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것을 행복과 연결시키면 당연하지 않은 결론이 나온다. 이 새로운 관점으로 보면 행복은 삶의 최종적인 이유도 목적도 아니고, 다만 생존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정신적 도구일 뿐이다.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상황에서 행복을 느껴야만 했던 것이다.

우리는 사회적 인간의 유전자를 받았고, 그것을 통해 ‘사회적 생존 비법을 전수 받았다. 이 ‘생존 비법 패키지‘를 뜯어보면 두 가지 중요한내용물이 나온다.
하나는 ‘고통‘이라는 경험이다. 고통을 경험하지 못하는동물은 오래 살 수 없다. 다리에 박힌 못이 아프지 않으면 치료하지 않을 것이고, 결국 목숨까지도 잃을 수 있다. 생존에위협이 되는 작은 불씨를 미리 끄는, 일종의 호루라기 소리가 고통이다. - P87

다리가 잘려나가는 것만큼 인간의 생존을 위협한 것이 집단으로부터 잘려나가는 것이었다. 이때 뇌는 사회적 고통이라는 기제를 사용해 그 위협을 우리에게 알렸다. 외로움, 배신감, 이별의 아픔, 인간관계에 금이 가는 신호가 보일 때 뇌는 이런 마음의 아픔을 느끼도록 했고, 그 덕분에 더 치명적인 고립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신체적 고통과 사회적 고통, 원인은 달라도 기능은 같다.
생존에 위협이 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으니 조치를 취하라는 신호다. "너 아직도 TV 보니? 당장 나가서 여자친구 붙잡아!" 사회적 고통이 전하는 메시지다.
- P88

우리 조상이 물려준 생존 패키지의 두 번째 내용물은, 우리의 관심사인 ‘쾌감‘이다. 고통과 같은 부정적 경험이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면, 긍정적 정서의 기능은 생존에 필요한 자원을 추구하도록 하는 것이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생명체가 오래 생존하지 못하는 것처럼 쾌감을 상실한 동물 또한 문제가 생긴다. ex)먹는 즐거움 때문에 우리는 무언가를 먹음
- P91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확보해야 했던 또 하나의 절대적 자원이 있다. 앞에서 언급한 사람‘이다. 먹는 쾌감을 느껴야 음식을 찾듯 사람이라는 절대적 생존 필수품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선 인간을 아주 좋아해야 한다. 타인을 소 닭 보듯 바라보는 사람에게 친구나 연인이 생길 리 없다.
이런 ‘사회적 영양실조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왕성한 ‘사회적 식욕을 갖는 것이다. 식욕의 근원은 쾌감이다. 그래서 사람(특히 이성)을 만나고, 살을 비빌 때 뇌에서는 사회적 쾌감을 대량 방출한다. ‘강추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런 사회적 쾌감을 예민하게 느꼈던 자들의 유전자를 지니고 산다. 그래서 지금도 사람을 절실히 찾는 것이고, 가장 강렬한 기쁨과 즐거움을 사람을 통해 느끼는 것이다. 사람과 무관해 보이는 감정들도 사실 대부분 사람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 P93

첫째, 행복은 객관적인 삶의 조건들에 의해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 둘째, 행복의 개인차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그가 물려받은 유전적 특성,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외향성이라는 성격 특질이다.
- P98

감정의 또 다른 특성은 상대적이라는 점이다. 이 현상을설명하기 위해 UCLA의 알렌 파르두치Allen Parducci 교수는범위 빈도 이론range-frequency theory‘ 이라는 복잡한 개념을소개했지만(Parducci, 1995) 요지는 간단하다. 극단적인 경험을한 번 겪으면, 감정이 반응하는 기준선이 변해 그 후 어지간한 일에는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중상위권 성적의학생이 전교 1등을 한 번 하고 나면, 예전 성적을 다시 받았을 때 실망하게 된다. 고깃국 맛을 한 번 보면 예전의 콩나물국이 왠지 밋밋해지는 것처럼(송관재, 2013).
- P110

