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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정복왕 윌리엄이 1066년 영국(잉글랜드가 맞지만 편의상 영국으로 부른다)을정복하고 영국 왕으로 등극하는 과정을 상세히 추적하고 영어에 미친 프랑스이의 영향 등 역사와 문화 교류의 내용을 풀어 쓴 책이다.
정복왕 윌리엄은 중세 유럽의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서 입지전적인 군주다. 그의 조상은 덴마크에서 건너온 바이킹이었고, 911년에 노르망디 지방에 정착하여 프랑스 왕의 몽신이 된 롤롱 Rullan이 그 시조다. 그는 노르망디 공국의 제대 공작이었다. 월리엄은 노르망디의 장엄공 로베르의 사생아로 태어났다. 중세 사회에서, 특히 노르망디 공국에서 제후의 사생아로 태어났다는 사실은 다른 나라에 비해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 덴마크 바이킹의 후손인 노르만인들은 ‘덴마크식 풍습.nore danics 이라는 독특한 관습을 지키고 있었다. 이들의 풍습에 따르면 비록 서자라고해도 아버지의 지위와 재산을 적자처럼 물려받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어떻게 윌리엄이 서자 출신으로 노르망디 공작이 되었으며 훗날 영국을 정복하고 위대한 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는지를 다양한 학문적 관점에서 중세 영국과 노르망디 공국의 역사를 아울러 조망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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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은 용감했지만 다소 폭력적인 군주였다. 하지만 그는 항상 현명한 참모들을 가까이 두었다. 그중에서도 평생 윌리엄을 보필한 수도사랑프랑 같은 인물이 대표적이었다. 그는 이탈리아 출신 수도사였는데, 학문과 지식이 출중하고 분별력과 열정이 있는 사람이었다. 랑프랑은 윌리엄이 죽을 때까지 평생 주군을 보필한 핵심 참모였다. 그는 지적으로 성숙한 사람이었고 신앙심이 올곧은 성직자였다. 게다가 성격도 겸손했다. 그는 다혈질인 윌리엄 공에게 로마법에 퍼져 있던 법적 개념을 소개하고 당시로서는 낯설었던 자연법과 평등에 대한 개념들을 윌리엄에게 소개한인물이다. 평생에 걸쳐 랑프랑이라는 지적 완충 지대가 없었다면 윌리엄은 영국 정복을 완수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윌리엄이 공작이 된 후 정치적 안정기를 구가한 지도 수십 년이 지났다. 이 책의 3부는 영국 정복에 관한 이야기다. 윌리엄의 일생은 세 구간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 구간은 1035년 윌리엄의 아버지인 장엄공 로베르가 죽고 불과 7세 때 노르망디의 공작이 되는 시기다. 이 시기는 후견인들 덕분으로 안전하게 성장하는 단계다. 두 번째는성년이 되어 공국의 제후들이 일으키는 수많은 반란을 제압하는 1065년까지의 시기다. 그리고 마지막은 1066년 영국 정복에 성공하고 영국 왕이 된 후 사망할 때(1087)까지의 기간이다. 영국 왕이 된 후에도 윌리엄은 사방에서 일어나는 반란을 진압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노르망디보다 인구는2배, 총생산이 3배 더 많았던 거대한 영국을 통치하기가 그만큼 힘들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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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보면 소수의 노르만인이 영국을 통치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는노르만국이라는 당시로서는 근대적인 국가 시스템을 들 수 있고, 엘리트계층의 고급문화와 발달된 제도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까지만 해도 영국에 없었던 요새성의 건축을 통해 피지배 계층을 효과적으로 통치한 것도 정복에 성공한 이유 중의 하나였다.


정복 이후 영국에서는 앵글로색슨 왕조가 사라지고 노르만 왕조(1066 - 1154)가 들어선다. 영국이 게르민 세계에서 라틴 문화의 영역으로들어온 것이다. 영국 문화는 이후 프랑스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언어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후 등징하는 플랜태저넷 왕조(1154~1399)의 마지막 왕인 리치드 2세에 이르기까지 영국 왕의 모국어는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였다는 사실 하나만 봐도 윌리엄이 영국 왕조에 미친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은 중세 봉건 제후의 영웅담이 아니다. 윌리엄이 수많은 전생에서 승리하고 마침내 노르망디 공국보다 몇 배나 더 큰 잉글랜드 왕국을정복했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그가 일구어놓은 앵글로 노르만 제국이어떻게 당시 서유럽에서 가장 발전된 나라가 될 수 있었는지 그 원인을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주제일 것이다.
서양사의 주도권은 여러 나라를 거쳐 영국에 정착했다. 영국은 프랑스와의 애증 관계를 끊고, 세계사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현재 영국 왕실의 뿌리인 정복왕 윌리엄이 다져놓은 노르만 왕조, 즉 노르만 제국이 그 중심에 있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1987년 영국의 찰스 왕세자가 노르망디의 옛 도시 캉을 찾았다. 그는정복왕 윌리엄이 묻혀 있는 생테티엔 성당을 찾아 프랑스인들 앞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윌리엄! 당신들의 공작, 우리의 왕, 그리고 나의 조찰스 왕세자는 정복왕 윌리엄의 33대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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