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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술품 - 가객 김창완.주객 명욱과 함께 떠나는 우리 술 이야기
명욱 지음 / 박하 / 2018년 5월
평점 :
서른 중반을 넘기면서 몸속을 흘러내려간 맥주캔이 한 3000잔은 되지않을까 싶다. 어떤 날은 '맥주 맛이 좋다'며 신나서 콸콸 마셔대기도 하고 어떤날은 맥주 온도가 별로라며 안주빨을 세워댔다. 좋은 술은 시원하고 목을 넘어갈 때 캬~하는 탄성이 나와주면 되는거 아닌가라고 매우 적당히 생각해왔다.
이 책을 읽고 나선 술에 대한 너무 가벼웠던 마음이 송구해졌다. 차가운 술만이 좋은 술도 아니요(따뜻하게 먹는 술도 있으니), 벌컥벌컥 넘어가는 술만이 좋은 술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집앞 슈퍼만 가도 쉽게 손에 들고 올수 있는 바람에(?) 술이란게 만들어지는 과정의 수고로움에 대한 인지가 부족했다. 좋은 책을 만나 술이 만들어지고 있는 원리와 우리나라 곳곳에서 '필사적'으로 지켜지고 있는 '전통주'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저자 명욱은 '주류 알파고'라는 별명으로 방송에서도 만나본 적 있는 술 칼럼니스트이다. 그와 애주가인 김창완씨가 라디오프로에서 전통주를 알리는 코너를 진행했다고 한다. 그 코너 이름이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이었다고.
"일명 '아침창'의 윤의준 PD가 술을 테마로 한 꼭지를 만들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지역 문화와 역사, 그리고 술을 빚는 사람의 생각과 철학을 중심으로 우리의 술 문화를 알리고 싶다는 것이었죠." 8p
라디오 코너는 3년이나 인기를 끌었고 그 주옥같은 술에 대한 이야기들이 한권의 책으로 엮어져 나왔다. 책속에는 그들이 알리고 싶었던 우리의 다양한 전통주에 대한 역사와 문화가 들어있었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집에서 손수 빚는 가양주 문화를 발전시켜왔지만 1909년 주세법, 1916년 주세령에 따라 일제의 가양주 억압정책이 펼쳐졌다. 이 때 수많은 가양주문화가 소실되었다. 1995년이 되어서야 금지되어 있던 가양주 제조가 서서히 허용되고 다시금 전통주를 살리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지만 이미 너무 많은 고유의 술과 술 문화를 지켜내지 못한 것이 못내 가슴이 아팠다. 예로부터 풍류를 즐기는 민족이 아니던가. 물려주고 싶었던 술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싶다.
남아 있는 전통주라도 관심을 가지고 잘 지켜내자. 이 책이 우리에게 안겨주는 숙제다. 아직 전통주는 만들고 지켜내고 있는 지역 양조장들을을 소개하고 그들의 전통주를 소개한다. 술을 만드는 재료와 그로인한 술의 향이 이리도 다양할 줄이야! 아이스크림을 곁들여 마시는 술 <감홍로>, 배의 은은한 향이 온몸에 퍼지는 <전주 이강주>, 막걸리계의 슈퍼 드라이 <송명섭막걸리와 죽력고> 는 조선 3대 명주라 한다. 말미마다 양조장의 위치와 연락처를 적어주니 이는 얼른 '주문해서 맛보라는 말씀!'ㅋㅋ
"한 잔 먹세그려. 또 한 잔 먹세그려. 꽃을 꺾어 술잔 수를 세면서 한없이 먹세그려" -정철-
술잔 속에 담긴 꽃과 과일과 바람의 향을 진정 느끼면서, 그렇게 전통주 한모금 하고싶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