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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왕조의 위기, 혹은 세계화 시대 ㅣ 몽골 제국과 고려 3
이승한 지음 / 푸른역사 / 2015년 9월
평점 :
기다리고 기다리던 '몽골 제국과 고려' 시리즈 제3권이지만, 솔직히 1권이나 2권만큼 흥미롭지는 못 했다.
저자가 앞의 두 권에 비해 이번 권을 성의없이 쓴 것은 결코 아니다. 그저... 이번에 나온 3권 '고려 왕조의 위기, 혹은 세계화 시대'에서 다루는 시대가 지루하고 짜증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1권의 주인공 충렬왕과 2권의 주인공 충선왕은 부마국 체제라는 비정상적 상황에서도 무언가 해보려는 시도(혹은 원나라에게 덜 빼앗기려는 발버둥)라도 했고, 두 왕이 다스리던 시대의 고려는 당당한 독립국은 아니지만 분명히 어느 정도의 존재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나온 충선왕, 충혜왕, 충목왕, 충정왕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정치적 식물인간 같은 느낌이고, 이 시대의 고려에 대해서도 '이게 나라가 맞냐?' 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물론 그런 상황이 국왕 개인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잘못된 시대 탓이라는 것은 이해한다.
아무리 국왕이 나라의 주인인 시대라지만, 그 국왕도 시대라는 틀 속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으니까. 더구나 이 시대의 국왕은 위로는 원나라에 눌리고 아래로는 부원배에 받치는 등 도저히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그러나 결국 나는 논리적으로 역사를 분석하는 학자가 아니라 감정이 앞서는 일반인일 뿐이다. 그리고 이 시대의 역사가 다른 나라의 역사가 아닌 우리나라의 역사이기에, 읽는 내내 답답하고 짜증스럽고 앞의 두 권을 읽을 때만큼의 강한 흥미를 느낄 수 없었다.
그래도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기황후가 등장하는 끝부분이었다.
기황후가 자기딴에는 조국인 고려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고려의 개혁파 신료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부분을 읽으면서, 시쳇말로 웃펐다. 당시 고려에서 벌어지는 혼란의 직접적인 원인 중 하나가 기황후 친정 식구들의 발호였다. 또한 근본적인 원인을 따지자면, 바로 기황후가 휘두르는 권력의 원천인 원나라가 고려에 간섭하는 상황이다.
결국 고려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바로 기황후 자신이 개혁의 목표가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인데, 그런 기황후가 개혁을 지원하겠다고 나서는 모순된 상황이라니... 아니나 다를까, 기황후도 개혁이 진행되면 자신의 손발이 잘려나간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자연히 개혁은 흐지부지 된다. 참으로 황당한 일이지만, 우리 역사에서나 다른 나라 역사에서나, 옛날이나 지금이나 종종 볼 수 있는 일이다. 누군가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개혁을 주도하거나 지원했다가, 그 개혁으로 숙청되어야 하는 세력이 바로 자기 측근들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슬그머니 개혁에서 손을 떼버리는 일 말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참 인간적(?)인 행동이라 할 수 있다. 저자가 이 시리즈를 쓰기 전에 '고려 무인 이야기' 시리즈를 쓰면서 '사람 냄새 나는 역사책'을 쓰고 싶다고 했는데, 기황후 부분에서 그 사람 냄새를 맡았다. 비록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가 아닌 쉰 냄새 혹은 탄 냄새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전체적으로 지루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분명히 읽어볼 가치가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시대가, 부마국 체제가 시작되고 심화된 충렬왕과 충선왕 시대에서 고려가 원나라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 하는 공민왕 시대를 잇는 징검다리이기 때문이다. 장차 나올 4권 공민왕 부분을 읽고 이해하기 위한 사전작업(?)을 위해서는 꼭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매번 다음 권이 나오는데 2,3년씩 걸렸는데, 4권은 또 언제나 나올지... 또 기다림의 시작이다. 1권부터 이번에 읽은 3권까지 되새김질을 하면서 이 시리즈를 완성할 4권을 기다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