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것을 행복과 연결시키면 당연하지 않은 결론이 나온다. 이 새로운 관점으로 보면 행복은 삶의 최종적인 이유도 목적도 아니고, 다만 생존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정신적 도구일 뿐이다.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상황에서 행복을 느껴야만 했던 것이다.
우리는 사회적 인간의 유전자를 받았고, 그것을 통해 ‘사회적 생존 비법을 전수 받았다. 이 ‘생존 비법 패키지‘를 뜯어보면 두 가지 중요한내용물이 나온다. 하나는 ‘고통‘이라는 경험이다. 고통을 경험하지 못하는동물은 오래 살 수 없다. 다리에 박힌 못이 아프지 않으면 치료하지 않을 것이고, 결국 목숨까지도 잃을 수 있다. 생존에위협이 되는 작은 불씨를 미리 끄는, 일종의 호루라기 소리가 고통이다. - P87
다리가 잘려나가는 것만큼 인간의 생존을 위협한 것이 집단으로부터 잘려나가는 것이었다. 이때 뇌는 사회적 고통이라는 기제를 사용해 그 위협을 우리에게 알렸다. 외로움, 배신감, 이별의 아픔, 인간관계에 금이 가는 신호가 보일 때 뇌는 이런 마음의 아픔을 느끼도록 했고, 그 덕분에 더 치명적인 고립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신체적 고통과 사회적 고통, 원인은 달라도 기능은 같다. 생존에 위협이 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으니 조치를 취하라는 신호다. "너 아직도 TV 보니? 당장 나가서 여자친구 붙잡아!" 사회적 고통이 전하는 메시지다. - P88
우리 조상이 물려준 생존 패키지의 두 번째 내용물은, 우리의 관심사인 ‘쾌감‘이다. 고통과 같은 부정적 경험이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면, 긍정적 정서의 기능은 생존에 필요한 자원을 추구하도록 하는 것이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생명체가 오래 생존하지 못하는 것처럼 쾌감을 상실한 동물 또한 문제가 생긴다. ex)먹는 즐거움 때문에 우리는 무언가를 먹음 - P91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확보해야 했던 또 하나의 절대적 자원이 있다. 앞에서 언급한 사람‘이다. 먹는 쾌감을 느껴야 음식을 찾듯 사람이라는 절대적 생존 필수품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선 인간을 아주 좋아해야 한다. 타인을 소 닭 보듯 바라보는 사람에게 친구나 연인이 생길 리 없다. 이런 ‘사회적 영양실조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왕성한 ‘사회적 식욕을 갖는 것이다. 식욕의 근원은 쾌감이다. 그래서 사람(특히 이성)을 만나고, 살을 비빌 때 뇌에서는 사회적 쾌감을 대량 방출한다. ‘강추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런 사회적 쾌감을 예민하게 느꼈던 자들의 유전자를 지니고 산다. 그래서 지금도 사람을 절실히 찾는 것이고, 가장 강렬한 기쁨과 즐거움을 사람을 통해 느끼는 것이다. 사람과 무관해 보이는 감정들도 사실 대부분 사람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 P93
첫째, 행복은 객관적인 삶의 조건들에 의해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 둘째, 행복의 개인차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그가 물려받은 유전적 특성,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외향성이라는 성격 특질이다. - P98
감정의 또 다른 특성은 상대적이라는 점이다. 이 현상을설명하기 위해 UCLA의 알렌 파르두치Allen Parducci 교수는범위 빈도 이론range-frequency theory‘ 이라는 복잡한 개념을소개했지만(Parducci, 1995) 요지는 간단하다. 극단적인 경험을한 번 겪으면, 감정이 반응하는 기준선이 변해 그 후 어지간한 일에는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중상위권 성적의학생이 전교 1등을 한 번 하고 나면, 예전 성적을 다시 받았을 때 실망하게 된다. 고깃국 맛을 한 번 보면 예전의 콩나물국이 왠지 밋밋해지는 것처럼(송관재, 2013). - P110
이런 절차를 통해 나뉜 외모 상위권과 하위권 사람들의 행복값을 비교해보면, 외모와 행복은 유의미한 관계를 보이지 않는다. 즉, 내가 다른 사람 눈에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느냐(객관적 미모)는 자신이 느끼는 행복감과 관련이 없었다. 하지만 흥미로운 결과가 하나 나타났다.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정도(주관적 미모)는 행복과 관련이 있었다. 외모뿐 아니라 다른 삶의 조건(건강, 돈 등)과 행복의 관계에서도 유사한 패턴이 나타난다. 객관적으로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보다 이미 가진 것을 얼마나 좋아하느냐가 행복과 더 깊은관련이 있다(Diener, Lucas, Oishi, & Suh, 2002), 중간 정리를 한번 해보자. 사람들은 인생의 좋은 것들을많이 소유하는 것이 행복의 전제 조건이라고 믿는다. 하지만논문들이 내놓는 결론은 다르다. 결국 둘 중 하나다. ‘행복은 소유라는 생각이 틀렸거나 연구들이 엉터리거나, - P114
