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운명 - 세기의 걸작들은 어떻게 그곳에 머물게 되었나
이명 지음 / 미술문화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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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와 뒤표지가 매력적이다. 표지 속 액자는 은박이 덧입혀 있어 보이는 각도에 따라 반짝이고, 뒤표지에도 액자에 들어가 있는 바코드가 마치 하나의 작품 같아 보인다. 그리고 중요한 건 그 작품이 어딘가에 전시되어 있다는 점인데, 이 책은 그림과 화가의 이야기는 물론 그 작품이 걸려있는 '장소'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 이야기에서 화가나 작품만큼이나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그림이 있는 장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어떤 작품이나 화가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실제로도 보고 싶어지니 '그 그림 어디 가면 볼 수 있는데?'하고 궁금해지지니까. 이 책의 저자는 화가가 그림을 떠나보내는 심정은 집 떠나는 자식을 보는 것과 같다고 표현하는데, 화가들은 과연 자신의 작품을 어디에 전시하고 싶었을까. 지금 명작으로 크게 사랑받는 작품들은 어쩌다 지금의 장소에 가게 되었을까.



많은 화가들이 루브르에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고 싶어 했으나 모두가 성공하진 못 했던 것 같다. 화가의 고향과는 별개로 후원을 받거나 말년에 거주했던 지역에서 작품이 전시되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은 세기의 명작으로 불리는 작품들도 예술가들이 생존해 있을 때는 비평이나 조롱을 받아 한평생 화가의 곁에만 있다가 사후에야 세상으로 나오는 경우가 꽤 있었다. 다양한 이야기와 그림이 전시된 지금의 자리, 혹은 예전의 자리를 사진으로 함께 보여주는 점이 참 좋았다.


한데 모인 그림들 가운데 달리와 고흐의 이야기가 상반적이어서 유독 기억에 남는다. 팔리지 않았기 때문에 유족들이 고이 간직하던 많은 작품들을 고스란히 만나볼 수 있게 되었던 반 고흐 미술관의 이야기와 달리, 말년에 스페인에 돌아와 죽기 직전까지 스스로 자신의 작품과 세계를 보여줄 공간을 적극적으로 구성하고 채워 넣은 달리 극장 미술관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네덜란드나 스페인에 가면 꼭 가보고 싶은 곳.



제격인 장소에 있는 그림들/의외의 장소에 있는 그림들/우여곡절을 겪고 지금의 자리에 있는 그림들/한데 모인 그림들/흩어진 그림들이라는 주제로 각각 세 개의 글을 다루는데 유명한 예술가와 작품들인 만큼 알고 있던 이야기도 있지만 장소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읽게 되니 꽤 색다르게 읽혔다. 전시회에 가서 우리가 마주하게 된 그림들은 어떤 곳들을 거쳐 그 장소에 왔을까. 그림을 읽는 또 다른 시야를 알게 해준 책이다.



※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남긴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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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존재는 특별해요 - 자연과 야생을 사랑하는 세계적인 두 거장의 만남
니콜라 데이비스 지음, 뻬뜨르 호라체크 그림, 조경실 옮김 / 아름다운사람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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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 호랑이, 북극곰, 얼룩말, 고슴도치 등등 익숙한 이름의 동물들부터 말코손바닥사슴, 벌꿀길잡이새, '발 다섯 달린 개와 발 셋 달린 고양이', 백악기에 살았던 공룡들, 그 외에도 다양한 동물과 식물들, 머나먼 행성의 다양한 존재들까지 상상하고 끌어들여와 한 장 한 장 동화 같고 시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낸 그림책.


여러 생명체들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하소연이거나 희망 사항, 과거의 영광, 인간과의 공생, 그들의 특징이나 그들을 발견할 수 있는 공간, 가끔은 유머 있기도 가끔은 심각하기도 한 사연들은 그들이 보낸 편지 같기도 하고 우리가 그들에게 보내는 편지 같기도 하다. 다 읽고 나니 문득 천일야화가 떠올랐는데, 환상적인 그림에 풍성한 이야기들을 하룻밤에 한 장씩만 페이지를 넘겨가며 아껴 읽어도 좋을 것 같았다.




