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당신들이 의심을 찬양하더라도, 절망적인 것을 의심하는 것은 찬양하지 말아라! 스스로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의심할 수 있는 능력이 무슨 소용이 되겠느냐. 너무 빈약한 근거에 만족하는 사람은 잘못 행동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너무 많은 근거를 요구하는 사람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고 위험 속에 머물게 마련이다.

오늘 읽은 시이다. 제목은 ‘의심을 찬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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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영화의 시작에서 내레이션이 나온다.
- 오십층 건물에서 사람이 떨어지고 있다. 그는 말한다. 아직은괜찮아, 라고. 그러나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착륙이다.
하지만 어쨌든, 아직은 괜찮다. 떨어지는 동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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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매력적인 여자라서 남자들을 끌어당겼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적어도 나 자신은 나를 오해하지 않는다. 내가 애인을 얻을수 있는 것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알아채고 그것을 충당해주기 때문이다. 유능한 카운셀러와 점쟁이가 그렇듯이, 올바른 충고를 해주지 않고 그들이 원하는 대립을 제공하는 셈이다. 충고란 동의일때만 현명한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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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단순하지가 않다.
성공과 행복의 비결을 모르지 않지만 그것을 쉽게 얻을 수 없다는 데에 인생의 만만찮음이 있다.

좋은 길을 가르쳐주는데도 나쁜 길로 접어들게 되고 직접 겪고나서 후회하게 돼 있는 것, 또 그런 다음 다른 사람에게 그 길로 가지 말라고 쓸데없는 안타까움을 갖게 되는 허무한 재귀가 인생인 모양이다. 잘못되리라는 걸 알면서도 해야 하는 일이 있고, 벗어나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가까이 죄어드는 운명이 누구에게나있다. 나에게는 그것이 바로 상현과의 결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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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스스로를 초라하게 느끼고 있을 때 아내는 그 초라함에 속한다. 아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래도 괜찮다‘는 동반자로서의 위로이다. 그러나 애인은 다르다. 멋진 애인의 존재는 당신은초라하지 않다‘는 말과 같다. 그것이 아내와 애인의 다른 점이다. 보통 생각과 달리 애인 노릇은 아내 노릇보다 결코 쉽지 않다. 애인은 늘 매력적이어야만 한다. 애인의 위상이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도 당연하다.

결혼한 남녀가 바람을 피우는 것이 어디까지가 비련이고 어디부터가 불륜이냐고 윤선이 물었다. 불륜? 윤리에 어긋나는 것 말이야? 글쎄. 윤리란 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든 약속이잖아. 그러니 사랑보다는 하위 개념이겠지. 간통죄라는 실정법이 있으니까바람 피우는 게 불법이긴 하겠지만, 신호등 위반으로 도로교통법위반한 정도 아닐까. 내 말에 윤선이 대꾸했다. 내가 하면 비련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지 뭘 그렇게 어렵게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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