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가 만들어내는 광할한 세계
전쟁과 그 반대편에 있는 고요한 사막의 이미지를 대조하면서도 인물의 과거와 역사를 통해 결국은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군데군데 이해되지 않는, 작가가 본인의 느낌을 공유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생각되기도 하는 문장들이 있다. 다시 읽어도 작가가 어떤 의도로 그 문장을 썼는지 느끼기는 힘들것 같다.
가장 마음이 갔던 인물은 킵이었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사람의 마음을 잘 보여주는 인물은 알마시였다. 킵은 폭탄 해체를 통해 그의 내면적인 견고함을 더욱 키우는 인물이라고 느꼈다. 터지면 깨닫지도 못한 채 맞이하는 죽음을 담대하게 마주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정교한 논리와 감정을 절제하는 이성,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동작들은 폭탄을 해체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곧 그의 삶을 이루는 하나의 철학이 되었음을 알려준다.
알마시는 킵과 반대로 본인을 지탱하는 그 무엇인가가 없는 느낌이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사막이라는 장소와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수도원에 누워있는 지금 그저 입으로 읊어질 뿐이다. 분명 한 때 그의 과거를 만드는 중요한 축임에도 현재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마치 역사속에서나 기록될 것처럼 사랑하지만 죽어가는 사람을 동굴 속 벽화의 색깔들로 꾸미고 평생 진귀한 것을 찾아 헤매던 사막에 정작 가장 가슴에 남을 무언가를 남겨놓고 오면서 그와 관련된 모든 상징성을 인생에서 지운 것일까. 도시에서는 애증이었으나 사막에서는 사랑이었다.
해나가 주변의 모든것들을 밀어내는 방식은 침묵과 단절이다. 사람들의 위로도, 공감도, 말도 모든게 다 공허하며 내 안의 깊은 곳으로만 침잠하는 것. 그녀가 그 수도원에 남은 이유는 시간과 공간의 단절을 통해 그녀 자신을 스스로 치유하기 위한 시간을 필요로 했기 때문인것도 같다. 사실 대부분의 상처는 시간이 치유해준다고 하지만 어떤 상처는 날들을 이루는 그 모든것을 외면하고서 심지어 자신과도 동떨어진채로 있을 때 치유되기도 한다.
각자의 인물이 모두 깊은 무게감을 갖고 살아간다. 해나는 아버지를 잃은 고통을 견디는 시간, 킵은 매순간 죽음과 대면하는 시간, 알마시는 이미 멈춰버린 시간, 카라바지오는 매순간의 현재를 살기 위한 시간을 보낸다. 전쟁 앞에서 이들은 각자의 시간적인 삶을 산다. 그 어떤 것도 같지 않은 그 시간들을 어떻게 견디느냐가 그 사람의 삶의 방식이 아닐까.
사막의 이미지가 보여주는 삶의 외연성이 넓고도 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