수 천만명의 행복을 분석한 결론을 의심하는 것보다는 삶의 조건이 곧 행복이라는 생각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이 합리적이다. 왜냐하면 이 생각은 몇 가지 맹점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우리의 머리는 불행하지 않은 것‘과 ‘행복한 것‘의 질적 차이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 생수 한 병은 갈증의 고통을 없애주지만, 갈증이 가신 사람에게 물은 더 이상 행복을 주지 못한다. 많은 사람이 추구하는 돈이나 건강 같은 인생의조건들은 사막에서의 물과 비슷하다. 일상의 불편과 고통을줄이는 데는 효력이 있지만, 결핍에서 벗어난 인생을 더 유의미하게 행복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 P115
쾌락은 생존을 위해 설계된 경험이고, 그것이 제 기능을하기 위해서는 본래 값으로 되돌아가는 초기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이 적응이라는 현상이 일어나는 생물학적 이유다. 그리고 수십 년의 연구에서 좋은 조건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장기적으로 훨씬 행복하다는 증거를 찾지 못한 원인이기도 하다. 아무리 대단한 조건을 갖게 되어도, 여기에 딸려왔던 행복감은 생존을 위해 곧 초기화돼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행복 연구에서 아직까지도 품고 있는 질문에 대한 간명한 설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행복은 ‘한 방‘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쾌락은 곧 소멸되기 때문에, 한 번의 커다란 기쁨보다 작은 기쁨을 여러 번 느끼는 것이 절대적이다. 유학 시절, 지도 교수가 쓴 논문을 읽은 적이 있다. 제목은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 P123
최근 등장하는 행복 지침들은 이런 식으로 행복의 증상을원인으로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좋지만, 긍정성 또한 행복한 사람들이 이미 갖고 있는 증상인 경우가 많다. 누군가를 어느 정도 이미 행복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상당 부분 타고난 기질이다 (Archontaki, Lewis, & Bates, 2013). - P137
30년 전 성격 연구 과정에서 외향적인 사람들이 유난히 행복하다는 사실을 ‘실수‘로 발견하게 된 것이다(Costa & McCrae. 1980), 즉, 행복은 상당 부분 성격(외향성)과 관련 있다는 중요. 한 초기 암시였다. 그래서 행복 연구의 서막을 올린 것도 에드 디너 교수 같은 성격 심리학자들이었다. 외향성이 높은 사람의 특성은 무엇일까? 대표적으로는사람을 찾고, 그들과 절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외향성이 높을수록 자극을 추구하고, 자기 확신이 높고, 처벌을 피하는 것보다는 보상이나 즐거움을 늘리는 데 초점을 둔다. 최근 연구들에 의하면, 외향적인 사람들이 타인을 찾는 본질적 이유가 자극 추구라는 흥미로운 설명도 있다.(Smillie, Cooper, Wilt, & Revelle, 2012). 사실 사람만큼 ‘자극적인 자극도 없다. 구체적인 이유야 무엇이든 외향성은 한마디로 ‘사람쟁이‘ 성격이다. 외향성이 높을수록 타인과 같이 있는 시간을 좋아하고, 또 그들(특히 이성)이 자기를 좋아하도록 만드는 데타고난 재주가 있다. 그래서 그들은 첫경험 시기도 빠르고, 경험 상대도 많다. (Nettle, 2006) - P139
. (Caprallielo & Reis, 2013). 이 논문에 의하면 경험 구매가 물질 구매보다 행복한 본질적 이유는 또다시, 사람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경험(뮤지컬 관람)은 다른 사람과 함께 소비하는경우가 많고, 물건(면도기)은 혼자 쓰기 위해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경험 구매가 물질 구매보다 행복과 더 관련이 있는이유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가령 ‘혼자‘ 영화를 보기 위해 산 티켓은 ‘고독 경험을 구매가 되고, ‘친구들과 놀기 위해게임기를 사는 것은 ‘사회적 물질‘ 구매가 된다. 이런 경우어느 쪽이 더 행복감을 줄까? 위 연구에 의하면 친구와 놀기위해 게임기를 살 때 더 행복하다. 결국 무엇을 구매하느냐보다 구입한 물건 혹은 경험에 다른 사람이 개입되느냐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 P146
시간도 마찬가지다. 자원봉사자들이 높은 행복감을 경험하는 이유도 행복 관점에서 보면 시간이라는 자원을 현명하게, 즉 타인을 위해 쓰기 때문이다. 왜 친사회적인 행동은 행복감을 유발할까? 한 가지 가능성은 남에게 도움을 줄 때 즉각적인 보상이 필요하기 때문일수 있다. 장기적으로 친사회적 행동은 타인과의 결속력을 높여 생존에 필요한 사회적 자원을 확보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단기적 관점에서 고기를 나누어 먹는 것은 손해다. 이손실감을 상쇄하는 강력한 보상이 필요한데, 그것이 즐거움일 수 있다. - P147
이처럼 개인과 집단의 뜻이 정면충돌할 때 누구의 손을 들어주느냐가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문화의 핵심적인 자이다. 개인의 뜻대로 선택하고 표현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문화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높은 것이다. 가령 미국이나지단의 프랑스 같은 서구 유럽, 한편 집단이 개인에게 때로 과도한 요구를 하고, 이를 수용하지 않는 사람은 철없고 이기적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문화는 집단주의적 성향이 강한 것이다. 한국, 일본, 싱가포르같은 아시아의 ‘행복 부진‘ 국가들이 대표적인 예다. 행복감을 예측하는 가장 중요한 문화적 특성은 개인주의다(Diener, Diener, & Diener, 1995), 소득 수준이 높은 북미나 유럽 국가들의 행복감이 높은 이유도, 사실은 상당 부분 돈 때문이 아니라 유복한 국가에서 피어나는 개인주의적 문화 덕분이다. 그래서 개인주의적 성향을 통계적으로 제거하면, 국가 소득과 행복의 관계가 거의 소멸된다. 즉, 개인주의는 국가의 경제 수준과 행복을 이어주는 일종의 접착제 역할을 한다. (Inglehart, Foa, Peterson, & Welzel, 2008). - P161
