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세 좋아하고 재물 좋아하는 무리들이 늙은것 젊은것 할 것 없이 꿀을 보고 모여드는 파리떼 모양으로, 허 참 제 나라 상감, 제 선영 앞에 조아리던 머리빡을 남의 나라 졸개들 앞에 조아리게 되었으니, 염치 잃은 백성이 무슨 수로 나라를 보전할 것이며 대포 아니라 군함 끌고 오지 않아도 나라는 망하게 생겼소이다."

"예의지국에서 남의 나라 사신을 예로 대하는 일이 뭐 그리 허물이 되겠소."

그러나 김훈장은 들은 척 않으며 자기 할 말만 했다.

"개명 양반들이 왜총 몇 자루, 왜칼 나부랭이를 얻어다가 궁궐을 짓밟고 상감을 볼모로 삼았다가 그놈의 역모가 실패하여 섬나라로 도망가더니, 듣자니까 그자들이 그곳에서는 대접이 나쁘고 어쩌고 투정을 부리는 둥 철없는 짓을 했다더구먼요. 허 참, 혼자 일신 편하겠다고 남의 나라에 가서까지 투정한 자들이 그래 나라를 바로잡고 벼슬아치들한테 수탈만 당하는 불쌍한 백성을 구제하겠다구 역적모의를 했단 말씀이오? 그놈의 개명 참으로 빛 좋은 개살구, 총대만 믿는 인사가 천명을 헤아리겠소? 동학당이 비록 상놈들의 오합지졸이긴 하나, 그렇지요, 오합지졸이긴 하나 척왜척양을 내걸고 승패야 어찌 되었든간에 결판을 내기라도 했으니 도리어 체모는 상놈들이 지켜준 셈 아니겠오 - < 토지 2, 박경리 지음 > 중에서

삐뚜룸하게 세상을 보는구먼."

"하긴…… 삐뚜룸하게 세상을 보는 게 어디 그놈뿐이겠소."

문벌을 내세워 도도하게 굴지만 너 자신도 세상을 삐뚜룸하게 보는 사람 중 한 사람이 아니냐는 투다. 평산은 내심 조준구를 곯려준 한조의 짓이 통쾌했던 것이다.

‘벌레 같은 놈들! 네놈들이 세상을 삐뚜룸하게 보면 어쩔 테냐? 시궁창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썩어 없어질 놈들이.’

조준구는 마음을 돌이켰다. - < 토지 2, 박경리 지음 > 중에서

모자의 눈이 부딪친다. 열을 뿜다가 서로의 눈이 싸늘하게 굳어진다. 쇠붙이와 쇠붙이가, 아니 서슬이 푸른 칼과 칼이 맞닿아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은 침묵이 계속된다. 윤씨부인의 눈 가장자리에는 푸른 빛깔이 달무리같이 드리워져 있었다. 눈꼬리가 긴 그 속에 검은 동자는 움직일 줄 몰랐다. 눈시울이 걷혀진 최치수의 눈동자도 움직일 줄 몰랐다.

‘말씀하십시오. 어머님의 비밀을 말씀하십시오.’

‘이놈! 생지옥에 떨어진 어미 꼴이 그렇게도 보고 싶으냐?‘ - < 토지 2, 박경리 지음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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