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내 마음은 - 열두 개의 달 시화집 十一月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윤동주 외 지음, 모리스 위트릴로 그림 / 저녁달고양이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늦가을, 혹은 초겨울의 계절을 만나는 11월의 시화집이다. 11월의 화가는 모리스 위트릴로, 파리 몽마르트를 대표하는 화가들 중 한 명으로 다작을 넘어 남작이라 불릴 만큼 많은 작품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띠지에 그려진 작가의 초상화를 비롯하여 그의 이름과 작품들은 솔직히 낯설지만 그의 그림 속에 담긴 몽마르트르와 파리 곳곳의 풍경이 낯설지 않아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있던 동안은 눈이 오지 않았지만 겨울 동안에 파리에 머물렀던, 이제는 꽤나 오래된 기억이 다시 되살아나는 기분에 그림과 화가에 관심이 갔다. 시보다 그림을 먼저 훑어보고 책 맨 뒤의 화가 소개를 꼼꼼히 읽어보니 그림을 시작하게 된 내력이 특이하다. 십 대에 벌써 음주벽이 심해 알코올중독에 걸렸던 그는 치료를 위해 의사와 어머니의 권유로 그림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알코올중독은 쉬이 치료되지 않았지만, 그 치료를 위해서였는지 혹은 그저 그림이 좋아서였는지 그는 부지런히 그림을 그렸고 다수의 작품을 남겼다.  


 

                    쓰자하니 수다하고 안 쓰잔 억울하오

다 쓰지 못할 바엔 백지로 보내오니 
호의로 읽어보시오 좋은 뜻만 씨웠소     -본문 중 <백지편지>(전문), 장정심


 

11월 1일의 시는 심훈의 <첫눈>이다. 오장환의 <첫겨울>, 정지용의 <겨울>, 노천명의 <첫눈> 등 목차에 제목들을 보면 가을보다는 겨울 시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춰 시를 구성한 것 같다. 화려한 계절을 보낸 후 외로움을 느끼거나 얌전히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내용을 담는 시들도  눈에 띈다. 윤동주의 <참회록>이 11월 시화집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가장 대표하는 시가 아닐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11월 20일의 시 장정심의 <백지 편지>와 11월 31일의 시 윤동주의 <별똥 떨어진 데>라는 두 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가을과 겨울에 걸쳐 찾아오는 외로움에 겨워 편지를 쓰자 하니 수다스러울까 걱정되고 안 쓰자니 억울한 마음이 드는 화자가 귀엽고, 날이 추워지는 캄캄한 밤 빛나는 별들 아래서 혼자 자조하는 젊은이에 감정이입해버려서 참 여러 번 읽었던 시들이다. 11월 마지막 시 뒤로 붙어있는 텅빈 거리 끝에 서 있는 에펠탑의 모습이 한층 더 추워 보인다.


    밤이다.
    하늘은 푸르다 못해 농회색으로 캄캄하나 별들만은 또렷또렷 빛난다.
    침침한 어둠뿐만 아니라 오삭오삭 춥다.
    이 육중한 기류 가운데 자조하는 한 젊은이가 있다. 
    그를 나라고 불러두자. 
                                                       -본문 중 <별똥 떨어진 데>(발췌), 윤동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