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16
구병모 지음 / 창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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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고 싶었던 적 있어? 나는 도망치고 싶은 때가 많은데, 사실 도망가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인지도 몰라. 도망치게 된다면... 그건 또 하나의 목적이니까 결국 도망이 아니게 될 거야. 그럼 또 다행이네. 우리 고민에 답은 하나가 아니라서, 그래서 답이 없지만 그래서 다행인, 그런 세계를 알려줘서 고마워.




많은 분들이 이미 아실 거라 생각하는! 위저드 베이커리의 개정판이 나왔다. 내용에 개정은 없고 바뀐 표지와 새로 쓴 작가의 말을 찾아볼 수 있다.

구병모는 데뷔작으로 정말 대히트를 친 작가인데, 처음 봤을 때(초딩시절)에는 이름만 보고 그가 남자인 줄 알았다. 지금에선 필명인 걸 알지만 모두가 한 번씩은 착각했을 듯.

특이점이라고 한다면 역시 두 가지의 결말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 이건 어릴 적 내게 정말 큰 충격이었다. 난생처음 보는 방법이기도 했고 전혀 생각지 못한 방식의 결말이었기 때문이다. 웃기게도 그때 나의 결말을 꼭 골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역시, 그게 아닌 걸 안다.




'나'는 아주 평범한 초등학생이다. 어른의 거짓말을 싫어하고 어른들이 자신을 어리게 본다는 것을 안다. 한 편으론 어른을 증오하고 한 편으론 어른을 목표로 한다.

아버지의 재혼으로 어머니의 공백에 강제로 타인을 삽입당한 '나'는 그 불편한 가족 관계에서 탈출을 꿈꾼다. 그러나 탈출을 하고 싶은 것과, 탈출을 하게 되는 건 다르다. '나'는 탈출을 하게 되는 쪽이다.

새어머니가 데려온 의붓 여동생과 관련된 사건으로 '나'는 오해를 받고 도망친다. 자신이 범인이 아닌 다른 대안이 없다는 건 굉장히 큰 공포다. 주인공은 어리지 않았지만 어렸고 길을 몰랐기에 길을 모른다.

그렇게 달려 도착한 곳은 <위저드 베이커리>라는 빵집이다. 겉으로 평범해보이는 이 빵집은 각자의 소망을 들어주는 마법의 빵을 팔고 있다.

여기에서 나는 점장(마법사)와 소통하며 각 빵들이 가진 마법적 힘에 대해 알게 된다. 저마다의 효능마다, 저마다의 손님들이 찾아온다. '나'는 어른 (혹은 어른 흉내를 내는 아이) 들의 소망을 보며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지, 나의 빵은 어떤 것일지를 생각한다. 동시에 여러 사건들이 중첩되면서 점차 많은 질문을 자신에게 던진다.




중요한 것은 질문을 통해 내가 원하는 것을 찾는 것보다도,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가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는가, 왜 그 감정이 들었는가 등등 '나'는 점차 외부에 대한 질문에 내부를 답한다. 그 과정은 수없이 되뇌었던 검열이나 혐오와는 다르다. 가끔 우리는 나를 탐색하는 것으로 나를 위로한다.

그 최종적인 과정으로 작가는 꿈을 활용한다. 꿈을 통해 아이의 권력을 보여준다. 여기서 말하는 권력이란 어릴 때만 겪을 수 있는 인간의 사고 과정들을 말한다. 이건 동심이나 순수가 아니다. 작가는 아이의 마음을 권력으로 치환해 하나의 무기로 쥐여준다. 마치 마법처럼 형체 없는 자기 위로야말로 어릴 적부터 생겨나는 당신의 무기다.




사건의 실마리를 앞에 두고 소년은 선택한다. 마법 빵을 이용하여 시간을 돌릴지, 돌리지 않을지. 긴박한 순간 작가는 독자에게 자유를 선사한다. 바로 두 가지의 경우를 모두 보여주는 것.

두 결말의 유사성은 세계를 파괴한다. 어른이라는 세계와 그 속에서의 폭력, 가해자의 일상을 보장하지 않는 친절함으로 어른의 세계를 파괴한다. 두 결말의 이질성은 인간을 위로한다. 마법을 믿는 이에겐 마법을, 조금 더 망설이는 이에겐 시간을 선사한다. 우리의 고민은 애초에 하나의 답을 달고 태어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어떤 경우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위저드베이커리 #구병모 #창비 #소설Y #소설Y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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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의 순간들 제프 다이어 선집
제프 다이어 지음, 이정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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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도서제공 #제프다이어 #지속의순간들 #서평 #사진 #을유문화사



『지속의 순간들』은 여러 저명한 사진가들의 사진을 비교 분석하면서 사진의 본질을 찾아가는 비평집이다. 같은 구도, 같은 장소, 같은 대상 등이 담긴 사진들을 보면서 왜 이 사진들이 본질적으로 다른지 (혹은 같은지) 를 떠든다. 제프 다이어는 지속된 순간의 우연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사진을 탐구한다.

이 책을 통해 제프 다이어를 처음 접했기 때문에 어쩐지 당연하게도? 사진작가인 줄 알았다. 사진작가의 에세이인 줄 알았는데 그냥 사진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의 평론집이었다. 이 과정에서도 알 수 있듯 저자의 책들은 굉장히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소설이라던가, 요가라던가, 지금과 같은 사진 서평집이라던가. 여기에서부터 제프 다이어의 특이성을 엿볼 수 있는데 그는 심지어 1, 2부는 빠르고 쉽게 3부는 깊게 읽어달라는 꿀팁도 전수해준다. 여기서 말하는 3부가 바로 『지속의 순간들』이다. 나는 작가의 말대로 찬찬히 책을 즐겼다.

