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닮지 않은 자화상 - 화가 장호의 마지막 드로잉
장호 지음 / 창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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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내게 소개해 준 책이 며칠간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화가 장호....라는 이름이 맴돌았다. 익숙한듯 익숙하지 않은 이름. 결국 검색을 해보곤 아....아이들 어릴때 많이 읽어줬던 <나비잠>을 그린 작가님이셨다.

화가 장호가 구강암 판정을 받고 투병하며 약 1년간 그린 스케치들을 담은 이 책은 화가가 병을 마주하고 느낀 두려움과 혼란, 그러나 끝내 의연하게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담고 생의 주인이 되려한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는 "그러나 살고 싶다, 그러나 죽고 싶다" 했다가 "계곡물 소리가 예뻤다 미웠다 한다" 했다가 "나는 지금 울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웃고 있습니다" 하며 치료의 공포와 삶과 죽음에 대한 복잡한 마음을 분열적으로 드러낸다.

그 공포로부터 도망간 지리산에서 그가 그리는 것은 모두 가장 연약한 모습으로 의연하게 생명을 뿜어내는 들꽃들이다.
많지 않은 색의 볼펜으로 그려낸 그 그림에서 볼펜이 머무른 자리에 눈이 간다. 볼펜똥을 남긴 그 자리는 그가 선을 긋기 위해 머무른 자리, 생명을 관찰하기 위해 머무른 자리, 앞으로 어떻게 병을 치료해야하나 고민한 자리였을테다. 세상으로부터 도망왔지만 그는 내내 가족을 걱정하고 세상을 다시 만나고 싶어한다. 그 마음이 너무 이해가가서 글귀마다 가슴이 아파왔다.

두번째 노트로 넘어가 병원에서의 스케치들이 등장한다. 종일 몸을 뉘여야하는 침대, 붕대를 감고 있는 자신의 얼굴들. 그의 자화상들은 단순한 선에서 시작해 점점 꼼꼼한 음영을 넣은 그림들로 바껴가는데 수술후 더는 내가 아닌것 같은 얼굴을 거울로 보며 덤덤하고 낯설게 관찰하고 묵묵히 그려냈을테다. 유일하게 애써 웃고 있는 자화상에는 이 책의 제목인 '나를 닮지 않은 자화상' 이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생을 마감하기 6일전에는 "내 목숨은 내가 결정한다" 라고 결연히 써두었다. 의사로부터 가망이 없다는 얘기를 듣고 쓴 저 문장뒤에 화가의 마지막 그림.
병으로 떠났지만 그는 끝까지 병에게 지지 않았구나. 결국 삶의 주인이 나라는걸 선포하고 가장 좋아하는 일이었을 그림 그리기를 마지막까지 놓지 않았구나.

그림책 일러스트로 활동하셨기에 더 그랬을까. 화가의 그림들은 그림책의 그림들처럼 말을 한다. 이야기를 들려준다. 차마 글로하지 못하고 말로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마지막까지 꾹꾹 눌러 담아 그림으로 그렸을 장호 작가의 귀한 그림들을 이렇게 책으로 만날수 있어 감사하다. 마지막 여운이 너무 길어 쉬이 책을 덮지 못하고 판권페이지까지 꼼꼼히 읽었는데 저작권자로 이름이 올라있는 사모님의 이름을 보니 다시 끅 참았던 눈물이 터져나온다.

책의 맨 마지막장, 화가가 스물다섯에 썼다는 다짐을 보니 먹먹했던 마음이 좀 위로가 된다. 장호 화가는 원하는 삶을 살아내고 떠났구나. 나는 여러번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이의 죽음으로 오랜 기간을 힘들어한적이 있었는데 이토록 삶과 죽음이 위로가 되는분을 이제라도 만나게 되어 큰 기쁨이다. 언젠가 화가의 그림을 전시회로 꼭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장호 #나를닮지않은자화상 #창비 #구강암 #드로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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