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행복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병률 지음 / 달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번에도 예약을 해서 구입했다. 그만큼 또 알게모르게 나는 작가의 책을 기다렸나보다. 전작 '혼자가 혼자에게를 읽은게 2019년 9월 이맘때였으니깐 3년만에 펴낸 신작이었다. 알라딘 서점 에세이 담당 MD님은 이 책이 사람이 사람을 만나 사랑하는 일에 관해, 사랑이라는 감정에 관해, 그리고 사랑이 주는 공기에 관해 쓴 산문이라고 소개했다.


시인에게 사랑은 '한 사람과 한 사람의 이야기'이며, '삶이고, 사람'이라 말해주었다. 작가만의 감성이 있다. 그 감정을 오롯이 녹혀낸 산문집이다. 세상에는 여러 형태의 사랑이 있다. 어떠한 것이 가장 정확하며 어떠한 것이 모자란지는 비교 불가한 것. 자기에게 최적화된 사랑을 찾는 일련의 과정과 순간의 마음들을 담아두었다.


이번 책에도 작가의 사진이 함께 기록되어있다. 때때로 그는 글을 쓰는 작가인지 전문적으로 사진을 찍는 포토그래퍼인지 헷갈릴정도이다. 잘 쓴 글과 함께 잘 찍은 사진들. 글에도 사진에도 작가의 감성이 가득하다. 한장 한장 넘기는 페이지의 글이 적다 한들 후다닥 넘겨버릴 수 없는 경험을 또 해 볼 듯 하다. 사진에 한참을 머물고, 단어 하나하나에 남겨진 여운을 매만지며 아껴 읽어야겠다.





손 잡아주지 못해서_ 손을 보는데 마음이 미어지는 사람이었다. 다른 것도 아닌 손만으로 그 사람의 많은 걸 들여다보고 있는 기분. 어쩌면 손에 보이는 것은 얼굴 표정일 수도 있으며 사연일 수도 있으며 마음일 수도 있는 것.

... ...

언젠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말해주겠노라. 참 많이도 사랑했다고. 사랑한다고 말해야 하는 때가 지금이 아닌 것은 나 당신을 오래 사랑하고 싶기 때문이라고도, 나중에 명백히 말하겠노라.


각자의 인생에 스쳐가는 타인1, 타인2로 여기던 사람을 내 사정거리의 등장인물로 바꿀 때. 그리고 그 사람들과 눈맞춤이 아니라 피부로 직접 닿으며 나의 감각을 전하는 시초가 손이라 생각된다. 처음이 어렵지 그 다음부터는 가장 흔한 스킨십이 될 수도 있는 손잡기.

손을 맞잡는 것, 깍지를 끼는 것, 손등을 매만지는 것, 손끝을 툭툭 건들여 보는 것, 그리고 차마 직접 닿을 수 없는 상황이라 시선으로 상대의 손을 쓸어내리기도 하는 것. 그 모든것에는 각기다른 감정과 마음의 쓰임이 존재한다.

손을 보고 마음이 미어질 수 있다는 건 그간 나눴던 대화나 눈맞춤으로 한참동안 나눴던 그 감정의 끝이 상대의 손에 머물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가장 쉬운 손잡기인데 가장 어려운 스킨십이 되어버린 둘. 언젠가를 빌미로 언제 한번은 꼭 당신의 손을 잡고 마음에 담아두었던 말들을 꺼내어 보겠노라 다짐을 하지만 기약없는 다짐인걸 알고있다. 필요로 할 때 손 잡아 주지 못한 미안함을 독백으로라도 뱉어보며 진심은 그게 아님을 내비쳐본다. 상대도 분명 알고 있겠지.




​나를, 당신을, 세상을, 세계를_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바다에 가자는 말은 사실은 사랑한다는 말이며, 노을을 보러 가자는 말도 사랑한다는 말이며, 깊은 밤 불쑥 산책을 하고 싶다는 문자를 보내는 것도 사랑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나이가 들면 들 수록 직접적으로 '사랑한다'는 단어 그대로 사용하는 횟수가 줄어드는걸 느낀다. 혹시나 상대가 부담스러워 할까봐 싶은 앞선 걱정과 함께 내맘과 같지 않은데 나만 둥둥 떠다니며 고백해버리면 지금의 이 사이도 없는 것이 되어버릴까 싶은 불안감도 여전하다. 그러니 내가 했을 때 행복했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툭툭 내어보며 바다를 가보자, 노을이 예쁘대, 별 보러 가지 않을래? 라는 말로 슬쩍슬쩍 마음을 비쳐본다.

이러한 마음을 작가는 글로 남겨주셨고, 적재님은 노래 '별 보러 가자'로 마음을 표현 해 놓으신 듯 하다.

일말의 숨김 없이 직설적으로 말해도 좋을 나의 남편에게도 오늘 써 먹어 봐야겠다. 이제 날도 선선해지고 하니 밤 산책 가보지 않겠냐고.




당신이 행복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_ 대부분의 사람은 사랑을 하고, 대부분의 사람은 사랑을 잃고, 대부분의 사람은 사랑을 기억하겠지만 사랑을 기억하는 편이 제일 나을 겁니다. 살아갈 힘을 남기자면 그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묘한게, 한번 끓여놓으면 쉬이 식지 않는 두툼한 주전자처럼 뭉근하게 지속되는 지속성이 제법 탁월하다는 것. 이 것 또한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보온성이 좋은 감정이 사랑이다. 그래서 사랑하던 순간의 열정도, 지속하는 지금의 따뜻함도, 언제가 될 지 모르겠지만 그 사랑에 마침표를 찍어 둘 중 어떤이의 부재가 되는 순간이더라도 손끝으로 전해지는 온기는 길게 지속될 것임을 안다. 그 온기 덕에 나는 살아가고있고, 이후의 삶도 살아 낼 여력을 만들어 줄 듯 하다. 없어도 사는 데에 지장은 없겠지만 있으면 버텨낼 재간을 부리게 해주니 나에겐 제법 쓸만한 무언가로 정해두고 싶다. 그대가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행복을 누리고 싶다면 살면서 가장 행복해하며 사랑한 순간을 긁어모아 오라 하고싶다. 흩뿌려놓으면 별거 아닌 잔챙이 같아도 모아서 양손 가득 움켜지면 제법 포근함하니 당신에게도 누리게 해주고싶다.

​타인을 사랑하는 감정도, 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 씀씀이도 모두다 사랑인거다. 하늘 위에 쏟아질 것 처럼 가득한 별들에도 각각의 이름이 있고, 이리저리 이어보며 하나로 합쳐놓은 걸 별자리로 부르는 것 처럼, 각각의 마음들도 사랑이고 함께 나누고 마음을 확인하며 선을 이어보는 일련의 과정도 사랑이다. 그래서 서로 뻗어낸 손이 닿아 이어지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나보다. 내 사랑의 손길을 뿌리치지 않고 잡아주어 알아주니 말이다.

내가 사랑해서 행복하고,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 마음이 놓이고, 내 사랑이 당신의 언저리에 닿아 있음을 느껴서 감사한 것. 설령 원하는 결말이 아니더라도 그때 타오르던 나를 더 아껴주고 북돋워 줄 수 있는 힘을 남겨 놓는 것. 사랑의 온도를 꺼트리지 않는 것. 그 마음을 가르쳐주려도 오랫동안 단어를 가다듬어 책으로 내어주신 듯 하다. 사랑에 헛헛해지는 순간이 오면 이 책으로 마음 좀 뎁혀놓으시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