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요? - 한국문학 번역가 안톤 허의 내 갈 길 가는 에세이
안톤 허 지음 / 어크로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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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요? / 안톤 허

이 책이 어크로스 인스타그램 계정에 출간 예고를 통해 드러났을 때부터 호기심이 일었다. <저주토끼>, <대도시의 사랑법> 두 도서는 한국문학을 사랑하는 이라면 무조건 들어봤을테고, 심지어 읽어본 사람도 많을 것이다. 안톤 허 번역가는 이 두 도서의 번역가이며 이 책들을 세계에 알린 한국문학 번역가이다. 그리고 이 두 도서는 동시에 부커상 후보로 지명되기도 했다. 심지어 당시에는 이 두 작가에게 에이전시도 없었기 때문에 안톤 허 번역가 스스로 고군분투하며 책을 만들어갔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았을 당시의 그 뿌듯함과 벅참이 배가 되었을 것이다.

심지어 한국문학 번역가는 손에 꼽을만큼 적은 수라고 한다. 이런 소수의, 희귀한 한국문학 번역가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 여정, 어린 시절의 이야기, 번역가로 살아가는 즐거움과 애환이 이 책에 모두 담겨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그의 솔직한 언어들에 통쾌함마저 든다. 그의 언어를 통해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한 호전적인 삶의 자세를 배웠다.

📎 누가 뭐라고 해도 번역은 무의식에서 이루어지는 듯하다. 특정 문구를 이러저러한 말로 번역한 이유는 문법이나 어학, 수사학으로 설명이 가능하지만 그건 단순한 설명에 그칠 뿐 번역 자체는 오롯이 무의식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 부모님 말은 절대 들어서도, 믿어서도 안 된다. 그들은 자기 인생밖에 모르는 사람들이다. 실수를 해도 자신의 실수를 하는 것이 낫다. 인생을 망쳐도 내 손으로 망쳐야 한다.

📎 가끔 작가들이 묻는다. 어떤 식으로 써야 차후 그 작품을 영역할 때 수월한지를. 진정한 작가라면 절대 번역을 인식하는 글을 써서는 안 될 것이다. 작가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비전을 가장 잘 현실화한 작품을 써내는 것이다. 독자는 잘 읽으면 되고 번역가는 제대로 번역하면 된다. 독서가 독자의 일이듯 번역은 번역가의 일이다. 이렇게 각자의 역할에 매진할 때 앞으로도 찬란한 한국문학의 향연을 모두 함께 만끽할 수 있으리라.

📎 그리고 그게 바로 번역의 매력이 아닌가 해요. 다른 번역가들, 다른 문학인들과 더불어 문학으로 다져진 하나의 공동체에 속한다는 것. 혼자 작업한다 해도 번역가는 근본적으로 작가의 텍스트와 공동 작업을 해야 하므로 번역부터 출판까지 문학 공동체 속에서 작업하고 생활하는 특권을 누립니다.

📎 그리고 잊지 마세요. 대학은 구성원을 학생과 교수로 구분하지만 교수도 일종의 학생이라는 사실을 절대 간과해선 안 됩니다. 가르치는 행위야말로 학습의 한 형태가 아닐까요? 본인이 배운 것을 구사하거나 언어로 ‘번역’할 수 있어야만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배웠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요. 이건 특히 번역가들에게 해당하는 얘기입니다. 번역가야말로 궁극의 학습자, 궁극의 독자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번역가는 자신이 배운 것을 자신의 언어로 구사하니까요. 번역가의 모든 지식과 무지는 번역에서 드러납니다.

📎 번역을 할 때 제 영혼의 작은 파편이 번역에 실리게 되고, 독자는 그 파편에 반응하는 듯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부분들을 좋아하고, 제가 의도했던 리딩을(정확히 말하면 제가 작가의 의도라고 생각하는 리딩을) 그대로 쫓아가는 독자들을 보면 번역가로서 말로 형언하기 힘든 뿌듯함을 느낍니다. 물론 독자들은 스스로의 희망, 불안, 편견을 이런 ‘부재’의 공간에 투여하기도 하지만 그것 또한 문학의 범주에 속하며 문학은 누군가 생각하듯 그렇게 나약하지는 않습니다. 훌륭한 문학은 깊은 독서와 번역을 통해 더 풍요로워지지 파괴되지는 않습니다.

📎 수많은 번역가들 역시 번역가가 된 것을 후회합니다. 저 역시 이런 후회를 자주 하지만 이조차 정상적인 번역가의 자세라고 받아들이며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후회란 제 스스로가 얼마나 타락에 가까운지, 무지가 얼마나 가까운 곳에 있는지, 제가 스스로를 얼마나 모르는지 그리고 삶이란 얼마나 의미와 가능성으로 풍요로운지 상기시켜 주는 소중한 감정이니까요.

📎 번역가의 일은 결국 사전이 제공하지 못하는 의미를, 사전보다 더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언어는 불변의 존재가 아니니까요. 그리고 ‘진정한 동족어’란 기본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두 언어의 단어 간의 관계는 그 언어가 아무리 서로 가까워도, 아니 설령 사투리와 표준어 사이에서도 모두 가짜 동족어 관계일 수밖에 없습니다. 한 언어 안에서의 특정한 단어가 다른 언어에서 100퍼센트 같은 뜻과 정서적 울림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고로 번역은 단어에서가 아니라 단어 사이의 공간에서 이루어집니다. 의미는 포착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열심히 그 방향으로 손짓할 수밖에 없는 무엇입니다. 이런 절박한 손짓이 바로 번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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