우리나라 정도의 경제 수준이 되면, 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물질주의적 태도 자체가 행복을 저해한다는 것이 많은연구의 결론이다. 극단적으로 사랑과 돈, 당신 인생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매우 간단하지만, 이 질문은 행복한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가르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본인의 경제 수준과 상관없이, 사랑보다 돈을 중요하게 생각할수록 그의 행복도는 낮다(Diener & Biswas-Diener, 2002). 반대로 사랑에 더 많은 가치를 두는 사람일수록 행복하다. 혹시 돈이 없어서 불행하고, 또 가난하기 때문에 돈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가능하지만, 이 현상의 본질적 설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이 아프리카보다 돈을 더 중시한다는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172 - P172
100% 정도가 도움을 청했다. 즉, 거의 무의식적인 수준에서돈을 생각하기만 해도 다른 사람을 덜 도우려 하고, 남의 도움 또한 받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돈의 존재감이 커지는만큼 사람의 존재감은 작아졌다. 과도한 물질주의는 행복에 치명적인 결과를 준다. 행복전구를 가장 확실하게 켜지도록 하는 것이 사람이라고 했다. 하지만 행복해지기 위해 돈에 집착할수록, 정작 행복의 원천이 되는 사람으로부터는 멀어지는 모순이 발생한다. - P175
물론 지금 세성에서는 돈이 있으면 홀로 생존하는 것이 가능하다. 생존만이 목표라면, 사람없이 돈만 가지고도 살 수 있는 일종의 ‘신세계‘에서 우리는 갈고있다. 사지만 우리의 원시적인 뇌는 아직 이 신세계에 적응이 덜 됐고, 그 안의 행복 전구는 돈 자체에 관심이 없다 - P176
왜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지휘자가 되려 하고, 가장빠른 직구를 던지려고 할까? 즉, 왜 자아성취를 하려고 할까? 그동안 심리학자들은 온갖 철학적·도덕적 이유를 더한장황한 설명을 했다. 하지만 진화생물학적 해석은 모든 것을간명하게 만들었다. 금강산 구경을 하기 위해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본질적 욕구(식욕, 성욕)을 채우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금강산 유람(자아성취)을 한다는 것이 최근 진화심리학적 설명이다 - P184
행복도 오컴의 날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 행복은 가치 value나 이상, 혹은 도덕적 지침이 아니다. 천연의 행복은 레몬의신맛처럼 매우 구체적인 경험이다. 그리고 쾌락적 즐거움이그 중심에 있다(Diener, Sapyta, & Suh, 1997). 쾌락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지만, 이것을 뒷전에 두고 행복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가치 있는 삶을 살 것이냐, 행복한 삶을 살 것이냐는 개인의 선택이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첫째, 이 둘은 같지 않다는 것이고, 둘째는 어디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삶의 선택과 관심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무엇이 가치 있는지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잣대가 필요하고, 많은 경우 그 잣대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평가다. - P186
이런 연구들에서 어떤 사람을 ‘행복한 사람‘으로 정의했을까? 남의 칭송과 칭찬을 받으며 사는 사람이 아니라, 일상에서 긍정적인 정서(기쁨 등)를 남보다 자주 경험하는 사람이다. 즉, 우리가 온갖 오명을 씌우는 쾌락주의자들의 모습이다. 하루를 보면 이들의 삶이 조금 어설퍼 보일지 몰라도, 10년뒤는 이야기가 다르다. 결론을 맺을 때다. 내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행복에 대한두 가지 생각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어서였다. 우선, 행복은 거창한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험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쾌락에 뿌리를 둔, 기쁨과 즐거움 같은 긍정적 정서들이다. 이런 경험은 본질적으로 뇌에서 발생하는 현상이기 때문에, 철학이 아닌 생물학적 논리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 P18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