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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아파트의 아이들 ㅣ 리틀씨앤톡 모두의 동화 11
정명섭 지음, 이예숙 그림 / 리틀씨앤톡 / 2019년 10월
평점 :

아무리 과학적 현상에 관심이 많은 엘라라도 단순히 지식적인 부분의 관련 책을 보여주면 그 흥미가 오래가지 못했다. 어린이집에서 매달 훈련하는 비상대피훈련과 지진대피훈련... 몇년을 하고도 단 한번을 집에 와서 어땠다 말 안하던 엘라가 갑자기 화산 폭발 실험이랑 지진 실험을 해야겠단다. 간단한 거라 집에 있는 점토와 물감 그리고 요구르트 병, 베이킹 소다로 화산 실험도 하고 점토를 켜켜히 쌓아 올려 양 옆에서 손으로 밀어 휘게도 만들고 칼로 잘라보기도 하였다. 어린집에서 배우는 수준이 꽤 놀랄만 하다. 그렇담 엄마는 바로 관련 영상 찾아 보여주고 관련 책 들이밀기~~~^^
다행스럽게도 엘라는 지층에 대해 관심이 아주 많아 이미 지층의 구조에 대해선 여러차례 영상과 책을 접했다. 하지만 얼마전 하와이 화산폭발과 일본 지진 등의 영상을 보여주니 느낌이 다른가 보다. 게다 쓰나미를 보더니 헉!!! 아이에게 너무 자극적인 공포심만 줄까 두려워 아이 수준에 맞는 감성이 담긴 지진관련 책을 보여 주기로 했다. [무너진 아파트의 아이들] 단순 사고 관련 책이라 생각하다 내가 먼저 읽어보고는 아이들이 읽기에 너무 적합한 책이란 생각이 들어 엘라에게 읽어줘야 했는데 꽤나 글밥이 많고 두꺼운 책인데도 아이의 감성이 그대로 전달되는 책이라서 인지 꼼짝하지도 않고 혼자 읽어내려갔다.
[무너진 아파트의 아이들] 이 책은 간단히 말하자만 지진의 파괴력을 직접 겪은 아이들의 경험을 통해 얼마나 무서운 것이고 그렇다면 지진 발생 시 우리는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지를 다룬 책이다.

소설가가 꿈인 현준이, 영어 단어 경진대회에 열을 올리는 혜진이, 게임 중독을 고치려 애쓰는 태성이. 지난여름, 세 아이는 갑작스레 닥친 대정전 사태(블랙아웃)에서 채모령 선생님과 에너지 박사님의 도움을 받아 무더위에 쓰러져가는 노인들을 구하게 됬고, 에너지 삼총사란 별명을 얻었다.
세 아이가 사는 도시, 영산시에 이번에는 지진이 일어난다. 현준이, 혜진이, 태성이는 집에서, 길거리에서, 해변에서 지진의 난동을 난생처음 경험하면서 공포를 느낀다. 아파트가 흔들리고, 거리의 자동차들이 휘청거리고, 깊은 바닷속에 살 법한 산갈치가 해안가에 출몰한다.
땅이 흔들리는 걸 직접 느낀 세 아이는 불안감에 휩싸인 채 채모령 선생님의 자유 수업을 듣게 되고, 채모령 선생님은 지진에 대한 수업을 진행한다. 아무리 무서운 일이라도 미리 알고 대처하면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법! "지진은 왜 일어날까?" 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지진 수업에서, 세 아이는 지구가 어떻게 생겼는지부터 배우게 된다. 지진은 땅을 흔들리게 하는 무시무시한 현상이기도 하지만 인류가 지구의 생김새를 알게 되는 데 지진의 역할이 컸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이 수업을 들으면서 아이들은 지구와 지진의 정체에 관해 더욱 큰 호기심이 발동한다. 현준이는 소설에 대한 영감이 마구 솟았고, 혜진이는 지진이 영어 단어 경진대회의 참신한 주제가 될 거라 생각한다. 태성이는 게임하고 싶은 충동을 잊기 위해 지진이든 뭐든 몰두할 곳이 필요하다. 그리고 게임에서 이기는 것보다 실제 위험 상황을 헤쳐나가는 일에 재미를 느낀다.
처음에는 무섭다고만 느꼈던 세 아이도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되며 점점 지진에 대한 호기심이 커져간다. 셋은 의기투합해 영산시 해변에 있는 지층을 찾아보러 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해안가를 탐색하던 아이들은 수상한 차림의 숲속 마녀와 같은 인상을 풍기는 여자를 마주친다. 그는 바로 지진 전문가인 손세라 박사! 영산시에서 큰 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는 위험을 감지하고 이 도시를 탐색하러 왔다는 박사를 통해 지진에 관해 좀 더 깊숙한 정보를 얻게 된다. 손세라 박사는 학계에서도 이단아로 불리는 존재로 우리나라가 지진 안전지대라는 기존의 학설을 전면 뒤집고 나선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달리 환태평양 지진대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지진 안전지대라고 알려져 왔다. 이에 대해 손세라 박사는 몇 해 전 나라를 발칵 뒤집었던 포항 지진을 근거로 여러 가지 자료를 조사해 우리나라 또한 지진 안전지대라고는 할 수 없다는 증거를 내민다. 그러면서 현재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지역으로 영산시를 꼽는다.

