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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마이 사이언스 북 12 - 뜨거움.차가움
닐 아들리 지음 / 한길사 / 199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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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학년 때 할아버지한테 이 전집을 선물받고 동생이랑 실험에 열중했었다. 실험 내용도 재미있었지만, 책 속에 나오는 ‘외제‘ 재료, 완구가 더 갖고싶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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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의 일상은 의외로 규칙적이었다. 눈 뜨면 밥먹고, 밥먹으면 도서관에 갔다. 예전에 백수였던 친구는 동네도서관이 싫다고 했다. 고시생 아니면, 할아버지들이 우글거리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도서관을 너무도 사랑했다. 도서관이라도 없으면 갈 데가 없기 때문이다. 일단 집 밖에서 기웃거릴 곳이 많지 않다. 하루종일 커피숍에서 노트북 두드릴 팔자도 아니고, 어쨌든 나는 도서관을 사랑했다. 혼자 신문 다 보는 것처럼 무자게 큰 소리로 신문을 넘기거나, 큰소리로 통화하거나, 자기가 더 시끄러운 줄 모르고 옆사람에게 조용히 하라는 할아버지들 옆에서 신문을 읽게 되더라도 말이다. (난 늙지 않나라고 말할 지 모르겠지만 난 늙으면 할머니가 되지 할아버지는 안 된다.)

이사 온 동네는 도서관이 멀다. 도서관에 본격적으로 들락거리기 시작한 게 21살 때 였는데, 물리상으로 도서관과 가장 멀리 떨어져서 살고있는 것같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수 있는 한도인 3권을 꼬박 다 빌리고, 그것도 모자라면 다른 구에 있는 도서관에 까지 가 책을 3권빌리고, 그것도 모자라면 친구에게, 또 방송국에서 책을 빌려 한 번에 9권까지 책을 빌려 본 일이 있다. 그렇게 많은 책을 빌려 다 읽냐하면 연장에 연장까지 해도 못읽을, 안 읽을 때가 태반이다. 그래도 나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야 마음이 편안하다. 설사 단 한 줄도 못 읽더라도 말이다. 학교 다닐때는 내 작은 가방이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 3권으로 터지려고 했었다. 친구들은 맨날 내 가방을 보고 기가막힌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20살때 버릇 서른간다고 아직도 그 버릇을 못 고치겠다. 일종에 정신병이 아닐까 의심도 된다. 책을 빌려야만 정서적으로 안정되는 정신병말이다.

처음 몇 주는 견딜만 했다. 사놓고 안 읽은 책만해도 거의 20권이고, 정신이 피폐해져서 책 읽을 여유가 없었다. 위염에 걸리기도 했고. 그런데 위염이 괜찮아지고, 내 앞에 닥친 상황을 팔자려니 하니 또 책이 그리워졌다. 정확히 말하면 책 빌리기, 또는 빌릴 책 목록 만들기가 그리워졌다. 빌릴 책의 목록을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재밌는 일이다. 그래서 난 또 책을 읽기보단 빌릴 책 목록을 만들고, 또 책을 빌리기 위해 여기저기 찔러 봤다. 내 주위에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문자를 날려 책 추천을 받았다. 아직 내가 읽고싶은 책도 다 못읽었지만, 또 남한테 추천받아서 책을 읽는 맛도 쏠쏠하다. 추천받은 책중에 륌양께서 추천하신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없게 가까운을 읽었다. 륌이 추천하기 몇일 전, 방순이가 생일 선물을 받아 이 책을 집에 가지고 와서 아주 가까이서 빌릴 수 있었다. 미안하지만 주인보다 먼저 이 책을 읽게됐다.

이 책은 구면이었다. 노동연구가 (?) 하종강 씨의 책과 비슷한 표지여서 기억하고 있었다. 영화제 인턴으로 일할 때 어느 스텝의 자리에 꽃혀있기도 했던 책이다. 표지가 표절인가하는 생각도 했고, 제목이 와 닿지 않아서 그냥 스쳐보냈던 책이었는데 알고보니 김연수가 "지난 5년 간 가장 아름다운 책"이라고 주례사를 달았다. 다른 사람의 주례사라면 신경쓰지 않았겠지만, 김연수니까 당장 읽어보고싶었다. 거의 500페이지에 가까운 두꺼운 책인데 제법 빨리 읽었다. 읽는내내 감격하고 울고 웃었다. 소재는 내가 싫어하는 911이었지만 거슬리는 부분이 없었다. 사실 거슬릴 부분이 많은 책이다.

