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놈은 사람 아니가. 사람우 도리는 상놈 양반 다 마찬가지다."

"마찬가지라고? 고대광실에서 고기반찬 씹어내는 놈하고 게딱지 같은 오두막에서 보리죽 묵는 놈하고 우예 같노."

"나보고 묻는다고 내가 자네보다 더 잘 알겄나? 최참판댁 은덕으로 살믄서 헐뜯는 거 아니다."

"허허, 허파에 바람 들겄네. 무신 은덕고?"

칠성이는 용이 켠으로 바싹 얼굴을 돌리며 눈을 깠다.

"조상 적부터 그 댁 땅 부쳐 묵고살믄서 헐뜯어 쓰겄나."

"야아야! 성인군자 같은 소리 마라. 고방에 쌀이 썩어나는 기이 뉘 덕고? 응? 말 한분 해봐라."

"……."

"흥 머지않았다, 멀지 않아. 종놈이 상전 기집 뺏는 판국인데, 아 국모도 머리끄뎅이 끌고 가서 개같이 죽있다 카는데, 정승이랑 높은 벼슬아치들도 서울서는 몰죽음을 당했다 안 카던가? 또 민란이 나야……."

"부질없는 소리."

"부질없는 소리라니? 다 같이 세상에 나와가지고 사대육부가 남만 못해 우리는 평생 등 빠진 적삼에 보리죽*이란 말가?"

칠성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재물을 쌓기 위해서는 어떤 비행이나 악행도 허용될 수 있는 것같이 말하는가 하면 또 그 악행을 저주하고 비난하고.

"젠장! 자손이야 우찌 되든 나하고 무슨 상관이고. 꺼꾸러지든 나자빠지든, 내 당대에나 한분 소리치고 살아봤으믄 좋겄다!"

결국 자기 자신만을 위해 잘사는 수단이면 비록 죄악일지라도 찬양할 만한 값어치가 있다는 심보인 모양이다. - < 토지 1, 박경리 지음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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