박사의 수업을 흥미롭게 듣던 아이들은 영산시에서 발견된 지진의 징조를 찾으라는 미션을 받고 도시 곳곳을 탐색하러 다닌다.
손세라 박사와 아이들의 움직임은 다른 아이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어른들에게 반감을 사게 되며 큰 소동이 벌어진다. 동네에서 '지진이 일어날 수도 있다.' 라는 사실만으로도, 어른들은 집값이라든지 재개발 문제 등 걱정할 게 많아 보인다. 무엇보다 불안한 마음으로 살고 싶지 않은 어른들은 이 문제를 회피하려고만 한다.
예상했던 대로 영산시 곳곳에서 지진의 징조는 발견되고, 세 아이는 이 위험성을 알리려 발을 동동 구르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가상의 도시, 영산시에는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어울려 산다. 비싼 아파트에 사는 아이는 재개발 지역에서 전학 온 친구를 '거지' 라 놀리며 괴롭히기도 한다.하지만 초고 층 아파트든, 도심 한복판이든, 재개발 예정인 낮은 아파트든, 그 어느 곳도 지진에서 안전한 곳은 없다. 지진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느냐에 대한 자료도 참고 사항일 뿐이다.
지금 내가 사는 이곳에서 오늘 지진이 일어난다면, 과거에 얼마나 드물게 벌어진 일이든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애써 묻어두고 싶어한다. 누구나 불안한 마음을 안고 살고 싶진 않기 때문데 '위험하다' 보다는 '안전하다' 하는 말을 믿고 싶은 것이다. 이런 막연한 믿음이야말로 위험한 것일 수 있다.

채모령 선생님과 손세라 박사의 수업을 세 아이와 함께 집중하다 보면 지진에 대한 기본 정보부터 새롭게 대두되는 지진 이론에 대해서까지 꿰뚫어 알 수 있다. 현준이, 혜진이, 태성이도 지진 수업을 듣고 호기심이 발동하면서, 원래 느꼈던 공포심은 점점 더 희미해진다. 재개발 아파트에서 발견되는 단층 및 약수물의 이상한 냄새 등 지진 전조 현상을 보고 아파트 주민을 구하기 위해 화재 비상벨을 누르고 익히 익혔던 지식을 토대로 창고의 구석으로 대비하는 등 실감나는 이야기 전개에 푹 빠져 읽게 된다. 아이들의 감정과 행동을 따라가며 읽다보면 독자인 우리 아이들도 세 아이와 같은 감정과 깨달음을 느낄 것이다.

우리가 대비해두어야 할 재난은 지진뿐이 아니다. 먼 나라를 찾을 거 없이 우리나라에서 쉽게 만나는 태풍, 화재, 폭설 등 우리가 사는 이 공간에 벌어질 수 있는 갖가지 다른 재난도 마찬가지로 미리 잘 알고 대처법을 생각해두어야 한다.
[무너진 아파트의 아이들] 의 세 아이는 가장 무서울 수 있는 상황에도 눈과 귀를 막지 않았다. 영산시에서 가장 호기심이 많은 '에너지 삼총사' 라는 별명에 걸맞게, 셋이 힘을 합쳐 용기있게 맞서 헤쳐나갈 뿐이다. 어른으로서 부끄러운 모습이 보여지는데 어쩌면 이것이 바로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라 더욱 와닿는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우리는 지진이란 현상에 대해 무감각하다. 스스로 난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고 대비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