할머니를 버리고 떠나는 할아버지-난 여자가 버림받고 기다리고, 남자보다 더 사랑하고 하는 내용이 싫다. 그리고 주인공 꼬마가 집착하던 "사랑한다"는 말, 가족 간의 사랑 이런요소들이 신파가 될 법한 소재들인데도, 무려 911에 관한 이야기인데도 이 책은 훌륭하다. 또 사랑스럽다. 진부한 소재라도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훌륭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단는 걸 새삼 느끼게 해준 책이다.    


너무 빨리 읽어서 할아버지가 왜 말을 못하는 지 모르겠다. 주인공의 할아버지는 말을 못해서 한 손에는 "예", 또 한 손에는 "아니오"라고 쓰고 일상적인 대화를 한다. 예와 아니오로 말을 못할 경우엔, 공책의 필기를 하면서 말은 한다. 사실 내가 보기엔 할아버지는 말을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같다. 근데 이 말 안하시는 할아버지의 대화들이 순간순간 사람의 마음을 아리게 할 때가 있다. 주인공 꼬마가 아빠 열쇠의 비밀을 풀기 위해 뉴욕에 거주하는 블랙씨를 찾는 과정에서도 아름다움이 불쑥불쑥 튀어 나온다. 자기앞의 생에 나오는 모모 이후로 최고의 꼬마 주인공이 아닐까.

이 소설 속의 사람들은 편지를 쓴다. 주인공 꼬마는 메일 똑 같은 답장만 받아도 스티븐 킹을 비롯한 유명인사들에게 편지를 쓰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아들에게 편지를 쓴다. 열쇠의 주인 블랙의 아버지 블랙 씨는 죽기 2달 전부터 주변에 아는 모든 사람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를 쓴다는 것, 사람하는 사람에게 또는 말하고 싶은 사람에게 편지를 쓴다는 것은 살아있는 동안 할 수있는 가장 큰 축복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요즘에는 전화로 또 말로 할 수 있겠지만, 무엇이든 내 진심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이 태어나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책을 쓰는 작가는 책으로 편지를 쓰는 것처럼 자신의 진심을 전달 할 수 있는 거겠지. 책을 읽다보니 언뜻 작가의 작가관 같은 것도 느껴졌다. 그 많은 이해는 오해라는 말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느끼기로 했다.

태어난 이유도 궁금하지만, 태어난 후, 살아있는 나에게 제일 중요한 게 뭘까하는 고민을 달고 사는데 답이 쉽게 잘 나오지 않는다. 세상에 중요한 거 따위는 없다는 결론에 미칠 때도 있었다. 이책을 읽고 난 후에 바른생활 책에 나오는 답같지만 하나 떠오른 게 있었다. 진심, 그리고 사랑하는 것. 너무 추상적이고 진부한 것이라 저 단어들을 뒤로 숨겨버리고 싶지만, 지금까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던 걸 다시 확인했다. 진부한 것 조차도 제대로 마음을 다해 하지 못하지 않았나. 나는 진심으로 진심을 다했던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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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ㄹㄷㅇ > 김연수와 함께 보는 할매꽃

 

 

 

 

 

 

 

할매꽃은 자주 구독하는 영화잡지에서 칭찬(?)을 해서 기억하고 있는 영화였다. 그 후로 접할 기회가 없어서 잊고 지내다가 알라딘의 이벤트에 당첨되서 보게 됐다. <송환> 이 후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못 접하다가 최근에 <나의 마음을 지지 않았다>를 봤다. 그 영화를 보고 다큐멘터리의 힘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할매꽃도 나의마음은 지지 않았다 처럼 '할머니'가 주인공인 '다큐'라 관심이 갔다. 더군다나 알라딘에서 고맙게도 '김연수'작가와 함께 할매꽃을 보게 해줘서 무척 행복한 마음으로 관람했다. 