이런 절차를 통해 나뉜 외모 상위권과 하위권 사람들의 행복값을 비교해보면, 외모와 행복은 유의미한 관계를 보이지 않는다. 즉, 내가 다른 사람 눈에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느냐(객관적 미모)는 자신이 느끼는 행복감과 관련이 없었다.
하지만 흥미로운 결과가 하나 나타났다.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정도(주관적 미모)는 행복과 관련이 있었다.
외모뿐 아니라 다른 삶의 조건(건강, 돈 등)과 행복의 관계에서도 유사한 패턴이 나타난다. 객관적으로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보다 이미 가진 것을 얼마나 좋아하느냐가 행복과 더 깊은관련이 있다(Diener, Lucas, Oishi, & Suh, 2002),
중간 정리를 한번 해보자. 사람들은 인생의 좋은 것들을많이 소유하는 것이 행복의 전제 조건이라고 믿는다. 하지만논문들이 내놓는 결론은 다르다. 결국 둘 중 하나다. ‘행복은 소유라는 생각이 틀렸거나 연구들이 엉터리거나,
- P114

수 천만명의 행복을 분석한 결론을 의심하는 것보다는 삶의 조건이 곧 행복이라는 생각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이 합리적이다. 왜냐하면 이 생각은 몇 가지 맹점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우리의 머리는 불행하지 않은 것‘과 ‘행복한 것‘의 질적 차이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 생수 한 병은 갈증의 고통을 없애주지만, 갈증이 가신 사람에게 물은 더 이상 행복을 주지 못한다. 많은 사람이 추구하는 돈이나 건강 같은 인생의조건들은 사막에서의 물과 비슷하다. 일상의 불편과 고통을줄이는 데는 효력이 있지만, 결핍에서 벗어난 인생을 더 유의미하게 행복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 P115

쾌락은 생존을 위해 설계된 경험이고, 그것이 제 기능을하기 위해서는 본래 값으로 되돌아가는 초기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이 적응이라는 현상이 일어나는 생물학적 이유다. 그리고 수십 년의 연구에서 좋은 조건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장기적으로 훨씬 행복하다는 증거를 찾지 못한 원인이기도 하다. 아무리 대단한 조건을 갖게 되어도, 여기에 딸려왔던 행복감은 생존을 위해 곧 초기화돼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행복 연구에서 아직까지도 품고 있는 질문에 대한 간명한 설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행복은 ‘한 방‘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쾌락은 곧 소멸되기 때문에, 한 번의 커다란 기쁨보다 작은 기쁨을 여러 번 느끼는 것이 절대적이다.
유학 시절, 지도 교수가 쓴 논문을 읽은 적이 있다. 제목은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 P123

최근 등장하는 행복 지침들은 이런 식으로 행복의 증상을원인으로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좋지만, 긍정성 또한 행복한 사람들이 이미 갖고 있는 증상인 경우가 많다. 누군가를 어느 정도 이미 행복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상당 부분 타고난 기질이다 (Archontaki,
Lewis, & Bates, 2013).
- P137

30년 전 성격 연구 과정에서 외향적인 사람들이 유난히 행복하다는 사실을 ‘실수‘로 발견하게 된 것이다(Costa & McCrae.
1980), 즉, 행복은 상당 부분 성격(외향성)과 관련 있다는 중요.
한 초기 암시였다. 그래서 행복 연구의 서막을 올린 것도 에드 디너 교수 같은 성격 심리학자들이었다.
외향성이 높은 사람의 특성은 무엇일까? 대표적으로는사람을 찾고, 그들과 절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외향성이 높을수록 자극을 추구하고, 자기 확신이 높고, 처벌을 피하는 것보다는 보상이나 즐거움을 늘리는 데 초점을 둔다. 최근 연구들에 의하면, 외향적인 사람들이 타인을 찾는 본질적 이유가 자극 추구라는 흥미로운 설명도 있다.(Smillie, Cooper, Wilt, & Revelle, 2012). 사실 사람만큼
‘자극적인 자극도 없다.
구체적인 이유야 무엇이든 외향성은 한마디로 ‘사람쟁이‘
성격이다. 외향성이 높을수록 타인과 같이 있는 시간을 좋아하고, 또 그들(특히 이성)이 자기를 좋아하도록 만드는 데타고난 재주가 있다. 그래서 그들은 첫경험 시기도 빠르고, 경험 상대도 많다. (Nettle, 2006)
- P139

