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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27
헤르만 헤세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9월
평점 :
"나는 오직 내 마음속에서 절로
우러나오는 삶을 살려 했을 뿐이다. 그것이 왜 그리 어려웠을까?" (본문 중 7p)
1장이 시작되기도 전에 책을 열고 읽은 첫 줄부터 내 마음에 돌을 던졌다. 아주 오랜만에(중학교 때 읽었으니 벌써 10년이상 지난) 기억
속에 있는 데미안을 어설프게 떠올리며, 이 한줄에 담긴 이야기가 이 책에서 몇 번이고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리라고 담담하게 예감했다. 왠지 분위기
딱 잡고 집중해서 읽고싶던 책이라 한밤 중에 내 방 침대위에 홀로 자리잡고 책을 폈다. 다시 읽은 이 책은 여전히 유혹적이어서 왜 그동안 다시
읽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깊은 감명을 주었다.
책의 초반 1장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는 두 세계에 대한 묘사와 싱클레어가 느끼는 복잡한 감정들을 읽어내려가며, 중학생이었던 내가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라고 새삼 느꼈다. 집(가족)과 그 외의 새로운 세계가 생기고(혹은 그 세계를 인식하고) 그 둘의 괴리감, 각각의
공간에서 내가 과연 동일한 인물인지 불안해지곤하는 것은 결코 낯선 경험이 아니다. 비단 어렸을때 뿐 아니라, 살아가면서 삶의 영역이 더 커질
때마다 새로운 영역이 추가될 때마다 느껴지는 그 묘한 쾌감과 불안(그 이전의 세계를 배신했다는 죄책감)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을 없을 것
같다.
싱클레어가 데미안이 들려주는 성경에 대한 다양하고 자유로운 해석에 놀라워할 때 난 데미안의 해석에 격한 공감(해석의 의향이 아니라
다양한 상상을 할수 있다는 것에 대한 공감)을 느꼈다. 중학교 때는 한 친구의 아버지가 목사님이고 그 교회는 가까웠기 때문에, 그 외 다양한
이유로 한동안 그 친구를 따라 교회를 다녔다. 그때 난 종교라던지 신앙에 대해 진지한 생각을 가진 적이 없었고 그때 교회가는 것이 즐거웠던
이유는 친구와 함께할 시간이 더 늘었다는 것과 성경을 읽으며 다양한 상상을 해보는 것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에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기 위한 책이 아니라 그저 읽다보면 반박하고 싶거나 왠지 그 줄거리를 이용해 다르게 상상해볼만 한 방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책이었다. 워낙
그런 성향이 나에게 있었는지, 어쩌면 데미안을 읽고 자극을 받아 그런 상상을 더욱 했는지 그 전후관계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데미안같은 친구가 그때 함께 있었다면 신나게 수다를 떨고 친해질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상상이 슬쩍 들었다. 데미안이 날 마음에 들어할지는
모르겠지만 난 싱클레어가 그랬듯이 분명 그에게 빠졌을테니.
데미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겠지만 아주 영리하고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주변 친구들 역시 데미안을 읽고 같이 얘기를 하면 대부분 책
제목과 동일한 이름의 데미안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책의 서술자이자 데미안을 만나고 헤어지며 모든 것을 겪은 주체인 싱클레어는 왠지
모르게 인기가 없었다.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나는 싱클레어라는 인물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두려워하고, 상처받고, 방황하고, 극복하는 그런
과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싱클레어는 데미안보다 더 현실적이고 나와 가깝게 느껴진다. 싱클레어가 한단계 성장하고 방황을 극복해내는 과정마다 그
내내 두려움에 떨면서도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고자 한 그 외골수같은 성향이 나를 반성하게 만들었다.
나는 '나'에 대해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 나 자신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고, 할 수 있지만 하고 있지
않은 일들은 또 무엇인지. 무엇보다 내 삶과 나 자신에게 싱클레어만큼의 집중과 고민을 쏟아부어 본적이 있는지.
굳이 비교할 필요는 없을지 몰라도 싱클레어는 이러한 지난한 과정을 13살 무렵부터 겪어왔다. 그 나이가 그런 진지한 고민을 할수 있는 나이라는
것에는 적극 동의하기 때문에, 그 나이에 내가 했던 고민들은 무엇이었을지 새삼 떠올리려 애썼다. 나이와 상관없이라도 지난 삶의 과정 중에 그런
순간이 있었는지를 의심해 볼 수 있었다.
데미안은 워낙 유명한 작품이기도 하지만, 어렸을때 한번 접했던 책이어서인지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느끼는 바가 많았던 것 같다. 혼란스럽지만
점차 단단하게 성장해 나가는 싱클레어의 내면과, 그의 구원자이자 이상형이자 혹은 그 자신이기도 했던 아주 매력적인 인물인 데미안, 그 둘의
자유롭고 자극적인(생각을 자극시키는) 대화 등을 엿보는 과정이 너무나도 즐거웠다. 특히 싱클레어가 고뇌하며 느끼는 여러사람 간의 혼동과 그
속에서의 자기발견 과정은 혼란스럽지만 어렵지 않게 느껴져서 작가의 탁월한 문체와 가독성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내용과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강렬한 작품임에도 그의 문장은 그 문장만의 매력이 있어서 읽는 즐거움을 두배로 만들어준다. 얼마전 읽은
책에선 '헤르만헤세의 문장은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그와 함께 인생의 의미를 탐구하는 깊이 있는 맛도 담겨있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읽으면서 기억해두고 싶은 문장들이 참 많았다. 하지만 여러 문장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고, 그만큼 와닿는 한 구절을 마지막으로
소개하며 마무리하려한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
힘겹게 싸운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본문중 127~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