호랑이, 하마, 얼룩말 등은 동물원에 가면 볼 수 있고, 나비, 호박벌, 비둘기, 개와 고양이 등의 동물이나 나무들은 일상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존재들이다. 이 책을 읽고 난 아이들이 그 존재를 마주했을 때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궁금하다. 환상적인 그림들과 다소 시적인 표현도 있는 책이지만 아이들이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생명체에게 자그마한 애정을 가지게 되길 바라본다. 세계를 구성하는 구석구석의 작은 존재들까지 궁금해하고, 발견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그것이 세계를 유지하고 보호할 수 있는 비결이 되기를 소망하며 만들어낸 그림책이 바로 이 책 <모든 존재는 특별해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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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멩이를 주우러 다닙니다 - 탐석 초보자들을 위한 입문 가이드북
애완돌 키우는 T. 지음 / 브레인스토어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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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에 애정을 쏟는 일은 기본적으로 꽤 기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대상이 돌이라면 어떨까? 한때 애완돌 키우기가 제법 유행한 시기가 있었다. 자신만의 '힐링'이나 '소확행' 등 바쁜 현대인들이 위안 받을 무언가를 찾으려 애쓰다 발견한 취미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이 책의 여는 글에도 '돌에는 마음이 없으니 헤아리지 않아도 된다'라는 표현이 나와서 관계에 지친 사람들에게 꽤 적절한 취미라고도 느껴졌다.


크게 3부로 나눠진 본문 중 1부에는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돌 수집에 관련한 입문 스토리가 함께 나온다. 2부에는 조금 더 본격적인 돌 수집 취미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데, 동호인들의 인터뷰도 함께 실려있다. 개인적으로는 책의 부제에 나와있는 '탐석'이라는 단어에 관심이 가서 읽고 싶었는데, 실제로 자신만의 돌을 찾아 나서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탐석 가이드북'은 책의 후반부인 3부에 나와있었다.



돌 수집에 어떤 의미와 어떤 종류가 있는지, 이 취미의 특징과 장점은 무엇인지 다소 낯선 이야기들을 읽다가도 본문 곳곳에 삽입된 저자의 돌 컬렉션에 눈이 자꾸 간다. 돌의 이름과 종류 등은 다소 어려워도 그 사진들을 보며 동기부여가 되는 이들이 꽤 많을 것 같다. 단순 수집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향에 따라 기록하고 자랑하고 때론 나누기도 하며 들기는 방법이 단일하지 않다는 것도 흥미롭다.


비슷비슷한 것 같아도 세상에 단 하나뿐이라는 희소성도 있고, 제 맘에 드는 돌을 찾아 수집하는 것은 보석을 수집하는 것과 다를 게 무엇인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게다가 탐석이라는 활동을 통해 직접 찾아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의욕과 지식과 장소에 따라 난이도는 다양하겠지만 해변가에서 예쁜 돌을 줍는 정도로 시작한다면 어떨까? 다양한 취미에 도전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끌릴 만한 이야기, 탐석과 돌 수집에 대한 정보와 이야기를 함께 전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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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퍼하지 말아요, 곧 밤이 옵니다 : 헤르만 헤세 시 필사집 쓰는 기쁨
헤르만 헤세 지음, 유영미 옮김 / 나무생각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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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시와 소설과 문장들은 끊임없이 사람들의 영혼을 울리고, 그렇기에 끊임없이 소환되고 소비되는 것 같다. 이 책은 헤르만 헤세의 시 100편을 모아두었고 넉넉하게 옆자리 비워두어 필사할 공간을 남겨두었다. 책에 바로 필사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는데 시를 담은 페이지도, 필사를 위한 페이지도 디자인이 깔끔하고 부드럽다. 시의 제목과 헤세의 이름, 그리고 조그맣게 그려진 몇몇 그림들이 눈이 편안한 그린 계열(올리브그린?)로 통일되어 더 그런 인상이 남은 것 같다.



오랜만에 다시 읽은 헤세의 시는 편지 같기도 하고 일기 같기도 했다. 친구에게 연인에게 신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이자 시. 시의 제목들은 담백하게 어떤 시기나 장소의 이름을 적어두기도 하고, 날씨나 어떤 상황을 그대로 이야기하기도 해서 목차를 보며 더 일기 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저녁 파티'같은 시는 정말 작가가 어떤 파티에 초대받아 있었던 일을 집에 돌아와 자신의 일기장에 적어둔 글 같았다.   