. (Caprallielo & Reis, 2013). 이 논문에 의하면 경험 구매가 물질 구매보다 행복한 본질적 이유는 또다시, 사람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경험(뮤지컬 관람)은 다른 사람과 함께 소비하는경우가 많고, 물건(면도기)은 혼자 쓰기 위해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경험 구매가 물질 구매보다 행복과 더 관련이 있는이유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가령 ‘혼자‘ 영화를 보기 위해 산 티켓은 ‘고독 경험을 구매가 되고, ‘친구들과 놀기 위해게임기를 사는 것은 ‘사회적 물질‘ 구매가 된다. 이런 경우어느 쪽이 더 행복감을 줄까? 위 연구에 의하면 친구와 놀기위해 게임기를 살 때 더 행복하다. 결국 무엇을 구매하느냐보다 구입한 물건 혹은 경험에 다른 사람이 개입되느냐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 P146

시간도 마찬가지다. 자원봉사자들이 높은 행복감을 경험하는 이유도 행복 관점에서 보면 시간이라는 자원을 현명하게, 즉 타인을 위해 쓰기 때문이다.
왜 친사회적인 행동은 행복감을 유발할까? 한 가지 가능성은 남에게 도움을 줄 때 즉각적인 보상이 필요하기 때문일수 있다. 장기적으로 친사회적 행동은 타인과의 결속력을 높여 생존에 필요한 사회적 자원을 확보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단기적 관점에서 고기를 나누어 먹는 것은 손해다. 이손실감을 상쇄하는 강력한 보상이 필요한데, 그것이 즐거움일 수 있다.
- P147

이처럼 개인과 집단의 뜻이 정면충돌할 때 누구의 손을 들어주느냐가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문화의 핵심적인 자이다.
개인의 뜻대로 선택하고 표현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문화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높은 것이다. 가령 미국이나지단의 프랑스 같은 서구 유럽,
한편 집단이 개인에게 때로 과도한 요구를 하고, 이를 수용하지 않는 사람은 철없고 이기적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문화는 집단주의적 성향이 강한 것이다. 한국, 일본, 싱가포르같은 아시아의 ‘행복 부진‘ 국가들이 대표적인 예다.
행복감을 예측하는 가장 중요한 문화적 특성은 개인주의다(Diener, Diener, & Diener, 1995), 소득 수준이 높은 북미나 유럽 국가들의 행복감이 높은 이유도, 사실은 상당 부분 돈 때문이 아니라 유복한 국가에서 피어나는 개인주의적 문화 덕분이다. 그래서 개인주의적 성향을 통계적으로 제거하면, 국가 소득과 행복의 관계가 거의 소멸된다. 즉, 개인주의는 국가의 경제 수준과 행복을 이어주는 일종의 접착제 역할을 한다. (Inglehart, Foa, Peterson, & Welzel, 2008).
- P161

우리나라 정도의 경제 수준이 되면, 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물질주의적 태도 자체가 행복을 저해한다는 것이 많은연구의 결론이다. 극단적으로 사랑과 돈, 당신 인생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매우 간단하지만, 이 질문은 행복한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가르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본인의 경제 수준과 상관없이, 사랑보다 돈을 중요하게 생각할수록 그의 행복도는 낮다(Diener & Biswas-Diener, 2002).
반대로 사랑에 더 많은 가치를 두는 사람일수록 행복하다.
혹시 돈이 없어서 불행하고, 또 가난하기 때문에 돈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가능하지만, 이 현상의 본질적 설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이 아프리카보다 돈을 더 중시한다는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172 - P172

100% 정도가 도움을 청했다. 즉, 거의 무의식적인 수준에서돈을 생각하기만 해도 다른 사람을 덜 도우려 하고, 남의 도움 또한 받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돈의 존재감이 커지는만큼 사람의 존재감은 작아졌다.
과도한 물질주의는 행복에 치명적인 결과를 준다. 행복전구를 가장 확실하게 켜지도록 하는 것이 사람이라고 했다.
하지만 행복해지기 위해 돈에 집착할수록, 정작 행복의 원천이 되는 사람으로부터는 멀어지는 모순이 발생한다.
- P175

