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짧고, 저세상에 갔을 때 책을 몇 권이나 읽고 왔느냐고 묻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니 무가치한 독서로 시간을 허비한다면 미련하고 안타까운 일 아니겠는가?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책의수준이 아니라 독서의 질이다. 삶의 한 걸음 한 호흡마다 그러하듯,
우리는 독서에서 무언가 기대하는 바가 있어야 마땅하다. 그리고 더풍성한 힘을 얻고자 온 힘을 기울이고 의식적으로 자신을 재발견하기 위해 스스로를 버리고 몰두할 줄 알아야 한다. 한 권 한 권 책을읽어나가면서 기쁨이나 위로 혹은 마음의 평안이나 힘을 얻지 못한다면, 문학사를 줄줄 꿰고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인가? 아무 생각 없이산만한 정신으로 책을 읽는 건 눈을 감은 채 아름다운 풍경 속을 거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 P11

장자와 열자, 맹자 등을 읽어보면 중국의 이들 대스승들과 현인들은 웅변가들과는 정반대여서, 놀랍도록 소박하며 서민과 일상에 밀착해 있었다. 허영이라곤 전혀 없이 은둔과 자족의 삶을 택해 살았으며, 이들이 스스로를 표현한 방식은 보면 볼수록 무릎을 치며 감탄하게 된다. 노자의 반대편에 있는 공자는 체제주의자이며 도덕주의자, 법치주의자요 관습의 수호자로서 고대 현인들 중 그나마 유일하게 무게를 잡는 인물인데, 그의 면모는 예컨대 간혹 이런 식으로 특징지어진다. "그는 소용없을 줄을 알고도 굳이 행하는 그런 이가 아닌가?"
이만한 평정과 유머와 간결함을 나는 다른 어떤 문학에서도 찾지 못하겠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살펴보노라면, 그리고 세상을 단 몇 년 몇십 년 안에 평정하여 바로잡겠다는 사람들의 웅변을 들을 때면 나는 가끔 이 구절 등을 생각하게 된다. 그들은 위인 공자와 마찬가지로 행하되, 그들의 행위 이면에는 ‘그것이 소용없을 줄을‘ 아는 지식이 결여되어 있다. P47
- P47

올바른 독자들에게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타인의 존재와사고방식을 접해 그것을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그를 친구로 삼는 것을 뜻한다. 특히나 문학작품을 읽노라면 비단 몇몇 인물과 사건들만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작가의 방식과 기질, 내면의 풍경, 나아가 작풍이나 예술적 기법, 사고와 언어의 리듬까지 접하게 된다. 한 권의 책에 사로잡힐 때, 작가를 알고 이해하기시작해 그와 모종의 관계를 맺을 때, 비로소 그 책은 진정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그런 사람이라면 책을 내던지고 잊어버리는 대신간직하고자 한다. 즉 필요할 때마다 독서와 경험을 거듭할 수 있도록 값을 치르고 산다. 그렇게 책을 사는 사람, 그 느낌과 정신에 마음이 움직여 책을 구입하는 사람이라면, 무분별하게 이것저것 읽어내기보다는 자기 마음에 와 닿는 책들, 깨달음과 기쁨을 안겨주는 작품들을 가려 찬찬히 모을 것이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손에 집히는대로 아무거나 마구잡이로 읽어대는 독자보다 더없이 귀하다.p108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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