훌륭한 정원사였던 것이 영향이 있는지 계절을 노래하는 시들도 좋았다. 시는 읽을 때마다 마음에 남는 것이 다르고, 시의 어떤 부분에 깊이 공감하거나 감상을 남기는 건 지금의 내 상태가 드러나는 것이라 생각해 늘 조심스러워진다. 그래서 그냥 지금 시기에 잘 어울리는 시를 하나 골라 필사해 보았다. 그래도 평소 사용하는 필사 노트가 있는지라 이 책은 당분간 시를 음미하며 깨끗한 채로 둘 것 같다.




필사집의 제목도 시구절 가운데 하나이다. 시집의 제목이 드러난 시를 찾아보는 것도 시집에서 찾을 수 있는 재미인지라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표제작이 나오길 기다렸다. 해가 바뀌고 무언가 계획을 세우지도 않았으면서도 괜히 조급한 마음이 들었는데 헤세의 시를 읽고 쓰자니 조금 마음의 속도가 느긋해진 기분이다. 헤세의 시를 느긋하게 음미하고 싶은 이들에게, 하나하나 따라 적어가며 마음에 새기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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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꿈은 끝내 사라지지 않고 - 오십에 발레를 시작하다
정희 지음 / 꿈꾸는인생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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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 낙상사고, 갱년기까지 한꺼번에 찾아온 몸의 고난으로 마음의 침잠까지 경험하던 시기, 저자는 조금 더 자신에게 집중하고자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하고 집중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자 했다. 그리고 찾아낸 것이 바로 발레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부터 이야기한다. 이 책을 쓴 건 발레를 권하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라고. 누구나 마음에 숨겨둔 어떤 열망이 있을 것이고, 자신의 무모한 시작을 보며 그 사실을 한 번쯤 상기해 내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았다고.



어릴 적 발레리나를 꿈꾸기도 했지만 선수가 되려고 발레를 하는 것이 아니기에, 취미이자 운동으로 만난 발레를 일주일에 한 번씩 1년 이상 지속해왔다고 한다. 발레를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지 못하면서도, 주변 누구에게 발레한다 말하진 않고 도둑 발레를 하며 그 은밀한 즐거움마저 만끽하는 저자가 은근 귀엽다.


이전에도 에세이를 출간하며 꾸준히 글쓰기를 해왔다는 저자는 글쓰기, 발레, 시 등등 좋아하는 것 사이의 공통점을 찾아내며 자신의 사색을 글로 담기도 하고, 자신의 삶과 경험을 발레에서 배운 것들과 연결 지어 글을 쓰기도 했다. 몸, 나이, 아름다움 등 발레에서 떠올릴법한 흔한 이야기부터, 편견이나 주저함, 사람 사이의 관계, 그리고 글쓰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낸 것에 비해 글이 잘 정돈되어 있는 느낌이라 편하게 읽었다.


 발레를 시작한 후로 나의 글쓰기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둘 사이에 비슷한 점이 많아서 그렇다. 발레와 글쓰기, 둘 다 아무도 나에게 시키지 않았다. 그냥 좋아서 한다. 당장 돈이 되는 일도 아니다, 하는 동안은 무척 힘들다, 그런데도 계속한다, 심지어 가끔은 짜릿하게 재미있다. 인생에 이런 건 하나로 족하련만 나에겐 둘이나 있다.  (본문 중 149p)


발레 그 자체나 취미로서 혹은 건강을 위한 운동으로서의 발레에 대해 주로 이야기하거나 홍보하는 책은 아니지만, 드문드문 글 속에서 문화센터 등을 통해 접하는 발레 수업의 분위기 정도는 느껴볼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좋아서 하는 혹은 어릴 때부터 은밀히 꿈꾸던 무언가가 있었는지 생각해 보게 만드는 책. 여러 경험에 대해 열려있는 시대이니 이제부터 찾더라도 늦지는 않을 것 같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냥 좋아서 하는 취미 하나쯤 찾아두면 삶의 활기를 얻을 수 있다는 걸 증명해 주는 소소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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