 위하여, 지금 여기서 끝맺으려고 하는 이야기를 글로 쓸 결심을 했다.(김화영 옮김)
이 문장은 문학의 본질과 역할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담고 있다. 문학은 발언이며 증언이고 추억이라는 것,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에 대한 찬양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그것이다.'_p218

작가와 작품, 칼럼, 인터뷰, 쟁점과 인물, 서평, 부고로 5부로 이루어져 문학의 이모저모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옛이야기를 듣는 것 같이 흥미로웠고, 책 속의 책들을 찾아보며 이야기들이 이어져 주위에 책들이 하나 둘 쌓으며 보았던 책이다.

문학의 역할, 문학의 현재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과 함께 작가들과의 만남, 다수의 책들 또한 생각할 거리와 함께 읽는 즐거움을 더해 주었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 자리에서 묵묵히 문학과 함께해 준 덕분에 긴 이야기들은 생명력을 얻어 읽는 우리에게 또 다른 이야기를 전해준다. 이야기는 그래서 이렇게 오래 살아가 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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