물론 지금 세성에서는 돈이 있으면 홀로 생존하는 것이 가능하다. 생존만이 목표라면, 사람없이 돈만 가지고도 살 수 있는 일종의 ‘신세계‘에서 우리는 갈고있다. 사지만 우리의 원시적인 뇌는 아직 이 신세계에 적응이 덜 됐고, 그 안의 행복 전구는 돈 자체에 관심이 없다 - P176

왜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지휘자가 되려 하고, 가장빠른 직구를 던지려고 할까? 즉, 왜 자아성취를 하려고 할까? 그동안 심리학자들은 온갖 철학적·도덕적 이유를 더한장황한 설명을 했다. 하지만 진화생물학적 해석은 모든 것을간명하게 만들었다.
금강산 구경을 하기 위해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본질적 욕구(식욕, 성욕)을 채우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금강산 유람(자아성취)을 한다는 것이 최근 진화심리학적 설명이다 - P184

행복도 오컴의 날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 행복은 가치 value나 이상, 혹은 도덕적 지침이 아니다. 천연의 행복은 레몬의신맛처럼 매우 구체적인 경험이다. 그리고 쾌락적 즐거움이그 중심에 있다(Diener, Sapyta, & Suh, 1997). 쾌락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지만, 이것을 뒷전에 두고 행복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가치 있는 삶을 살 것이냐, 행복한 삶을 살 것이냐는 개인의 선택이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첫째, 이 둘은 같지 않다는 것이고, 둘째는 어디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삶의 선택과 관심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무엇이 가치 있는지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잣대가 필요하고, 많은 경우 그 잣대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평가다. - P186

이런 연구들에서 어떤 사람을 ‘행복한 사람‘으로 정의했을까? 남의 칭송과 칭찬을 받으며 사는 사람이 아니라, 일상에서 긍정적인 정서(기쁨 등)를 남보다 자주 경험하는 사람이다.
즉, 우리가 온갖 오명을 씌우는 쾌락주의자들의 모습이다.
하루를 보면 이들의 삶이 조금 어설퍼 보일지 몰라도, 10년뒤는 이야기가 다르다.
결론을 맺을 때다. 내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행복에 대한두 가지 생각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어서였다. 우선, 행복은 거창한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험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쾌락에 뿌리를 둔, 기쁨과 즐거움 같은 긍정적 정서들이다. 이런 경험은 본질적으로 뇌에서 발생하는 현상이기 때문에, 철학이 아닌 생물학적 논리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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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모두가 돌아갈 무렵엔 우산이 필요하다.《파씨의.입문》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오늘을 어떻게 살아갈지 기억할지 내일은 어떻게 살아갈지

+마거릿 애트우드 《그레이스》 읽고싶은 책. 두번 읽어도 부족한 책이라는 황정은님

˝산다는 것은 우리보더 먼저 존재했던 문장들로부터 삶의 형태들을 받는 것˝...(롤랑바르트 마지막 강의)


p232-239 어른은 부끄러움 뒤에 온다고 김소리는 말했지. 21살에 배지혜에게 배웠던 아이에게 꺼져를 자신이 29에 똑같이 했다고. 수모를 ˝당한˝일이아니라 수모를 준 행동.


산다는 것은 멀하는 것입니다. 산다는 것은 우리보더 먼저 존재했던 문장들로부터 삶의 형태들을 받는 것입니다. 《롤랑바르트, 마지막 강의》

뉴규도 죽지 않는 이야기 한편을 완성하고 싶다.





오늘은 어떻게 기억될까.
정진원은 너무 어려서 오늘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다.
섯살이니 어쩌면 조각난 인상 정도로는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빵과 달걀부침과 자꾸 우는 엄마와 어른들의 침묵…… 정진원이 다 큰 뒤에도 서수경과 내가 함께 있을까.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가 우리를 설명할 수 있을까. 오늘을 설명할 수 있을까. 말하자면 오늘이 오늘이었다는 것을.
훗날 나는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 언제였는지를 생각할것이다. 그것은 정말 언제일까. 내가 태어나고 서수경이태어나고 김소리가 태어나고 정진원이 태어나고, 시작이란 그런 것일까.  - P162

이렇게 가정해볼까. 아버지가 말하는 권위는 곧 힘이고 힘이란 곧 누군가를 공포에 질리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다. 사적인 공간에서 누가 들을까 두려워 급하게 자식의 입을 틀어막게 만든 힘, 그는 그런 힘을 경험했고 그것이 힘이라는 것을 알며 힘이란 곧 그게 되었다. 그게 없음을 그는 혐오한다. ‘권위 없음‘을 혐오한다. 누구도 ‘권위없음‘을 두려워하지는 않으므로 그는 자신의 ‘권위 없음상태를 두려워한다. 그가 누군가의 ‘권위 없음‘을 비난할때 그에게는 그것을 하는 ‘권위‘가 있으므로 그는 힘없음을 힘껏 혐오한다.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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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죽음. 갑자기, 불시에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가.

