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나라 선녀님
허태연 지음 / 놀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허태연 #장편소설 #중고나라선녀님

으리으리한 저택들이 모여있는 한남동 언덕, 언제나 선여휘 여사의 호탕한 웃음소리로 아침을 여는 이태원로 55마길 첫 번째 집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대한민국 재계 서열 9위, 일성그룹의 5대 주주이자 안주인인 선여휘 여사가 주인공이다.

부족할 것이 없어보이는 그녀에겐 큰 아픔이 있다. 음주운전 사고의 피해자로 10년이 넘게 아들이 식물인간 상태라는 것. 그 슬픔을 견디기위해 웃음 치료도 받았지만 늘 가슴 한 구석에 헛헛함을 느낀다. 딸 선정에게는 한심한 사람 취급을 받는 것 같고, 바쁜 남편은 결혼을 후회할 거라고 생각하며 외로워한다.

우연히 양과장에게 중고마켓 이야기를 듣고 자신을 모르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중고 거래를 시작하면서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삶의 활기를 찾고 즐거워 한다. 화가의 꿈을 포기하고 화구를 팔러나온 백휘황을 자신의 안전을 책임져 줄 사람으로 맞이하고, 마을 생활 게시판을 통해 만난 장대높이뛰기 선수였던 바예바 님과도 좋은 인연을 맺게 된다.

물론 사람 사는 것이 다 그렇듯 중고 거래도 좋은 사람만 만나는 것도 아니라 때론 기분이 상하거나 상처도 받고, 피해를 입기도 한다. 하지만 때로는 속상한 어떤 일도 모든 면에서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선여휘 여사의 행동 하나하나, 머리부터 발끝까지의 착장, 살림살이나 13억 6000만 원을 주고 산 아틱 화이트로 크리스털 페인트를 섞어 도장한 롤스로이스 팬텀 EWB까지 묘사하듯 서술해서 소설을 읽는 동안은 선녀님으로 살아가듯 빠져들게 만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이는 양극화된 삶의 모습은 너무나 씁쓸하지만 그 안에서 해맑은 선녀님의 선의는 대개 빛을 발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세상은 아름답고 살아볼 만한 곳이라는 것을 느끼며 희망을 품게 하는 따뜻한 소설이다.

중고거래는 보통의 삶을 사는 이들에게 특별할 것 없는 소소한 일상일텐데 어느날 이렇게 특별한 선물같은 만남이 이루어진다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일테지.

국내 굴지의 재벌 그룹 후계자가 혼인하는 날 아들과 며느리 자랑이 한참일 때 선여휘 여사의 마음이 얼마나 참담했을까.

아이가 그런 사고를 겪는다는 건 정말 상상할 수 없는 크기의 슬픔이다. 음주운전은 정말 살인행위와 별반 다를게 없다. 누군가의 음주운전으로 내 소중한 가족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끔찍하지 않은가.
무슨 생각으로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는가 말이다. 아..진짜 음주운전은 그 자체로 분노가 치민다.

#책속의한줄
이제껏 나는 참 많은 물건을 소유했지. 그러나 그 무엇도 절실한 적은 없었어. 누군가에게 과시한 적은 있어도 소중한 적은 없었어. P.176

남의 지갑에서 나가는 돈은 현실성이 떨어져. 장난감 은행에서 찍어낸 것 같거든. P.213

아들이 없을지 모르는 미래보다 아들이 이뤄낸 하루하루의 기적에 집중하는 것. 그것은 중고 마켓에서 배운 삶의 태도였다. 새 명품 가방을 사지 못해 우울해하기 보다는 소유 가능한 중고 가방을 구입해 즐기는 것. 그것은 중고 시장 사람들이 보여준 행복의 한 방식이었다. P.216

여기 오면 좋은 게 이런 거예요. 외톨이가 나 혼자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거든요. 참다못해 펑펑 울어도 모두가 사정을 이해해 주고요. P.262

여기서 걱정한다고 뭐가 달라져? 할 수 있는 일이 없잖아. 공연히 두려워 떨기만 하는 거지. 그럴 필요는 없어. 인생을 그렇게 소진할 필요는 없다고. P.327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썼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