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는 힘이 있다.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사람이 미술관으로 몰려들고 있다. 한낱 종이 위 낙서에 불과할 지도 모를 것에 대하여 그렇게
까지 열광 하는 이유는 그림에는 화가와 그 시대의 삶이 녹아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 미술에 대한 책이라면 분류를 '분류'와'시대'에 따라 분류하여 담겨 있기 마련이다. '역사화', '초상화', '정물화', '풍경화'
등의 분류와 바로크 시대, 르네상스 시대 등의 시대분류 말이다. 이 책은 그런 분류를 따르기 보다 화가의 '관심사'에 따른 분류를 따랐다. 신에
몰두한 화가들, 왕과 고용관계를 맺은 궁정화가들, 새로운 세계를 이끄는 시민 계급에 바짝 다가간 화가들로 분류하였다. 이들이 그림을 그리며
부딪혔던 상황과 노력, 그리고 책의 제목처럼 생의 마지막에는 어떤 작품을 남겼는지를 알리고자 하고 있다.
미술에 관하여 지식이 전무한 내게 이 책이 좋았던 점은 미술관에서 큐레이터의 설명을 듣는 듯 그림의 각 부분에 대한 해석을 달아두었다는
점이다.
설명을 보기 전엔 나같이 관찰력이 부족한 사람은 그냥 지나쳤을 표정들이 보인다. 저 여인들이 슬퍼하고 있는 이유까지 알려주니 참으로
친절하고 그림이 훨씬 구체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호아티우스 형제들은 아버지 앞에서 로마 대 알바의 싸움에 나갈 전사로 뽑혀 충성을 맹세하는데
이들의 여동생은 상대편 집안 사람과 약혼한 사이라 한다. 이 뒤에 이야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한장의 그림이 물고 오는 궁금증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참으로 많은 화가의 그림들과 그의 미술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준다.
개인적으로 <아펠레서의 중상모략>이라는 그림이 인상적이었다.
그림속에서 맨 오른 쪽 끝 한단 높은 곳에 앉아있는 왕과 중앙에 머리채를
잡힌 나체의 남자 아펠레스를 제외하고는 모두 의인(擬人)상이다. 왕의 당나귀 귀에 대고 무언가를 속삭이는 자들은 '무지'와 '의심'이고 왕
앞의 검은 옷을 입은 자는 '증오'이다. 이와 쌍을 이루듯이 왼쪽에도 검은 옷을 입은 자가 있는데, 이는 '회환'이다. 아펠레스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거짓의 상징인 횃불을 들고 있는 자는 '중상모략'이다. 그녀의 머리카락을 땋거나 장미로 장식하는 자들은 '기만'과 '음모'이다. 이들이
모두 본성을 옷으로 감추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아펠레스와 왼쪽 끝의 여자는 숨길 게 없다는 듯이 나체로 서 있다. 즉 하늘을 가리키는 여자는
'진실'의 의인상인 것이다. - 34p -
작가가 그린 그림의 의미에 대해서 처음으로 깊게 궁금하게 되었다. 그리고 작가 자체에 대해서도 궁금해졌고 이 책을 통하여 미술초보의
궁금증을 풀어나갈 수 있었다.
나는 여행을 할 때는 그지역에 대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속 내용을 꼭 읽고 가려 노력한다. 유홍준 선생님의 문장을 통해 나의 여행은
더욱 풍부해짐을 몇번 경험했다. 이 책은 내가 미술관을 가게 될 때 꼭 미리 읽어보고 가게 될 책이 될 듯하다. 화가의 그림과 그 시대와 화가의
이야기를 기억하며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나의 그림감상은 더욱 풍부한 시야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