박조배 : d와 dd의동창. 재앙을 예감하는 인물. 갑자기는 없고 불시라는 것도 없고 언제나 그러한 재앙들을 고민하는 사람. 한 때는 혁명가릉 꾸궜던 사람.

여소녀 : 세운상가 5층 오디오 고치는 분 냉철하게 자신의 대상화 하는 작업을 이해한다.


나는 내 환멸로부터 탈출하여 향해 갈 곳도 없는데요. p114

p111-p114이승에서 저승으로 넘어왔구나/ 움직이지 않고 앉아있고나 움짇일때, 무언가를 생각하고나 생각하지 않을 때, 나는 죽음을 느껴요. 매우 정지된 지금을요. 너무 정지되어서, 지금 바로 뒤를 나는 상상할 수 없고요 궁금하지도 않아요. /내가 현재나 과거를 생각항 때, 그것은 매번 죽음이고, 죽음을 경계로 이 세계와 저 세계로 나뉘는 것이 아니고 죽음엔 죽음 뿐이며, 모든 죽음은 오로지 두개로 나눌 수 있을 뿐이자.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목격되거나 목격되지 못하거나. 그렇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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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지 않은 취행. 그보다는, 취향이 되기전 중단된 취향 - P84

 d는아무렇게나 책을 펼쳤다가 힘의 범람,이라는 구절을 보고 반복해서 그것을 읽었다. 범람. 힘의. 힘의 범람. 누군가 다시 벽을 때렸고 이번엔 다른쪽 방이었다.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이번에는 벽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오른쪽 방과 왼쪽 방에서. d는 옆방의 거주자들을 생각하고 미소 지었다. 옆방을, 15번과 똑같은 16번과 17번의 구조를, 자신의 것과 다를 바 없거나 더 더러운 침구와 벽, 합판과 시트지로 구성된 싸구려 가구와 그 방을 가득 채우고 있을 허름한 생필품을 생각했다. 나는 그 사물들의 일시적 소유자들에게 그들 자신의 것보다 혐오스러운 것,
좀더 견딜 수 없는 것, 말하자면 자신의 이웃을 향해, 그토록 열심으로 벽을 두들길 기회를 주고 있다. 재미있느냐고? 재미있다. 재미가 있다. d는 책장을 한장 더 넘기며생각했다. 매트리스를 짓누를 때 말고는 존재감도 무게도 없어 무해한 그들, 내 이웃. 유령적이고도 관념적인 그 존재들은 드디어 물리적 존재가 되었다. 사악한 이웃의 벽을 두들기는 인간으로.
음악이 다시 시작되었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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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영문학자 리타 펠스키에 따르면, 의견 차이를 분명히 드러내며 기꺼이 서로를 비판하는 동시에 스스로가 가진 생각에 의문을 품어보고, 필요하다면 과감히 낡은 생각을 폐기하는등의 융통성을 발휘해야만 페미니즘은 생명력 있는 이론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페미니즘이라는 사상적 기반을 공유하지 않거나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사람과도 언제든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최근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백래시 Back-lash(사회 변화에 대한 대중의 반발)‘라는 개념에 의존하면서 모든 비판을 반동적인 것으로 취급하는 것을 목격하곤 한다. 이러면 이견 - P63

을 가진 누구와도 대화할 수 없다. 물론 앞에 쓴 것처럼 상대가 나를 파시스트나 ‘정부요원‘처럼 취급하는 상황에서 대화를 이어나가려는 시도는 쉽지 않다. 가짜뉴스와 사기 행각이 공론장을 망치고 있는 상황에서 이상적 대화와 합리적 토론이 가능하다는 생각은 순진한 바람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저들이 우리를 끌어내려도, 우리는 결코 같이 끌려 내려가지 않겠다는 마음이야말로 거짓과 위선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필요한 용기가 아닐까.
- P64

