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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입니다 - 안희정 성폭력 고발 554일간의 기록
김지은 지음 / 봄알람 / 2020년 3월
평점 :
"불법과 부정이 횡행했지만 모두가 눈 감았다. 그곳에서 조직의 대의와 목적 이외 모든 것은 사사로웠다." 109
이 책은 유죄 선고된 안희정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 김지은 씨의 목소리이다. 언론도 찌라시도 침범하지 않은 진실의 말이며, 그녀가 빠져나온 ‘정치판’의 넝쿨나무처럼 촘촘한 거대한 권력구조가 얼마나 철저하게 대중을 조종하고 개인을 공격할 수 있는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현실의 기록이다.
거대한 권력은 존재하는 것만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몸을 낮추기 때문이다. 수직적 구조 사이의 폭력은 일어남과 동시에 피해자의 입을 막는다. 권력이 유지되는 것이 최우선인 상황에서는 한 명이라도 조화를 깨뜨리면 안 되기 때문이다. 권력이 압도적일수록, 권력의 최측근에 있을 수록 이를 처절하게 느낀다.
본문 부록 ‘도지사 수행비서 업무 매뉴얼’만 봐도 피고인의 권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폭력적인 조직에서 성폭력을 겪었어도 프로의식을 잃는 것은 그녀에겐 용납되지 않았다. 그녀가 피해자답지 않았다는 시선은 그녀가 몸을 담고 있었던 집단의 생태계를 모르고 하는 편견 가득한 발언이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평가하는 환경에서 진정한 연대와 정의를 기대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왕을 고발하는 순간 그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자에게 조직적인 공격을 가할 것은 불 보듯 뻔했다. 피해자 김지은씨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숨지 않았다. JTBC ‘뉴스룸’ 인터뷰에서의 ‘오늘 이후에라도 (자신이) 없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발언만 봐도 김지은씨가 얼마나 절박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대중은 차가웠다. 언론에 따라가는 것이 대중이고, SNS의 좋아요 수에 따라 휘둘리는 것이 대중이다. 대중은 사건 그 자체를 바라보지 않았으며 진영과 젠더갈등으로 편을 나누어 검증되지 않은 위증을 사실인양 퍼뜨렸고, 사건을 입맛대로 재구성해 재배포했다. 조직적으로 2차 가해를 조장한 언론과 안희정 캠프 관계자는 이를 부채질했고, 아직까지도 2차 가해는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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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말하는 '가짜 미투'가 도대체 무엇일까? 우리 한국 사회에서 누가 대체 성폭력을 당했다며 제 인생을 그렇게 해체하면서까지 강간 경험을 내놓을까?" 271
폭력과 차별의 경험을 말하는 여성들의 입을 막는 반대편 사람들의 주장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꽃뱀 논리’이다. 여성이 서로 원해서 한 성관계를 상대 남성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자신이 성폭력을 당했다는 주장으로 죄 없는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는 행위의 실리를 따져보면 누가 봐도 주장을 한 사람이 손해다. ‘가짜 미투’라는 것에 피해를 받은 억울한 사람의 수가 실제로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의 수에 비해 유의미할 정도로 많지도 않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미투를 한 피해자를 거짓말쟁이에 꽃뱀으로 몬다.
안희정 성폭력 고발 당시에도 이런 2차 가해가 고발 직후부터 피해자를 향해 쏟아졌다. 공격의 수위는 어느 때보다 높았고 그 요소도 다양했다. 재판 내용은 언론과 피고인에게 유리한 부분만 편집되어 언론에 나왔으며 ‘설마 이게 모두 잘못된 내용이겠어.’ 라며 눈 가리고 아웅하는 의견도 있었다. ‘순두부’,‘부부방’ 같은 단어들은 재판 후 무차별적으로 언론에 사용되고 SNS에 퍼져 김지은씨를 조롱하는 밈으로 사용되었다. 게으른 사람들은 언론의 말을 흘려 넘기며 사건을 방관하였고, 이 단어들이 어느 사건에서 나왔는지조차 모르는 채로 밈을 공유하며 2차 가해에 발을 담그는 사람도 있었다.
