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체가 되고 싶어 - 유쾌하고 신랄한 여자 장의사의 시체 문화유산 탐방기 시체 시리즈
케이틀린 도티 지음, 임희근 옮김 / 반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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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참 강렬하다. <좋은 시체가 되고 싶어>라니. 좋은 시체라는게 뭐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을 나 대신 저자인 케이틀린 도티가 대행해 주었다.

케이틀린 도티는 로스엔젤레스에서 장의사로 일하고 있다. 그녀는 미국의 획일화된 장례문화에 문제를 제기 하며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을 펴냈고, 이어 다른 문화권에서는 시체를 어떻게 다루는지 알아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기록한 두번째 책 <좋은 시체가 되고 싶어>를 출간하였다. 이 책에서는 미국 콜로라도주의 야외 화장, 인도네시아 타나토라자의 마네네 의식, 멕시코의 망자의 날 행사, 미국 노르캐롤라이나주의 인간 부패 연구소, 스페인의 장의사, 일본의 루리덴 납골묘, 볼리비아의 냐티타 축제 등이 소개된다.

책을 읽으며 나는 다른 문화권의 장례에 대하여 깊게 생각해본 적이 한번도 없음을 깨달았다. 내가 아는 다른 나라의 장례라고는 영화로 보는 미국의 장례식문화(교회 단상앞 관 속에 고인이 누워있고 그에게 가서 꽃을 헌화하며 추모하는 장면이나 공원묘지에서 모여서 예를 갖추며 매장하는 장면)이 전부였고, 그 장면이 우리나라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아서 의문자체를 가져보지 않았던 듯 하다. 때문에 저자가 기록한 다른 나라의 장례문화를 읽어내려갈 땐 꽤나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여덟아홉 살 쯤 된 소년을 포함해 로라의 가족은 잘 타기 때문에 고른 피니언 소나무와 가문비나무 장작을 쌓으며 그녀를 태울 장작더미를 빙 둘러섰다. 신호가 떨어지자 그들은 해가 지평선 위로 설핏 떠오를 때 로라의 시신에 불을 붙이기 위해 함께 다가왔다. 시신에 불이 붙자 하얀 연기가 작은 회오리를 그리며 올라가다가 아침 하늘로 사라졌다.

26p 야외화장_미국 콜로라도주 크레스톤

우리나라도 화장문화가 있기 때문에 화장하는 방식에 대한 거부감은 없으나, 이렇게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장작더미 위에서 화장되는 모습을 상상해본 적은 없었는데, 이 문화를 맘에 들어 하는 사람들은 이 장례방식을 택하기 위해 크레스톤에 땅을 사놓기도 한다고 한다.(이 장작 장례방식은 해당 공동체에 속한 사람에 한해 사용할 수 있다고.)

토라자에서는 죽음과 장례 사이의 기간에 시신을 집에 둔다. 여기까지는 그리 놀라운 얘기가 아니지만, 문제는 그 기간이 몇 달에서 몇 년까지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이다. 가족들은 그동안 시신을 미라로 만들며, 시신에게 음식을 갖다주고 옷을 갈아입히고 말을 걸고 보살핀다.

60p 마네네 의식_인도네시아 남술라웨시 토라자

장례가 치뤄지기까지 미라화 되고 있는 고인은 죽은 것이 아니라 "아픈"과정에 있다고 믿는 토라자사람들의 문화는 우리 문화와는 너무 달라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다.

야지마 스님이 잠긴 문을 열자, 불상으로 이뤄진 벽 뒤에 감춰둔 유해 600세트가 보였다. (...) 가족 구성원이 루리덴을 찾아오면 입구에서 고인의 이름을 타이핑하거나 칩이 든 스마트카드를 갖다 댄다. 이렇게 하면 벽면에 환한 백색으로 빛나는 불상 하나만 제외하고 온통 청색 불이 들어온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찾기 위해 눈을 가늘게 뜨고 여러 이름을 뒤질 필요가 없다. 흰 불빛을 따라가면 바로 어머니에게 닿을 수 있다.

157p 고쓰아게부터 라스텔까지_일본도쿄

앞에서 우리나라의 장례문화에 비해 너무 '적나라'하고 아날로그(?)같은 모습의 장례문화를 읽다가 일본의 장례문화를 접하니 최첨단도 이런 최첨단이 없다. 루리덴의 납골당은 LED디자인이 갖춰져 있어 미래의 납골당에 온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가을풍경"이라고 말하면 불상들의 색이 노란색과 갈색으로 변하고 "겨울풍경"이라 말하면 연청색과 흰색의 눈송이를 LED로 표현해낸다고 한다. 야지마 스님은 루리덴을 세울 때 "자녀도 전혀 없고 고인을 위해 기도해 줄 사람이 없는 사람들"을 생각했다고 한다. 매일 아침에 그는 루리덴에 들어가 그날 날짜를 입력한다. 그러면 몇몇 불상들이 노랗게 빛나며 그 날짜에 죽은 사람들이 표시된다고 한다. 그러면 야지마 스님은 향을 피우고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한다.

나 역시 아이를 낳지 않으면 나를 기억해줄 사람이 없는 현실에서 이러한 문화가 남다르게 다가왔다.

그 외 독수리가 시체를 먹어 없어지게 하는 침묵의 탑,에 대한 얘기도 나온다.

그림자료가 있어 첨부해본다. ;;;;; 동물에게 몸을 내어주는 장례방식을 천장이라고 한다고 하는데 이 의식을 행하는 티베트사람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육식을 행하며 너무 이기적인 생각일지는 몰라도 나는 천장을 택하고 싶지 않다...




장의사로 일하면서, 나는 시체를 씻기는 것과 시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슬픔을 달래는 데 강력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절차와 의식은 유가족에게 시신을 저주받은 대상이 아니라 한 때 사랑하는 사람을 담았던 아름다운 그릇으로 보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된다.

173p

저자는 말한다. 죽음과 시체와의 안전하고 열린 소통이 가능한 물리적, 정서적 환경을 만드는 것은 '죽음 전문가'들에게 부여된 과업이라고. 유가족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은 그들을 슬픔 속에 가둬두겠다는 뜻이 아니라 가족들에게 의미있는 일을 할 기회를 주는 거라고. 고인과의 이별을 제대로 하지도 못한 채 방부처리되고 매장되거나 화장장으로 이동하는 미국의 문화를 그녀는 비판하고 있다. 이는 우리 문화에서도 다르지 않다. 그러한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나역시도 그랬고. 책을 읽으니 조금은 다르게 생각이 든다. 고인과의 시간을 충분히 가지는 다른 문화의 장례문화를 보고나니 말이다.

김초엽작가의 말처럼,

모든 여행이 그러하듯, 지구를 한 바퀴 돌고 온 시선이 다시 이곳을 향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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