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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아니야 - 식물, 동물을 넘어 문명까지 만들어내는 미생물의 모든 것
마르크 앙드레 슬로스 지음, 양영란 옮김, 석영재 감수 / 갈라파고스 / 2019년 8월
평점 :
[출처 : 인문공간 세종]
공생, 생명을 도약하게 한다
마르크 앙드레 슬로스의 『혼자가 아니야』는 생명체의 ‘공생’에 대한 이야기다. ‘공생’이라는 개념은 현대인이 환경파괴와 지구 온난화에 직면하면서부터 더욱 자주 거론되며 ‘환경을 살리자’, ‘지구를 구하자’라는 거대 담론과 함께 언급된다. 그래서 ‘공생’은 자연이라는 사다리의 꼭대기에 있는 인간이 가져야 할 도덕적 책임감을 강조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혼자가 아니야』라는 책이 ‘공생’을 말한다고 했을 때도 다른 생명체와 함께 잘먹고 잘살기 위한 인간의 실천적 노력을 강조하는 내용이 아닐까 지레짐작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말하는 ‘공생’은 생태계에서 인간이 중심이 되어 인간의 주도로 자연과 함께 뭘 어떻게 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혼자가 아니야』의 공생 이야기는 약 27억 년 전 처음 지구에 산소가 생길 때 산소를 만들어내는 박테리아, 지금의 미토콘드리아를 삼킨 미생물의 ‘공생’으로부터 시작된다. 즉, 저자가 말하는 공생의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다. 생명체의 상호작용을 일으키고 상부상조하며 공생을 이끄는 존재는 인간의 맨눈으로는 볼 수도 없는 극미의 미생물이다. 하나의 생명체 안에서 함께 살고 함께 진화하며 심지어 다른 새로운 개체로의 도약을 유도하는 공생의 주인공은 미생물이다.
상리공생과 공진화
『혼자가 아니야』는 세상은 우리가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보이지 않는 것이 사방에서 은밀하게 상호작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우리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보이지 않는 미생물을 잔뜩 품고 태어난다. 생명체가 시작되던 수십 억 년 전 미토콘드리아를 품고 있는 그 박테리아를 갖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우리 몸에 있는 미생물은 인간의 유전자보다 많고,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오래된 연륜도 가지고 있다. 지구 첫 생명체는 단순한 세포에서 출발했지만, 오랜 시간 각 개체의 환경에 따라 다르게 적응한 미생물들이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개체의 진화를 추동했다. 저자는 이것을 ‘공진화’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는데, 서로 의존하고 상호작용하며 함께 진화한다는 의미다. 협력하는 상리공생이야말로 다양한 생명종의 토대가 되었다. 이와 같은 ‘공생’ 개념은 다윈과 또 다른 진화를 설명하는 기제이다.
예를 들면 우리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이끼와 같은 ‘지의류地衣類’는 광합성이 가능한 조류(녹색세포)와 균류(곰팡이)가 결합한 공생체이다. 조류와 균류가 결합해 하나의 새로운 개체가 탄생하며 새로운 생명체로 진화한 것이다. 이런 의미로 어떤 생물체가 자신의 몸에 공생생물체를 받아들이는 것은 진화에 있어서 일종의 ‘월반’이 될 수 있다. 대번에 공생생물이 밟아온 진화 궤적을 주파해서 어느 날 갑자기 진화의 종을 도약해 새로운 종을 출현시키는 것이다.
의존과 경쟁의 공생
우리가 ‘숲’이라고 불리는 곳은 단지 나무가 많은 곳이 아니다. 단일종의 나무가 아무리 빽빽이 들어차 있어도 그곳을 ‘숲’이라 부르지 않는다. ‘숲’이란 그 자체로 다양성을 의미하는 개념이다. 생명의 의존과 경쟁의 네트워크가 무한히 복잡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촉발되는 곳이다. 특히 열대의 숲은 광활한 생명의 확장 방식이 무한히 펼쳐지는 실험의 장이다.