아직도 2차 가해는 지속되고 있다. 위증과 2차 가해 게시물이 사건의 전말인 양 편집된 유튜브 영상은 내려가지 않았으며, ‘논란’이라는 이름으로 조회수를 벌고 있다. ‘안희정 성폭력 사건’을 구글에 검색하면 나무위키 게시 글이 제일 먼저 나온다. 이 글에는 위증이었던 부분이 모두 ‘논란’이라는 명칭으로 나열되어있으며, 그것에 따른 피해자 측 반박은 기술되어있지 않다. 심지어 피해자의 목소리가 담긴 《김지은 입니다》에 대한 언급은 발행일뿐이다. 나무위키는 ‘피해자의 목소리가 증거다’라는 JTBC 소셜 라이브의 밈을 ‘무고죄를 고려하지 않은 발언’이라 비판한 것을 보면 지극히 편협한 시각을 가진 커뮤니티이다. 뉴스나 서적보다 나무위키를 상식의 보고로 여기는 젊은이 층이 있을 정도로 나무위키의 영향력은 크기에 안타깝기 그지없다.
어째서 사람들은 객관이라는 핑계로 ‘피해자가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가정하여 모든 것을 가해자 위주로 생각하는 걸까. 이 경향은 죄목이 성폭행일 때 특히 심하다. 결국 이 문제에서도 중요한 건 ‘기분’이다. 자신의 우상의 창창한 미래가 막혔다는 것이 거슬리는 ‘기분’ 문제이고,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성폭행을 할 리 없다고 여기는 편견 가득한 시선 문제이며, 자신의 일상을 추문으로 물들인 ‘여자’가 아니꼽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세계에 ‘성폭력 피해자’는 잘 알지도 못하고, 자신의 주변에 없으며, 곧 자신이 고려할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연대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결국 잘 알지 못하니 여론과 기분에 휘둘린다. 대한민국은 여성의 40%가 성폭행을 당하는 나라이다. 우리는 조금 더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사회의 해상도를 높여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그것을 돕는다. 보이지 않는 권력이 어떻게 눈앞을 흐리는지를 알게 되면 깨달을 것이다. 보여주는 대로 보지 않기 위해서는 모두의, 특히 약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왜냐하면 권력은 철저하게 약자의 목소리만을 선별하여 지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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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겪지 말아야 할 끔찍한 경험을 했을 뿐이고, 보통의 사람으로 보통의 일상을 살아간다." 317
사건에 대한 기억, 노동 환경에 대한 기억, 고발 후 재판을 진행할 때의 기억, 병상에 누워 쓴 일기, 사건 종결 후 일상을 회복하는 과정, 연대. 김지은 씨의 의식의 흐름을 따르는 책 한 권을 통해 사건을 함께 짚어나가면서 처절하게 느낀다. 이렇게 힘겨운 싸움을 견디기 위해 얼마나 많은 아픔을 삼켜야 했을까. 결국 그녀는 견뎠고, 승소했다. 하지만 ‘피해자다움 검증’을 포함한 ‘2차 피해 사건’은 수사가 제대로 진척되지 않고 있다.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이 사건을 잊어서는 안 된다.
피해자는 ‘피해자다워야’ 할 필요가 없다. 피해자의 ‘피해자다움’보다 가해자가 얼마나 ‘가해자다웠는지’를 철저히 규탄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보통의 노동자였던 보통의 사람이 겪은 보통의 일. 어두운 감정에 물든 책이라기보다는 고난을 견뎌내는 과정 속 연대, 끈질긴 의지 끝의 승리를 기록한 책이다. 저자가 곱씹은 문장들은 촘촘하고 진솔하다. 그녀의 일상을 응원하며 읽다보면 그녀의 연대의 마음에 거꾸로 위로받는다. 연대와 위드유를 통해 희망은 만들 수 있다고 다짐하며, 모두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김지은 입니다》 김지은 지음, 봄알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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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과 부정이 횡행했지만 모두가 눈 감았다. 그곳에서 조직의 대의와 목적 이외 모든 것은 사사로웠다. - P109
그들이 말하는 ‘가짜 미투‘가 도대체 무엇일까? 우리 한국 사회에서 누가 대체 성폭력을 당했다며 제 인생을 그렇게 해체하면서까지 강간 경험을 내놓을까? - P271
우리는 겪지 말아야 할 끔찍한 경험을 했을 뿐이고, 보통의 사람으로 보통의 일상을 살아간다. - P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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