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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붕어 2마리와 아빠를 바꾼 날
닐 게이먼 지음, 데이브 맥킨 그림, 윤진 옮김 / 소금창고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 어디 가?
- 엄마 찾으러.
- 엄마 어디 가셨는데...?
- 속상해서 울다가 말없이 나가셨어. 나 바빠, 엄마 찾으러 가야 돼.
- ...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돼?
- ... 있잖아. 비밀인데... 우리 아빠는 술만 먹고 들어오심 엄마랑 싸우셔. 난 정말 아빠가 밖에서 술 먹는다고 하는 날은 무서워서 도망가고 싶어.
- ......
- 아빠는 집에 오셔서 엄마가 잔소리하면, 엄마를 막 때려. 엄마 말이 맞는데도 엄마를 때려. 나랑 동생이랑 엄마 때리지 말라고 말리면 우리까지 맞는다?
- 그럼... 어떡해야 돼?
- 아빠가 적당히 그만하심 다행이구, 안 그럼 엄마는 뛰쳐나가셔. 우리는 우리대로 방에서 아무일 없는 것처럼 숙제하고 있어야 돼. 울기라도 하잖아? 그럼 아빠한테 더 맞는다.
- 너희 아빠, 평소에도 그러시니?
- 아니, 울 아빠 평소에는 무지 좋은 분인데... 밖에서 술먹고 오심 꼭 그래. 난 사실 아빠 무척 좋아하는데, 근데 아빠가 또 너무 밉기도 해. 나는 여자애니까 덜 맞는데, 남동생이랑 엄마를 많이 때리니까. 그리구 이상한 아줌마 우리 차에 태워서 다니구.
- 너, 그런 아빠 싫겠다... 다른 아빠랑 바꾸면 어때? 엄마도 안 때리고, 다른 아줌마도 안 만나고 술도 안 드시구... 그런 아빠로 내가 바꿔줄까?
- ...... 그럴 수 있어?
- 응, 그렇게 해줄 수 있어. 그렇게 할래? 그럼 엄마도 너도 남동생도 속상해서 우는 일 없을 거 아니니? 이렇게 엄마 찾으러 안다녀도 되구.
어린 시절 수도 없이 나는 아빠를 바꾸고 싶었다. 바꿀 것까지도 없이 누가 아빠를 데려갈 수만 있다면, 엄마랑 남동생이랑 나랑 셋이 불안해하지 않고 살 수만 있다면, 까짓 금붕어 두 마리 안주더라도 상관없었다.

- 어때?
- 근데... 새 아빠로 바꿔주면 좋을 거 같긴 한데, 그 아빠는 우리 아빠는 아니잖아. 엄마가 그러는데 엄마랑 아빠랑 사랑해서 우리를 낳으셨다는데 새 아빠는 우리를 낳은 분은 아니잖아... 저기, 우리 아빠 꼭 나쁘시지는 않아. 부지런하시구, 술 안 먹었을 때는 엄마한테 잘해주셔. 나 한글이랑 구구단도 아빠가 가르쳐 주셨어. 나더러 이담에 미스코리아 될 거라고 맨날 그러시는데.
그로테스크한 그림으로 가득한 동화책의 마지막을 덮으며 나는 흐느껴 울었다. 난 결국 아빠를, 그 무엇과도 맞바꾸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유년시절의 나에게 가혹한 상처를 준 아빠지만, 그 아빠가 신문만 읽고 당근이나 씹는, 내 인생에 아무 덕이 되지 않는 아빠는 결코 아니었기 때문에.
잘못된 방식이었지만 아빠는 가족을 사랑했고, 우리도 그런 아빠를 사랑했다. 이제 내가 서른을 넘고 성인이 되어 물처럼 잔잔히 흐르는 가정의 평화를 느낄 때, 힘들었지만 아빠를 바꾸지 않기를 참 잘했다고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면 지금 아빠를 바꾸고 싶은 다른 아이들에게도 위로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