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도 100퍼센트의 휴식
박상영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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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휴가를 연상케하는 표지의 바탕색, 파도와 같은 형태의 띠지, 시원한 여름 하늘을 보는 듯한 목차 페이지까지. 지금 계절에 읽기 좋다. 여름 휴가를 기획하는 지금, 책 속에 나오는 도시를 아무 곳이나 골라 떠나고 싶을 정도로.

읽는 동안 박상영 작가와 함께 여행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에피소드는 지루할 틈이 없었고, 생생하게 경험한 것들을 전달하는 박상영 작가의 글맛에 쉽게 여행자의 상황에 몰입할 수 있었다.

잠자리를 중요히 여겨 깨끗하고 프라이빗한 숙소를 꼭 찾는 나는 30명이 한방을 쓰는 도미토리 이야기에 한 번, 가파도에서의 벌레 소동에 두 번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이런 고생도 곁에 함께 수난을 경험하는 사람이 있기에 미화되는 것 아닐까. 책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경험, 그리고 서로의 기쁨과 슬픔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박상영 작가의 곁엔 많은 것 같아 다행이라 여겨졌다. 이 사람들이 박상영 작가가 즐거운 일을 많이 경험할 수 있는 매개체이자 살아가는 원동력이지 않을까. 앞으로도 곁에 있는 사람들과 많이 어디론가 떠나고 많이 경험하며, 여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경험을 양분 삼아 좋은 글을 많이 써주었으면.

📎 어쩌면, 내게 있어 여행은 ‘휴식’의 동의어나 유의어가 아니라, 일상의 시름을 잊게 해주는 또 다른 자극이나 더 큰 고통에 가까운 행위가 아닐까? 환부를 꿰뚫어 통증을 잊게 하는 침구술처럼 일상 한중간을 꿰뚫어, 지리멸렬한 일상도 실은 살 만한 것이라는 걸 체감하게 하는 과정일수도.

📎 광주(光州)는 빛이 고이는 마을,이라는 의미다. 빛이 고이는 마을이라. 그 말을 읽는 순간 처음으로 광주라는 도시가 윤주성과 썩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이터널 선샤인>을 좋아하는 사람, 때때로 마른 입술에 촉촉함을 더해주던 사람, 추억의 소중함을 알고 있는 사람, 그래서 잊고 있던 사소한 추억까지 간직해 반짝이는 모습 그대로 상대에게 전해주는 사람. 그러니까 언제나 밝은 빛을 뿜어내는 사람. 윤주성과 내가 보내온 그 찬란한 시절이 낯선 도시에 찰방찰방 고여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실은 나는 보기보다 겁이 많고 소심한 사람이라 타인에게 쉽게 상처를 받고 또 오래 곱씹곤 한다. 의심이 많고 타인을 잘 믿지 않는 건 아마도 그런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일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예전부터 나는 손쉽게 타인을 받아들이고, 어렵지 않게 신뢰감을 쌓아 올리는 종류의 사람들을 동경해왔다. 그들은 나처럼 사사로운 일에 붙들려 있지 않고 경제적으로 감정을 사용할 줄 아는 존재라는 생각에 때로 열등감을 느끼기까지 한다. 김연수 작가님을 볼 때도 그런 생각을 자주 했는데, 작가님의 여유로운 걸음걸이며 타인에 대한 긍정적인 표현, 마음 씀씀이 같은 것들이 부럽고 좋았다. 일상의 대부분을 감정이라는 괴물을 다스리는 데 허비하는 나로서는 좀체 가닿기 힘든 삶의 형태이기도 했다.

📎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지만, 이런 찰나의 노력들이 모여 결국 우리 인생을 구성하게 되는 게 아닐까? 나는 지금 이 순간의 반짝임이 곧 인생이라고 믿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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