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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혈왕 충선왕 - 그 경계인의 삶과 시대 ㅣ 몽골 제국과 고려 2
이승한 지음 / 푸른역사 / 2012년 11월
평점 :
'몽골 제국과 고려' 시리즈의 제2권인 '혼혈왕 충선왕' 을 두번째로 정독하고서 리뷰를 쓴다.
작년부터 원 간섭기에 대해 큰 관심을 갖게 되어, 원 간섭기에 대한 책을 찾던 중 이 시리즈를 발견했다.
제1권인 '쿠빌라이 칸의 일본 원정과 충렬왕'이 2009년 5월에 나왔는데, 이런 좋은 책을 이제야 발견했다는 점이 아쉬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늦게 발견하고 읽어서 무척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 시리즈의 출판 속도 때문이다.
나는 1권과 2권을 함께 구입해서 연달아 읽었는데, 만일 1권이 처음 출판되었던 때 읽었더라면 2권을 기다리는 것이 너무 힘들었을 것이다.
2권인 이 책이 2012년 11월에야 출판되었기 때문이다. (1권과 2권의 시간차가 3년 반...!!!)
그렇게 이 시리즈의 출판 속도는 너무 느려서, 1권을 읽고 이 시리즈의 팬이 되어 버린 나로서는, 벌써부터 3권을 어떻게 기다릴까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제발, 3권은 빨리 출판되었으면...)
1권이 충렬왕 뿐 아니라, 쿠빌라이 칸과 원종(충렬왕의 부친)에게도 상당한 비중을 주며, 그 시대 전반을 다루고 있는데 비해...
이 2권은 충선왕이 원톱 주인공이다. ^^
원 간섭기에 대해 거의 알지 못 했던 시절에도, 충선왕이란 인물은 정말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이국의 공주에게서 태어난 왕, 일생 대부분을 자기 나라가 아닌 어머니의 나라에서 보낸 왕, 아버지와 정치적으로 큰 갈등을 겪었던 왕, 두 나라의 피를 모두 받은 사람답게 만권당이란 기관을 설립해서 두 나라의 문화교류에 힘썼던 왕...
이 책에는 그런 독특한 인물 충선왕의 개인사와 정치역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고려왕과 원나라 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충선왕의 일생은, 어쩌면 그 특이한 출생에서 이미 그 운명이 결정되었던 것일 수도 있다.
고려와 원나라를 오가며, 고려와 원나라 모두의 정치에 참여했고, 고려와 원나라 모두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양국 문화교류에 힘썼다.
그렇게 역사적으로는 분명히 고려에서나 원나라에서나 큰 족적을 남겼지만, 동시에 어느 쪽에도 뿌리 내릴 수 없었다.
충선왕은 고려에서는 이국 출신 왕비에게서 태어나 이국의 문화에 경도된 이질적인 왕이었고, 원나라에서는 원나라의 속국인 변반의 작은 나라의 왕인 외국인이었다.
또한 아버지와 아들 모두와 갈등을 겪는 등 개인적으로도 행복한 인생을 살지는 못 했다.
분명히 충선왕은 아버지 충렬왕보다 사리분별이 확실하고, 고려를 개혁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등, 더 훌륭한 왕이 될 조건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와 생사를 건 갈등을 겪으며, 그의 개혁의지는 차츰 시들어갔다.
그리고 훗날, 권력의 정점에 섰을 때 아들을 자신의 손으로 죽였다.
아버지에게 죽을 뻔한 자신이(충렬왕이 정말 아들을 죽이려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권력투쟁에서 패하는 것은 죽음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지...), 아버지가 자신에게 한 것보다 한 발 더 나아가 아들을 죽였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또한 만권당을 세우고 원나라 정치와 거리를 두며 학문적 교류에만 힘쓰려는 모습을 보이는 동시에, 상왕으로 물러나서도 고려 국정에서 손을 떼지 않는 이율배반적인 모습도 보였다.
충선왕의 일생은, 왕으로서든, 한 개인으로서든, 어느 한쪽에 온전하게 뿌리 내리지 못 했고 온통 모순투성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런 점이, 오히려 충선왕을 굉장히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고 관심을 갖게 한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의 속국이 되어야 하는 모순의 시대에, 두 나라의 모순적인 관계에서 태어나, 모순적인 인생을 살다간 왕...
어째서 이 왕에 대한 드라마가 한 번도 만들어진 적이 없을까 싶을 정도로, 드라마틱한 삶을 살다 간 왕...
그 충선왕에게 관심이 있는 이라면, 이 책을 반드시 읽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