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핀 청년시인 -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윤동주.이상.박인환 지음 / 스타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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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맨 처음 실린 윤동주의 시 두 편. 『서시』와 『자화상』, 둘 다 분명 교과서에서 봤던 기억이 확연한데 왜 그때는 이런 감상과 느낌이 없었을까 신기하기만 하다. 재작년쯤부터의 버릇인데 시집을 사면 시 하나하나 낭독하며 읽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얇디얇은 시집 하나를 읽는데도 꽤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이 책은 젊은 시인 세 명의 시를 한데 모아 묶었다. 무려 123편의 시가 실린 이 책은 며칠이나 걸릴까 약간의 걱정을 하며 읽기 시작했다. 



윤동주의 시와 4부에 실린 그의 주변인들이 남긴 추모글을 읽으면서는 영화 <동주>를 떠올렸다. 영화 속 동주의 역할을 맡은 강하늘의 목소리로 낭송해주던 '아우의 인상화'나 '쉽게 씌어진 시'가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되는 느낌. 윤동주의 시집은 읽을 때마다 특히 마음에 드는 시가 매번 바뀌곤 하는데 이번에는 '아우의 인상화', '편지', '어머니'등 가족과 관련한 시들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그런데 추모글 중 '아우의 인상화'에서 자라면 "사람이 되지"하고 대답했던 그의 동생 일주가 남긴 글이 있었다. 시인의 인간적인 사생활의 편모라도 남길 책임을 가져 붓을 잡았다는 그의 글이 이 책에서 윤동주에 대해 가장 몰입하게 만들어주는 부분이 아니었나 싶다.  

『붓끝을 따라온 귀뜨라미 소리에도 벌써 가을을 느낍니다』 라고  한 나의 글월에 『너의 귀뜨라미는 홀로 있는 내 감방에서도 울어준다. 고마운 일이다』라고 답장을 주신 일이 기억 됩니다.  (… 중략 …) 십년이 흘러간 이제 그의 유골을 상재함에 있어 사제로써 부끄러움을 금할 길이 없으며 시집 앞뒤에 군 것이 붙는 것을 퍽 싫어하던 그였음을 생각할 때, 졸문을 주저하였으나 생전에 무명하였던 고인의 사생활을 전할 책임을 홀로 느끼어 감히 붓을 들었습니다. 이로하여 거짓 없는 고인의 편모나마 전해지면 다행이겠습니다.  

  1955년 2월. 사제(舍弟) 일주(一柱)  근지(謹識)

 

 - 4부 윤동주 추모글, '선백(先伯)의 생애' 중 97-98p

이상의 시는 매번 보아도 낯설고 매력적이다. 제멋대로의 띄어쓰기와 온갖 도형 및 방점, 온전히 해석하기엔 그 해석마저 주관적인 것으로밖에 읽히지 않는 그의 시는 붙잡고 있다 보면 시간이 정말 순식간에 간다. 최근 좋아하게 된 '이런시'와 '사과'라는 시가 실려 있어 개인적으로 좋았다. 윤동주와는 달리 추모글 대신 그의 생가를 시작으로 그의 발자취를 따라 여행하듯 가이드 글을 실어 넣은 것도 인상적이다. 그가 태어난 곳, 부모님의 집과 큰아버지의 집, 결혼 후 생활했던 곳이나 다방을 차렸던 장소 등등 지금은 그 자취가 거의 사라졌지만 그 장소가 생각보다 내게 익숙한 장소들이었음에 놀랐다. 심지어 금홍과 싸우고 쫓겨나면 찾아가곤 했다던 박태원의 집은 이전 직장에서 정말 코앞인 장소였다. 


박인환은 앞의 두 시인에 비해 조금 새롭게 알게 된 느낌이 강하다. 물론 그의 이름과 '목마와 숙녀'라는 시는 교과서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의 생이나 생의 마지막 이야기는 낯설기만 했다. 유복한 집 출생으로 마리서사라는 서점을 운영하고 언론인(기자)으로 활약하며, 퇴직 후 미국 여행을 다녀오고 <아메리카 시편>을 발표하기도 했다. 평소 술을 그리 잘 마시지 못하던 그가 이상과 그의 시를 사랑한 나머지 그의 추모회를 열어 사흘간의 폭음 끝에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사인도 참 독특하다. 시에 자주 등장하곤 하는 그의 '청순한 아내'와 2남 1녀의 아이들을 두고 갈 정도로, 천재적인 시인 '이상'을 잃어 동시대를 함께 더 살아가지 못했던 것이 한이 된 걸까 궁금해진다. 그리고 수록된 시 뒤로 이상과 마찬가지로 그의 발자취를 쫓는 글이 실려있다. 교보문고 빌딩 뒤쪽에 있는 박인환 생가 터 표석은 나도 본 적이 있는데, 그 표석의 문구가 두 군데나 틀린 곳이 있다는 게 놀랍고 한심했다. 책에 쓰인 대로 그 표석을 관리하는 사람이나 관련자들이 보고 수정해주길 바란다. 그밖에 해설에서 아쉬운 점은 '세월이 가면'과 '목마와 숙녀'만으로 그를 기억하는 것을 아쉬워하면서도 정작 시에 대한 해설이 부족했던 점이다. 그의 시가 지닌 특유의 세련되고 감각적인 표현이나 감성적인 특징들은 조금 보이지만, 처음 접하는 경우가 많은  그의 시에 대한 정보가 워낙에 적어 일반적인 시집에 실린 것 같은 해설을 조금 원했기에 이런 아쉬움이 있는 것 같다. 



세 사람은 전부 서른을 넘기지 못하고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제목대로 '못다핀 청년시인'들이다. 그 불행한 공통점을 제외하고 그들을 엮는 인연은 무엇이 있을까. 윤동주와 박인환이 모두 이상의 팬이었다는 것 정도? 어쩌다 이 세 사람을 묶어 청년시인이라는 이름 하에 한 권의 책이 나왔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각 시인이 만들어낸 시의 인상이 너무나도 달라서 세 권의 책을 연달아 읽는 기분마저 들었다. 못다 피운 그들의 시와 인생이 이제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 조금이라도 더 크게 피어나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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