"제가 사랑하는 우리 엄마가, 우리 아내가, 착하고 성실한 우리 딸이… 상담드릴 예정입니다" 라는 멘트를 녹음해서 들려줬다. 정책은 성공적이었다. 고객들의 반응은 호의적이었고 화제성이 높았다. 이후 광고로도 만들어졌고, 좋은 광고로 뽑혀 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정말 이걸로 괜찮아졌을까? 이처럼 서로가 누군가의소중한 자식이고 가족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면 서로를 존중할수 있다는 생각은 꽤 널리 퍼져 있다. 명절 때마다 이주노동자들의가족상봉 프로그램이 인기리에 방영되는 것도 비록 피부색과 언어는 달라도 그들 역시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므로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의 연장선에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왜 귀하게 기른 딸은 아르바이트 작업장에서 노동권을 제대로 주장하지 못했을까. 가족 안에서 귀애한 존재로 키워지는 것과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존중받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선이 그어져 있다. 우리의 일상에서는 "나도 너만 한딸이 있는데"라며 삿대질을 당하고, 내가 잘못하면 부모가 소환되며, 남편의 실수가 곧 아내의 흠이 된다. 가족은 존중의 근거가 아니라 협박의 조건이다. 한국 같은 고도의 가족 중심주의 사회에 신자유주의 패치가 설치된 결과 가족 단위를 중심으로 이해관계를추구하는 것이 상식이 되었다. 이런 사회에서 가족과의 연결감은 - P74

사회적 연결감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실제로 콜센터 노동자에게가장 크게 와닿은 정책은 통화연결음이 아니라 업무중단권이었다. 성희롱과 폭언을 당했을 때 끊을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자 스트레스 지수가 떨어졌다는 결과도 발표되었고, 다른 사업장에도 확장되었다. 모든 사람은 누군가의 무엇이어서가 아니라 개인으로서 세계 속에 동등하게 존재한다는 감각이 확고해질 때 권리를 가질 수 있다. 사랑, 성, 가족에 대한 감각 역시 소유와 배타성에서 자유와 상호존중의 감각으로 바뀔 때 비로소 가족과 사회의 분할된 세계가 이어지지 않을까.
- P75

상대를 제압하고 손에서 불을 뿜으며 미사일을 요격하고 우주를 날다니는 여전 수퍼히어로가 등장하는 <캡틴 마블〉에는 그다지 인상적인 액션 신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중추신경계를 자극하는 쾌락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여성 슈퍼히어로가 관객에게 제공하는 가장 강력한 쾌락은 ‘마침내 자유로워진 순간‘이라는 감각을 전달할 때다. 가장 강한 순간이 아니라, 가장 자유로운 순간.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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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은 피해의식이 생기는 걸 두려워할까. 우리 사회에서 피해의식‘은 ‘남 탓을 한다‘는 말과 동의어로, 보통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히지만 이건 과대망상이나 남 탓하기라는 문제 행동을 피해자에게 뒤집어씌우는 일이다. 이런 덧씌우기는 피해자가
‘건강한 피해의식을 가지는 걸 방해한다. 피해의식victim mentality의 사전적 의미를 바탕으로 해석하면 이렇다. 첫째, 피해자는 문제의 발생 원인이 아니다. 둘째, 피해자는 문제의 발생을 막을 의무가 없다. 셋째, 피해자는 권리를 침해받은 자로서 공감받을 자격이 있다. 이렇게 피해의식을 이해하면 문제는 간단해진다. 없이 져야할 것은 피해의식이 아니라 피해자를 비난하는 문화다. 두려워해야 할 것은 피해의식 때문에 재미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비슷비슷한 영화만 보고 그 익숙함을 재미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나는 언제나 기꺼이 재미를 찾아다닌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의 손목을 비틀어 잡고 벽에 밀어붙이는장면이 더는 로맨틱히지 않고, 소수사에 대한 자별과 혐오 발화가더는 재미있지 않을 뿐이다. 이 정도를 가지고 까다롭고 예민하다고 취급된다면 그 점이 놀라울 따름이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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