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일상은 의외로 규칙적이었다. 눈 뜨면 밥먹고, 밥먹으면 도서관에 갔다. 예전에 백수였던 친구는 동네도서관이 싫다고 했다. 고시생 아니면, 할아버지들이 우글거리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도서관을 너무도 사랑했다. 도서관이라도 없으면 갈 데가 없기 때문이다. 일단 집 밖에서 기웃거릴 곳이 많지 않다. 하루종일 커피숍에서 노트북 두드릴 팔자도 아니고, 어쨌든 나는 도서관을 사랑했다. 혼자 신문 다 보는 것처럼 무자게 큰 소리로 신문을 넘기거나, 큰소리로 통화하거나, 자기가 더 시끄러운 줄 모르고 옆사람에게 조용히 하라는 할아버지들 옆에서 신문을 읽게 되더라도 말이다. (난 늙지 않나라고 말할 지 모르겠지만 난 늙으면 할머니가 되지 할아버지는 안 된다.)
이사 온 동네는 도서관이 멀다. 도서관에 본격적으로 들락거리기 시작한 게 21살 때 였는데, 물리상으로 도서관과 가장 멀리 떨어져서 살고있는 것같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수 있는 한도인 3권을 꼬박 다 빌리고, 그것도 모자라면 다른 구에 있는 도서관에 까지 가 책을 3권빌리고, 그것도 모자라면 친구에게, 또 방송국에서 책을 빌려 한 번에 9권까지 책을 빌려 본 일이 있다. 그렇게 많은 책을 빌려 다 읽냐하면 연장에 연장까지 해도 못읽을, 안 읽을 때가 태반이다. 그래도 나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야 마음이 편안하다. 설사 단 한 줄도 못 읽더라도 말이다. 학교 다닐때는 내 작은 가방이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 3권으로 터지려고 했었다. 친구들은 맨날 내 가방을 보고 기가막힌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20살때 버릇 서른간다고 아직도 그 버릇을 못 고치겠다. 일종에 정신병이 아닐까 의심도 된다. 책을 빌려야만 정서적으로 안정되는 정신병말이다.
처음 몇 주는 견딜만 했다. 사놓고 안 읽은 책만해도 거의 20권이고, 정신이 피폐해져서 책 읽을 여유가 없었다. 위염에 걸리기도 했고. 그런데 위염이 괜찮아지고, 내 앞에 닥친 상황을 팔자려니 하니 또 책이 그리워졌다. 정확히 말하면 책 빌리기, 또는 빌릴 책 목록 만들기가 그리워졌다. 빌릴 책의 목록을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재밌는 일이다. 그래서 난 또 책을 읽기보단 빌릴 책 목록을 만들고, 또 책을 빌리기 위해 여기저기 찔러 봤다. 내 주위에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문자를 날려 책 추천을 받았다. 아직 내가 읽고싶은 책도 다 못읽었지만, 또 남한테 추천받아서 책을 읽는 맛도 쏠쏠하다. 추천받은 책중에 륌양께서 추천하신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없게 가까운을 읽었다. 륌이 추천하기 몇일 전, 방순이가 생일 선물을 받아 이 책을 집에 가지고 와서 아주 가까이서 빌릴 수 있었다. 미안하지만 주인보다 먼저 이 책을 읽게됐다.
이 책은 구면이었다. 노동연구가 (?) 하종강 씨의 책과 비슷한 표지여서 기억하고 있었다. 영화제 인턴으로 일할 때 어느 스텝의 자리에 꽃혀있기도 했던 책이다. 표지가 표절인가하는 생각도 했고, 제목이 와 닿지 않아서 그냥 스쳐보냈던 책이었는데 알고보니 김연수가 "지난 5년 간 가장 아름다운 책"이라고 주례사를 달았다. 다른 사람의 주례사라면 신경쓰지 않았겠지만, 김연수니까 당장 읽어보고싶었다. 거의 500페이지에 가까운 두꺼운 책인데 제법 빨리 읽었다. 읽는내내 감격하고 울고 웃었다. 소재는 내가 싫어하는 911이었지만 거슬리는 부분이 없었다. 사실 거슬릴 부분이 많은 책이다.
할머니를 버리고 떠나는 할아버지-난 여자가 버림받고 기다리고, 남자보다 더 사랑하고 하는 내용이 싫다. 그리고 주인공 꼬마가 집착하던 "사랑한다"는 말, 가족 간의 사랑 이런요소들이 신파가 될 법한 소재들인데도, 무려 911에 관한 이야기인데도 이 책은 훌륭하다. 또 사랑스럽다. 진부한 소재라도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훌륭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단는 걸 새삼 느끼게 해준 책이다.
너무 빨리 읽어서 할아버지가 왜 말을 못하는 지 모르겠다. 주인공의 할아버지는 말을 못해서 한 손에는 "예", 또 한 손에는 "아니오"라고 쓰고 일상적인 대화를 한다. 예와 아니오로 말을 못할 경우엔, 공책의 필기를 하면서 말은 한다. 사실 내가 보기엔 할아버지는 말을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같다. 근데 이 말 안하시는 할아버지의 대화들이 순간순간 사람의 마음을 아리게 할 때가 있다. 주인공 꼬마가 아빠 열쇠의 비밀을 풀기 위해 뉴욕에 거주하는 블랙씨를 찾는 과정에서도 아름다움이 불쑥불쑥 튀어 나온다. 자기앞의 생에 나오는 모모 이후로 최고의 꼬마 주인공이 아닐까.
이 소설 속의 사람들은 편지를 쓴다. 주인공 꼬마는 메일 똑 같은 답장만 받아도 스티븐 킹을 비롯한 유명인사들에게 편지를 쓰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아들에게 편지를 쓴다. 열쇠의 주인 블랙의 아버지 블랙 씨는 죽기 2달 전부터 주변에 아는 모든 사람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를 쓴다는 것, 사람하는 사람에게 또는 말하고 싶은 사람에게 편지를 쓴다는 것은 살아있는 동안 할 수있는 가장 큰 축복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요즘에는 전화로 또 말로 할 수 있겠지만, 무엇이든 내 진심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이 태어나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책을 쓰는 작가는 책으로 편지를 쓰는 것처럼 자신의 진심을 전달 할 수 있는 거겠지. 책을 읽다보니 언뜻 작가의 작가관 같은 것도 느껴졌다. 그 많은 이해는 오해라는 말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느끼기로 했다.
태어난 이유도 궁금하지만, 태어난 후, 살아있는 나에게 제일 중요한 게 뭘까하는 고민을 달고 사는데 답이 쉽게 잘 나오지 않는다. 세상에 중요한 거 따위는 없다는 결론에 미칠 때도 있었다. 이책을 읽고 난 후에 바른생활 책에 나오는 답같지만 하나 떠오른 게 있었다. 진심, 그리고 사랑하는 것. 너무 추상적이고 진부한 것이라 저 단어들을 뒤로 숨겨버리고 싶지만, 지금까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던 걸 다시 확인했다. 진부한 것 조차도 제대로 마음을 다해 하지 못하지 않았나. 나는 진심으로 진심을 다했던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