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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페이지 저자, 송섬별 역자 / 반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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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표지처럼 강렬한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다. 엘리엇 페이지는 이 책에 자신이 엉킨 실타래를 풀어가는 과정을 담았다고 한다. 그 실타래는 어찌나 단단히 엉켜있었던지, 책을 읽는 내 마음이 힘들어질 정도였다. 솔직하게 써내려간 글은 그와 정반대의 성향에 있는 나의 공감까지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그가 겪은 혼돈을 함께 겪는 기분이었다.

엘리엇 페이지는 자신의 정체성을 인지하고 성별을 원망하기도, 주변의 질타에 힘들어하기도 하면서도 결국엔 자신을 지켜냈다. 두 발짝 앞으로 나섰다가, 다시 한 발짝 뒤로 물러서는 것.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물러서야 할 때임을 인지하고 잠시 물러설 줄 아는 것도 커다란 용기다. 물러섰다면 다시 앞으로 나아갈 공간은 더 많이 남아 있다.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갈 엘리엇 페이지의 발걸음을 응원한다.

📎 아버지를 용서하기는 그만큼 쉽지 않았다. 당장 토론토로 가서 네 엉덩이를 걷어차 주마. 자기 자식이 보호를 필요로 했을 때, 자기 자식이 사랑을 필요로 했을 때, 그는 폭력을 가하겠다고 위협했다. 미성년자인 내가 겁도 없이 성인 남자와 인터넷으로 교류했다는 이유로 노여워했다. 그 순간에 내게 돌봄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그 순간에 내게 안전과 사랑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영영 그런 것을 얻을 날은 없지 않을까? 아버지의 그 한마디 말은 그 남자의 위협보다, 그의 집착보다, 내 팔을 던 그의 손가락보다 내 몸속에 더욱 오래 머물렀다.

📎 2014년의 커밍아웃은 선택했다기보다는 하지 않을 수 없어서 한 것이었지만, 맞다, 그건 내가 나 자신을 위해 한 일들 중 가장 중요한 일 중 하카였다.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노출되고 취약해지는 일이 잇따랐다 한들, 커밍아웃은 그 모든 걸 감수할 가치가 있었다. 그만큼 중요한 한 걸음이었다. 나는 숨어서 고통받느니 살아 있으면서 고통을 느끼고 싶었다. 어깨를 활짝 펴고, 심장을 환히 드러낸 채, 나는 이전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방식으로, 손을 잡고 세상에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슴 속 깊은 곳에서는 공허함이 천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익숙한 낮은 목소리. 그 속삭임은 여전히 선명하게 내 귓가에 맴돌았다.

📎 내게는 혼자만의 시간, 누군가에게 무엇이 되거나, 무엇에게 누군가로 존재하지 않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온 힘을 다해 생각하느라,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이렇게 하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속이느라 나는 지쳐 버렸다. 하지만 답은 침묵 속에 있었다. 내가 귀를 기울이겠다는 선택을 해야만 들을 수 있는 답이었다.

📎 기적의 샘물처럼 우연히 솟아난 일이 아니었다. 길고 힘든 여정을 거쳐 왔으므로. 그러나, 스스로를 사랑하기로 마음먹는 순간은 이토록 단순했다. 내 여정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었고, 나는 몇 번이나 잘못된 길을 택했지만, 바라보는 관점을 바꾼다면 잘못된 길이 아니었을지도 몰랐다. 고통스럽고 구불구불한 길이었으나, 그 길은 나를 내게로 데려다주었다. 드디어 눈앞에 입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 안으로 들어갈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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