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은 어디에나 트리플 20
임선우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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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우 작가의 글은 이 책을 통해 두 번째로 접한다. 첫 소설집 <유령의 마음으로>를 읽고 일상적인 것들에서 생소한 것을 발견하는 작가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소설도 그러한 느낌을 주었다. 내 곁에 있을 법한 사람, 오늘도 느꼈던 것 같은 감정. 그걸 한번 비틀어 임선우만의 색깔로 내비춘다. 나는 아마 익숙함을 비틀어 볼 줄 아는 사람을 필연적으로 좋아하게 되나보다.

죽고 싶어질 때마다 낙타로 변하는 사람, 장국영이라는 이름을 가진 홍콩야자를 키우는, 슬픔을 느낄 때마다 푸른 돌을 토하는 사람, 오십만 원을 벌기 위해 오사카로 금괴를 배달하러 가는 두 사람. 세 이야기 속에는 저마다의 슬픔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있으면 각자의 슬픔 틈을 유영하고 싶어진다.

임선우 작가는 ‘초록은 어디에나’라는 제목을 오래전 겨울밤 산택을 하다 우연히 떠올렸다고 한다. 이 책 속엔 그가 느끼는 따뜻한 슬픔의 색, 초록이 가득하다.

📎 그러고 보니 참 이상하네요. 유미 씨의 글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읽고 나면 무언가 전달 받았다는 느낌이 들어요. 유미 씨는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구체적으로 쓰고 싶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그럼에도 무언가 전달되었다니 대항이네요.

📎 그러면 내가 지금 느끼는 슬픔은 내 것이 아닌가? 네가 슬퍼지는 순간부터는 네 슬픔이지.

📎 언니는 늘 그렇듯 아 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 점은 내가 영하 언니를 좋아하는 이유이자 영하 언니를 미워하는 이유였다. 어느 순간 지하철 안으로는 초저녁 햇빛이 쏟아졌다. 고개를 들자 창밖을 스쳐 지나가는, 유리창이 금빛으로 물든 다정한 건물들. 이상하지, 이럴 때면 도시는 모두가 이해하지 못하는 농담 같았다.

📎 ‘초록은 어디에나’는 오래전 겨울밤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떠올린 문구이다. 어두운 외투를 걸치고 거리를 걷다 보니 문득 초록이 보고 싶었다. 환한 초록, 자라나는 초록, 우글거리는 초록, 초록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나에게 초록은 따뜻한 슬픔의 색. 차고 단단한 파랑의 슬픔에 노란빛이 한 줄기 섞인 푸르름. 그러나 나는 질문하는 동시에 답을 알고 있다. 초록은 어디로 가는 법이 없다. 초록은 어디에나 있다.

📎 나름의 사전적 의미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방식 또는 그 자체. 비올라의 미래를 응원하기 위해 지은 이름인데, 책 상에 올려놓고 나름이라고 적힌 팻말을 바라보면서 힘을 얻는 것은 오히려 내 쪽이다. 나름이라는 단어는 되뇔수록 어쩐지 용기가 생긴다. 나는 나름대로 살 것이고 나름대로 쓸 것이다. 나름이라는 단어가 가져다주는 작은 긍지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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