그런데 열대 밀림에 서식하는 동식물의 다양성을 만들어내는 주인공이 미생물 덕분이라는 사실이 믿어지는가! 토양의 미생물, ‘균류’는 식물을 위해서 토양을 탐색하고 개간하며 뿌리 주변으로 물과 식물 생장에 필요한 질소, 인을 비롯한 칼슘, 마그네슘, 그 외 구리, 아연들의 각종 무기질을 몰아온다. 또한 이들은 근방의 식물들과 일종의 네트워크를 만드는데, 이를 통해 서로에게 위험을 알리기도 하고 정보를 교류하기도 한다. 토양 미생물은 숲의 식물들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다. 숲에 후미진 응달에 서식하는 엽록소 없는 일부 식물들을 먹여 살려, 광합성을 할 수 없는 식물들의 양분을 공급하고 그들에게도 자리를 내어주는 일에도 관여한다.
특히, 열대의 토양 미생물에 의해 생기는 ‘잔젤-코넬 효과’라 불리는 현상은 어떤 한 식물종이 개체 수가 많아지면, 그 종은 어느새 불리해져서 자기 자리를 남에게 내어주게 되는 일이다. 이는 어미 나무에서 멀어질수록 씨앗의 발아가 늘어나고 생존율도 좋아지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토양 속의 미생물들이 어린나무의 성장을 제한하며 밀집도를 조절한다. 열대 숲의 토양에 서식하는 균근은 어떤 특정 생물종에 편파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 균근과 함께 공생하는 식물 또한 자신의 종을 배반하면서까지 생물종의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해 탄소 함유 물질을 제공하는 모든 원천을 보호한다. 수십억 년 된 연륜이 작은 희생을 치르더라도 그들을 먹여 살리는 상리공생 관계를 유지하며 숲의 다양성을 만드는 것이 종을 지속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어디까지가 ‘나’인가
『혼자가 아니야』는 다양한 동식물의 종을 멸종시키거나 개량해서 단일화하는 인간의 생활방식이 한계에 이른 지금의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열대 우림의 숲에서 공생이 만든 다양성이 얼마나 생태계를 건강하고 풍요롭게 하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가 숲의 네트워크의 일부임을 깨닫게 해준다. 우리도 숲의 방식으로 서로 경쟁하고 의존하면서 균형을 맞추고 살고 있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는 점점 너무나 우리 임의대로 생태계를 단순하고 단일하게 조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우리는 개체로 태어났을 때부터, 문화를 이루고 살아가는 지금까지 언제나 미생물과 함께였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수십억 년에 걸쳐 서로에게 의존하고 공진화하며 서로 함께 변화해온 공생의 그물망으로 얽혀있다. 어디까지가 ‘나’이고 ‘나’아닌 것이 무엇인지 구별할 수도 없고, 분리할 수도 없는 한 몸이 되었다.
저자는 『혼자가 아니야』를 통해 공생적 진화의 비밀은 ‘다양성’에 있다고 말한다. 다양성이란 수가 많다는 것이 아니다. 자율성을 상실하면서까지 획득해온 독특한 공생의 역량을 가진 개체들의 다양성이다. 하나의 생명체는 얼마나 많은 다양한 잠재적 관계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에 따라 ‘도약’의 가능성이 커진다. 미생물이 인간보다 먼저 획득한 연륜을 어떻게 받아들여 공진화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가능성도 확장된다. 그래서 저자는 미생물이 걸어온 생명과의 공생, 협력관계에서 인류의 미래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우리를 둘러싼 생명의 더 넓은 관계의 항을 보여주며 우리 상식의 한계로 데려간다. 그와 함께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생물에 의해 세계가 이토록 아름다운 생물학적 균형을 이루고, 우리가 그들과 함께 미래를 열어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더 겸손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