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증샷 말고 사진으로 만난 아바나 (아바나의 시민들)

아바나의 시민들 ㅣ 슬로북 Slow Book 1
백민석 글.사진 / 작가정신 / 2017년 7월

백민석 작가가 쿠바의 수도 아바나를 여행하고 쓴 에세이 <아바나의 시민들>. 그가 찍은 사진과 쓴 글을 통해 쿠바의 또 다른 모습을 본다.

다른 여행 에세이와 달리 작가 자신을 2인칭 '당신'으로 칭하는 서술 방식이 인상적이다. 이 낯선 방식은 처음엔 조금 어색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점점 '당신'이 '나'인 듯 착각하게 만든다. 그간의 여행 에세이가 내가 작가에 빙의되어 여행지를 보는 것이었다면, <아바나의 시민들>은 작가가 나에게 빙의되어 아바나를 둘러보는 느낌이었다. 혹은 내가 여행하고 작가가 나레이션하는 느낌. 이 묘한 서술 방식이 나를 자꾸 아바나의 골목 어디로 옮겨다 놓는다.

직접 여행하는 기분을 갖게 하는 2인칭 서술 방식은 아바나의 더위도 느끼게 한다. 아바나의 거리를 터벅터벅 걷다 보면 어느새 땀이 나고 태양을 피해 만난 그늘에 나도 절로 시원해진다. 관광지가 아닌 사람 사는 곳으로써 만난 아바나는 정감 있었다. 순박하고 자유로운 사람들. 사진기 앞에서 주눅 들지 않는 사람들. 만약 서울이었다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당신은 그런 의미에서 아직도 서울에 있는 셈이다. 출신이, 부동산이, 학벌이, 수입이 중요한 서울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p.11)

 

아바나의 사람들, 아바나의 풍경들도 좋았지만 이렇게 작가의 생각이 번뜩일 때가 가장 좋았다. 여행이 자신을 찾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이 책의 작가는 아바나를 여행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눈으로 아바나를 보려고 노력한다.  

 

노트북에 넣어 아바나까지 가져온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에는 아바나의 빈곤함이 지나치게 강조되었다. 카메라는 냉철하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지 못한다. 카메라는 자기 주인이 보는 현실만을 담는다. (p.119)

 

당신은 결국, 믿을 건 당신 자신의 사진뿐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의 기계 눈이, 당신이 보는 아바나를 있는 그대로 냉철하게 남겨줄 거라고. (p.120)

 

혹자는 사진에 찍힌 것만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지만, 사진 없는 추억들은 언젠가 휘발되어, 오염되고 왜곡된 흐릿한 흔적만 남게 되지 않을까. (p.172)

 

사진을 손쉽게 찍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오히려 그 시대는 사진의 가치를 가볍게 만들었다. 인증샷 찍고 지나가는 여행이 많아진 가운데, 나만의 사진을 찍고 기록하는 작가의 자세가 매우 닮고 싶었다. 그래서 문득 여행하고 싶어졌다. 원래 여행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렇게 여행한다면 꽤 마음에 드는 여행을 할 것 같았다.

만약 내가 휴양지에서 이 책을 읽었다면, 당장 주위를 둘러볼 것 같다. 그리고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걷다가 어느 장소에서 홀린 듯 카메라를 꺼낼 것이다. 사진을 찍고 멍하게 풍경을 쳐다보고, 내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생각과 감정에 집중하고. 그렇게 여행이 더 깊어지지 않을까.

관광지가 아닌 사람 사는 곳으로써 아바나를 만날 수 있어서 좋은 책이었다. 또한 여행하는 자세를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앞으로 내 인생에 어딘가를 여행하는 순간은 꽤 여럿 올 것이다. 그때 이 책을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