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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100쇄 기념 리미티드 에디션)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11월
평점 :
품절
<<숨결이 바람 될 때>>는 최고의 의사로 손꼽히는 서른여섯 살의 전도유망한 젊은 의사가 암에 걸려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써내려간 회고록이다.
폴은 킹맨이라는 사막도시에서 자연을 누비며 어린시절을 보냈고, 10대에는 소설과 시를 진심으로 즐겼다. 20대 이후에는 삶의 의미와 가치를 치열하게 고민하며 그에 부합하는 삶을 살기 위해 많은 시간을 공부, 독서와 사색, 의미를 만드는 인간관계로 채워갔다. 레지던트 6년차에 폐암 선고를 받고 투병중에 어느정도 호전됐을 때는 신경외과의로서 소명을 다하기 위해 다시 그 힘든 레지던트 생활을 이어가기도 했다.
자식에 대한 교육열이 대단히 높았던 폴의 엄마는 미국 전체를 통틀어 킹맨은 가장 교육 수준이 낮은 지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빈약한 학교 제도를 대신해 입시용 독서 목록을 구해와 자식들에게 다 읽히려고 애썼다. 폴은 그 추천 도서들을 섭렵하며 문학에 빠졌고 가치관에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신경외과 의사이면서 불치병 환자이기도 했던 저자가 의사의 도덕적 사명, 의사로서의 판단과 고뇌, 인간의 관계성이 의사와 환자 사이에서 실현되는 모습 등에 관해 서술한 내용들이 대단히 감명적이었다.
저자는 그저 모든 사람이 담담히 죽음을 대면할 수 있도록 자신의 길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도 상당히 열정적으로, 진심을 다해 일상을 살아간다. 폴과 그의 가족과 그의 지인들이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대하는 모습도 정말 인상적이다.
그들은 매일 삶과 죽음, 즐거움과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감사와 사랑으로 채워간다. 죽음을 앞두고도 이렇듯 삶을 충만하게 이어갈 수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비록 딸 케이디가 자신의 얼굴을 기억할 정도까지 살 수 있기를 바랐던 소망은 이루지 못했지만 그는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어떻게 죽음을 마주하고 받아들였는지 자신의 모습을 회고록에 있는 그대로 담아 이렇게 케이디를 비롯한 그의 가족과 지인들, 더불어 우리 모두에게 남겼다. 언젠가는 글을 쓰겠다는 꿈도 이루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슬프기보다 오히려 황홀할 정도로 아름답게 빛난다. 짧은 생이라 너무 안타깝지만 진정으로 삶을 이렇게 충만하게 살 수도 있음에, 죽음을 이렇게 당당히 마주하고서 자신의 생을 돌아보며 의미를 찾고, 남겨진 가족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며 당당히 걸어가는 그의 담대함에 눈시울과 가슴이 동시에 뜨거워진다.
책은 잘 다듬어진 렌즈처럼 세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여주는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p.48
심폐소생에 실패하고 피투성이가 되어서도 끝까지 환자를 살리려는 영웅적인 책임감.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사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p.78
때때로 죽음의 무게가 손에 잡힐 듯 뚜렷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스트레스와 고통이 공기 중에 감돌았다. 평소에는 그 공기를 들이마시면서도 알아채지 못했다. 하지만 습하고 후텁지근한 날처럼, 공기의 무게 때문에 질식할 것 같은 날도 있었다. 또 어떤 날은 끝이 보이지 않는 여름날의 정글에 갇혀 온몸이 땀에 젖은 채, 환자의 가족이 흘리는 눈물을 비처럼 맞고 있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p.103
기량이 발전할수록 내가 책임져야 할 부분도 점점 더 커졌다. 어떤 환자를 구할 수 있고 구할 수 없는지, 또 구해서는 안 되는지 제대로 판단하려면 손에 넣기 어려운 예지력이 필요하다. 나는 실수도 했다.
한 환자를 수술실로 급히 데려갔지만 그의 뇌를 완전히 구해내지는 못했다. 그 결과 환자의 심장은 뛰었지만, 그는 이제 말을 하지 못하고 튜브를 통해 음식을 먹었다. 그가 켤코 원하지 않았을 모습으로 살아가게 된 것이다. 나는 이것이 환자의 사망보다 더 지독한 실패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의식 상태로 신진대사를 하는 이런 불완전한 생존 상태는 가족에게 견디기 힘든 짐이 되어 대개는 시설로 보내진다. 감정적인 정리를 아직 하지못한 가족이 환자를 찾아오는 발길은 점점 뜸해지고 환자는 결국 치명적인 욕창이나 폐렴에 걸리고 만다. 환자가 언젠가 눈을 뜨지 않겠냐며 연명치료를 고집하는 가족도 있지만, 많은 환자들이 그렇지 않기에, 아니 그렇게 될 수 없기에 신경외과의는 선고를 내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p.105
나는 삶과 죽음 사이의 공간에서 일생을 보낸다면 연민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스스로의 존재도 고양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
두부외상 환자들을 끊임없이 접하다 보니, 생사의 순간에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빛에 너무 가까이 있으면 그 순간의 본질을 보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
나는 결정적 순간에 환자들과 함께하지 못하고 그저 그 순간에 서 있을 뿐이었다. 나는 많은 고통을 목격했고, 더 나쁘게도 그런 고통에 익숙해졌다. .. p.107
신경외과 수술에서 의사는 탁월한 기술을 발휘하는 건 물론이고 환자의 정체성도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수술을 결정할 땐, 자신의 능력에 대한 정확한 평가와 환자가 누구인지, 또 그가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는지에 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p.136
불치병을 헤쳐 나가는 방법은 서로 깊이 사랑하는 것이다.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서로에게 친절하고 너그럽게 대하며, 감사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p.254
*네이버카페 미자모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