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끝
히가시야마 아키라 지음, 민경욱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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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야마 아키라의 죄의 끝은 문명이 파괴된 세계를 배경으로 선악의 기준이 무너진 인간 사회에서 새로운 구원자를 그려낸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입니다. 나오키상을 비롯한 일본의 여러 문학상을 휩쓴 저자가 1년 만에 내놓은 작품으로, SF적 상상력과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지구를 초토화한 소행성 충돌 이후, 인간은 극한의 생존 조건 속에서 도덕과 윤리를 버리고 식인을 선택합니다. 이 참혹한 세상 속에서 '블랙라이더'라 불리는 너새니얼 헤일런은 "식인의 신"으로 추앙받으며 인간의 구원자로 떠오릅니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영웅이 아닙니다. 구원과 폭력을 교차하며 신화적 존재로 자리잡은 너새니얼의 이야기는 독자로 하여금 선악, 구원, 인간성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듭니다.

 

 

소설은 너새니얼 헤일런의 일대기를 네이선 발라드라는 관찰자의 시선을 통해 풀어갑니다. 네이선은 문명의 피난처인 '캔디선' 내부의 킬러로서 너새니얼을 추적하지만, 그의 여정을 통해 식인의 죄악을 넘어선 너새니얼의 구원의 실체를 마주하게 됩니다.

 

 

작품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인간성의 경계를 시험합니다. 살아남기 위해 사람을 먹은 이들에게 너새니얼은 "한 사람을 먹었으면 두 사람을 구하라"는 윤리적 대안을 제시하며 구원의 가능성을 이야기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단순히 범죄자에서 구원자로 거듭나는 것이 아니라, 파멸된 세상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신화적이고 종교적인 서사가 소설 전반에 깔려있지만, 이야기의 핵심은 인간의 생존 본능과 그 안에서 발견되는 희망에 있습니다. 네이선의 시선을 통해 너새니얼은 선과 악을 넘어선 인간 본연의 모습을 대변하며, 작품은 인간성의 다층적인 면을 드러냅니다.

 

 

 

죄의 끝은 단순한 SF 소설을 넘어 현대 사회를 반영한 철학적 우화를 담고 있습니다. 문명이 붕괴한 미래라는 배경은 오히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혼란과 모순을 드러냅니다. 선악의 경계가 흐려지고, 생존이 최우선이 된 세계에서 등장하는 너새니얼의 메시지는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가치관에 대한 성찰을 요구합니다.

 

 

특히, 식인을 통해 구원받으려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충격적이면서도 슬프게 다가옵니다. 인간의 절박한 모습과 함께, 너새니얼이 던지는 "구원"의 메시지는 단순한 도덕적 판단을 넘어 인간 내면의 복잡성을 파헤칩니다. '선악 따위는 알 수 없고, 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만 알 뿐'이라는 한 구절은 인간의 본능적 측면과 도덕적 갈등을 응축해 보여줍니다.

 

 

작품의 결말에서 붕괴한 세상에서도 새로운 마을을 건립하며 "우리는 그냥 우리로 있을 수밖에 없어"라고 말하는 너새니얼의 모습은 결국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거대한 변화와 파괴 속에서도 인간성의 작은 불씨를 지키려는 노력이야말로 우리 시대에도 필요한 메시지입니다.

 

 

히가시야마 아키라는 죄의 끝을 통해 문명의 파괴 이후에도 지속되는 인간의 이야기와 새로운 가치관의 창조를 매혹적으로 그려냈습니다. 잔혹한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따뜻한 서정성을 잃지 않는 문체는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죄의 끝은 단순한 재미를 넘어 깊은 철학적 통찰과 감동을 안겨줄 작품입니다. 선악의 모호함 속에서 희망을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 현재 우리의 삶과 가치에 대해 새롭게 돌아볼 기회를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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