영화는 뜬금없이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추어탕"이야기로 시작한다. 우리나라에서 추어탕 원조인 남원보다 맛있는 추어탕이니,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맛있는 추어탕이고, 추어탕은 우리나라가 제일 맛있으니 세계 최고의 추어탕을 만든다는 호방한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추어탕 식당의 풍경은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상이다. 카메라는 이 일상을 비추다가 갑자기 할머니 이야기를 꺼낸다. 외할머니는 남편, 오빠, 시동생, 남동생을 이념때문에 잃거나 떠나보내거나 해야했다. 남편은 빨갱이로 몰려 고문을 받다가 후유증으로 알콜중독에 걸렸고 폭력을 휘둘렀다. 오빠는 빨치산 활동을 하다가 자수하러 내려오는 길에 경찰 친구의 손에 총살 당했다. 시동생은 남편이 경찰에 끌려갈 때, 경찰이 쏜 공포탄에 놀라 평생 정신 이상을 앓았다. 동생은 형의 죽음으로 홀로 일본으로 떠났다. 

감독의 외할머니의 남편, 오빠, 시동생, 동생의 불행은 그 개인의 불행으로 끝나지 않고 자식, 부인들의 고통으로 되풀이 됐다. 시동생의 부인은 평생, 평생 자기를 의심하고 새벽 3시만 되면 교회에 나가 종을 치는 남편 수발을 했다. 외할머니의 오빠의 딸은 평생 아빠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모른채 살았으며, 일본으로 건너간 외할머니의 남동생의 딸은 친척도 연고도 없는 북한으로 홀로 보내져 가족들과 평생 생 이별을 했다. 이념의 후유증은 연좌제만이 아니었던 거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감독은 "어느 집이든 다 이만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라고 했다.  감독의 어머니도 어느 집이든 이런 얘기없는 집이어딨냐고 했다.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를 보면서도 느낀 것이있는데, 한국의 근대는 한 개인이 감당하기에 너무도 크고 무거웠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책에서 공부할때와 책과 영화로 접할때의 근대는 질량감이 너무다르다. 나는 가끔 그 시대에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그 시대에 살았으면, 고통을 견디고 초월해 <나의 마음>에 송신도 할머니처럼, <할매꽃>에 작은 외할머니처럼 덤덤하게 얘기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는 어떤 초능력으로 그 세월을 견디셨을까. 나는 할머니의 고통을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영화를 보면서 그 가족에 대한 고통에는 공감이 됐지만, 감독이 하대 마을이 이름을 바꾼이유, 하대 마을에 대한 내력 설명을 길게 하는 것이 좀 이상하게 보였다.  중대와 상대는 지식인층이라 좌익 사상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고 하는 대목에서 좀 불편해졌다.  그리고 왜 감독은 자꾸 어머니에게 어머니의 삼촌을 죽인 딸을 찾아 가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자기 가족이 연좌제로 고통 받은 것처럼, 자기 가족을 죽인 딸에게 찾아가 "너네 아빠가 내 삼촌을 죽였다"라고 하면 그것 또한 연좌제가 아닌가. 가족사를 통해 근대사를 풀어 나가는 것은 좋지만, 자기 가족사를 중심으로 주변의 가족이나 마을, 이념을 죄인 취급하고 대상화 시킨다는 느낌이 없잖아 있었다. 어머니의 말씀처럼 외할머니의 오빠를 죽인 그 가족도 피해자가 아닌가. 결국 외할머니의 오빠를 죽인 그 사람은 자살을 했다.   

다행히 영화는 감독의 어머니가  친구(어머니의 삼촌을 죽인 경찰의 딸)를 만나려고 엘레베이를 타고 올라가는 순간에서 끝난다. 그 이후에 내용은 어머니에게도, 그 친구에게도 비극이기 때문에 나는 영화가 끝나갈 수록 폭력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가족이 겪은 연좌제를 상대편의 이념과 가족에게 씌우는 연좌제로  느껴질 법한 소지가 있어 <할매꽃>은 나에게는 조금 알쏭달쏭한 영화였다. 감독은 다른 것을 의도했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생각할 거리와 김연수작가님을 만나게 해준 알라딘에 무한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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