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생각한다 - 숲의 눈으로 인간을 보다
에두아르도 콘 지음, 차은정 옮김 / 사월의책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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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인문공간 세종]


애니메이터animator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막대기 벌레walking stick로 알려진 대벌레phasmid-유령phantom에서 유래한-이 생물은 배경 속에 유령처럼 녹아든다. 대벌레가 나뭇가지와 닮아있음은 잠재적인 포식자의 선조들이 대벌레의 선조와 실제 나뭇가지 간의 차이를 알아채지 못했다는 사실의 산물이다. 진화의 시간을 거쳐 자신의 모습을 들키지 않았던 대벌레의 계통이 살아남은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대벌레처럼 생명은 다른 부류의 존재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우리가 처한 상황이 변한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모든 생명은 타자들에 의해 숨겨지고 또 타자들에 사로잡힌 채로 존재한다. 나라는 자기는 타자에 의해 이해되고, 타자를 이해해야 하는 이중의 자리에서 타자의 시선을 마주 응시하며사는 것이다. 이것이 숲이 사고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저자에 의하면 지금 우리의 시선은 어디에도 닿지 못하고, 누구와 어떤 시선도 교환하지 못한 채 고립되어 삶의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

 

살아 있는 활기

누군가 우리를 보는 방식이 우리를 드러나게도 하고 그렇지 않게도 하며 존재 방식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 저자가 <숲은 생각한다>를 통해 생명은 사고한다고 말할 때, 사고란 마주 응시하며 서로 방출하는 기호작용을 해석하는 일이다. 끊임없이 먹고 먹히며 살고 성장하는 일상에서 이런 관계와 소통을 놓치게 되면 존재 자체가 위험해진다. 그래서 타자를 응시하며 그 시선과 교류하고 그것과 함께 어떤 생명의 연결고리를 포착하는 일은 중요하다.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는 활기 없는inanimate 세계는 생명의 이런 연쇄작용을 표상하지 못하는 일이다.

활기animate, 생명에 숨을 불어넣는 이런 생명-형식들은 우리 눈에 보이는 윤곽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의 상징체계 속에서는 다소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마치 안개처럼 밤처럼 이 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이것은 인간과 비인간들이 서로의 기호작용을 응시하며 되돌려줄 수 있을 때 자기 모습을 드러낸다. 자기 앞의 가시적인 것 너머의 기호를 탐색하고 질문할 때 비가시적인 어떤 것이 비로소 가시화되면서 숨을 쉰다. 마치 정지된 이미지들의 연쇄작용이 한 편의 살아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내듯이, 응시의 교차가 이미지들 속에 숨어있던 의미를 연속적으로 재현하며 실재하는 활기animate를 만들고 생명력을 부여한다. 

 

인간의 상징체계

인간은 인간 특유의 기호체계, 즉 언어적 상징체계를 갖고 있다. 언어를 사용하면서 인간은 언어적 관습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고 습관도 달라졌다. 자연과 직접적으로 맺었던 기호적 표상에서 분리되고, 인간과 비인간으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단절되었다. 이 근원적 단절이 현대인의 시야를 가리고 불안과 우울을 동반한다.

그래서 저자는 표상과 언어를 혼동하는 지금의 사고의 관성을 끊어내기 위해 아마존 루나족의 애니미즘animism을 탐구한다. 우리를 언어적 상징(Symbol) 너머의 표상형식, 아이콘(Icon), 인덱스(Index)적 기호 형식의 세계로 이끈다. 그리고 가리키는 사물과 유사성을 공유하는 아이콘(Icon)적 기호와, 가리키는 사물과 직접적으로 유사성을 공유하지는 않지만 그것에 영향을 받거나 그것과 상관관계에 있는 인덱스(Index)적 기호가 언어적 상징(Symbol)의 내포 관계임을 설명한다. 인간의 상징 체계는 이 두 기호과정에 의해 지탱되며 또 궁극적으로 그 속에 잔존하는 기호에 의해 현실화된다는 것이다. 생명의 사고 과정에 위계는 있지만, 그 위계는 도덕적인 것이 아니고 단지 하위 기호를 내포하는 관계일뿐이다. 그런데 인간이 그 포함관계에 도덕적 위계를 정하고 사고 과정에서 기호체계를 제외한다면, 인간은 반쪽짜리 사고밖에는 할 수 없고 자기를 둘러싼 세계에서 떨어져나온 것처럼 불안해진다.

 

이미지 기호체계

숲은 사고한다. 그리고 사고는thinking는 그 자체로 이미지images를 통해 작동한다.”(32) ‘이미지란 응시의 관점을 통해 드러나는 가시적인 현상뿐만 아니라 비가시적 잠재적 가능성까지를 포함한다. 마주 응시하는 시선을 교환하며 살아 있는 사고는 시선의 기호 이미지를 운반한다. 생명은 이 기호적 운반의 연쇄와 그에 따라 새롭게 발생하는 후속 기호에 의해 해석되는 한 살아 있다. ‘-자기의 방식으로 사고하고 생명 작용의 연쇄를 지각할 때 열린 해석체가 되어간다. 열린 자기는 숲처럼 수많은 기호들을 해석하고 해석되는 덧없는 처소이자 경유지이다. 서로의 시선에 숨고 사로잡히며 상호주체성의 관계에서 서로 다른 자기가 되어 숲이 된다. 그리고 는 미래의 자기를 낳는 새로운 기호 해석의 출발점일 뿐 아니라 기호작용의 결과물로써 생명 작용에 직접 관여하는 활기의 주체가 된다.

 

활기 넘치는 애니미즘

에두아르도 콘은 우리가 세계의 살아 있는 사고와 맺는 이러한 관계를 주시함으로써 이 세계를 다르게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 인간적인 것 너머로 확장되는 사고와 함께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며 이를 통해 우리의 삶이 어떻게 다르게 형상화될 수 있는지 들려준다. 저자는 아마존 루나족의 애니미즘animism을 예로 들며 생명과 사고의 중요한 속성들을 증폭하고 드러냄으로써 세계 속에서 살아 있는 사고에 주목한다. 애니미즘은 세계에 속한 하나의 사고 형식이다. 생명 있는 것들이 서로를 응시하는 시선 속에서 서로의 관계를 포함하는 기호작용의 의미를 발견하고 그것과 함께 생명-형식들의 연속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이 세계의 활기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숲은 생각한다>는 세계를 이루는 속성에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이 있다고 말하며 인간의 사고 체계 훨씬 멀리 있는 어떤 것에까지 도달한다. 숲이 생각하는 방식인 애니미즘은 분명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의 다양한 층위를 이미지 사이에서 증폭시켜 생명에 활기animation를 부여한다. 그것은 생명을 무한대로 네트워킹하며 생명에 활기를 주는 애니메이터들의 사고 형식이다. 우리는 이 생명과정에 적극 참여할 때 다른 존재에 의해 표상되고, 살아있음이 지각된다. 숲과 함께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 나는 이 책을 권한다. 자기가 사는 세계의 이미지 기호를 엮어 활기 없는 세상에 숨을 불어넣는 애니메이터의 꿈을 꾸는 사람들에게 숲이 생각하는 방식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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