사진작가들이 사진을 찍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다 어떤 일상을 어떻게 담는 것일까? 책은 여기에 도달하기 위해 많은 사진을 쌓는다. 어떤 사람은 지금의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또는 순간을 정의하기 위해 사진을 활용한다. 적으면 생각이 정리되는 글 작가적 정신을 지닌 사람이 있듯이, 찍으면 생각이 정리되는 사진작가적 정신이 있는 것 같았달까. 물론 대단한 정신적 당위가 사진을 형성하진 않는다. 모든 사진은 사진이니까.

순간에 대한 찬사뿐 아니라 사진은 역사나 사고 과정의 증거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지금을 찍은 지금의 사진이, 사실은 지금보다 엄청난 것들을 담고 있다는 거다. 이 함축은 사진이 가지고 있는 '순간성'에서 결정된다. 어떤 순간을 담느냐에 따라 그 순간이 가진 맥락의 위치가 결정되고 어떤 것은 서사를 어떤 것은 서정을 담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글을 읽을수록 사진이 '읽게'되었다. 시로 읽히는 사진과 소설로 읽히는 사진의 간극을 우리는 모두 본능적으로 느낀다. 이 느낌에 대한 친절한 분석에서, 그래서 사진을 너무 사랑한다는 애정이 느껴졌다

또 하나 사진의 흥미로운 점은 현실을 찍고있는 것 같아도 어떻게 만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현상된다는 것이다. 사진을 현실의 복기라고 말하기엔 흑백과 컬러, 온도감, 구도 등 미치게 많은 조절점들이 있다. 현실과 가장 흡사한 재연임과 동시에 그 안에 담긴 전혀 다른 세상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사진의 숙제는 '본질'을 담는 것이 된다.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는 수많은 사람들은 그 너머의 본질적 세상을 보려고 한다. 감히 진정을 담으려고 하는 의지는 모든 예술 분야가 가진 정신병이다. 그중에서도 사진은 가장 멈춰있기 때문에 어쩌면 더 영원히 사랑받는 걸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오렌지 사진을 보며 생각난 오렌지 시를 첨부한다. 역시 예술은 닮았어.



오렌지- 신동집


오렌지에 아무도 손을 댈 순 없다.
오렌지는 여기 있는 이대로의 오렌지다.
더도 덜도 아닌 오렌지다.
내가 보는 오렌지가 나를 보고 있다.

마음만 낸다면 나도
오렌지의 포들한 껍질을 벗길 수 있다.
마땅히 그런 오렌지
만이 문제가 된다.

마음만 낸다면 나도
오렌지의 찹잘한 속살을 깔 수 있다.
마땅히 그런 오렌지
만이 문제가 된다.

그러나 오렌지에 아무도 손을 댈 순 없다.
대는 순간
오렌지는 이미 오렌지가 아니고 만다.
내가 보는 오렌지가 나를 보고 있다.

나는 지금 위험한 상태다.
오렌지도 마찬가지 위험한 상태다.
시간이 똘똘
배암의 또아리를 틀고 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오렌지의 포들한 껍질에
한없이 어진 그림자가 비치고 있다.
누구인지 잘은 아직 몰라도.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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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상처받았나요? - 상처 입은 사람에게만 보이는 술 빼고 다 있는 스낵바가 문을 연다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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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상처받았나요?』는 마음에 상처가 있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스낵바 딱따구리의 이야기다. 개인적으론 제목 번역이 아쉬웠다. 정확하지만 매력이 떨어지는 제목이었달까! 술을 팔지 않는 '스낵바'에서 취하지 않고도 본인 이야기를 하게되기까지 주인장은 세심하게 대화를 이끈다.

​옵니버스형으로 이런 저런 상황들이 나오는데 하나같이 현실적이다. 덕분에 공감과 몰입이 정말 잘됐다. 드라마화 되었다는데 왜 그랬는지 알겠을 정도로 이야기들이 매력있다. 단순한 그림체는 슴슴하게 스토리랑 잘 어울린달까.

우리 각자의 사연이 다르듯 손님에게 내어주는 위로의 형식도 다양하다. 너무 사소해서 말하지 못하겠는 상처든, 너무 커서 드러내기 무서운 상처든, 너무 오래되어서 눈치가 보이는 상처든 가게를 발견한 이상 우리에겐 상처가 있다. 상처를 발견한 이상 상처는 상처다.

이상하지 않아. 라는 말이 위로가 될 만큼 우리는 다들 이상하게 산다. 읽는 내내 마음이 편하고 웃기기도 웃겨서 좋았다.

선물하기도 좋고 가볍게 읽기도 좋은 책이다. 츄천츄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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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감상문 - 읽거나 믿거나
이미나 지음, 이미란 그림 / 뭉클스토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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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확실히 채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있는 요즘이다.
이전엔 유별난 건강챙기기로 취급됐다면 이제서야 환경성도 인정받고 있는 느낌이랄까. 걸맞게 또다른 신간이 등장했다. 바로 『채식감상문』! 뭔가 채식 전문가로 느껴지는, 그러니까 이미 다른 세상 사람같은 채식러가 쓴 책이 아니라, 채식에 도전하는 일기다. 족발을 보면서 연어를 먹고. 연어를 생각하면서 열매를 먹어보는 일기다.

이 책은 무려 자매가 만들었다. 대충 환경에 관심있는 동생과 열정적으로 먹거리를 사랑하는 언니가 함께했다. 가족과 함께 사는 사람들에겐 더더욱 식습관의 변화가 어렵다. 내가 시금치만 잔뜩 사다둔다고해서 영원히 우리집 냉장고에 삼겹살이 없는 게 아니다. 채식하면 밖에선 뭐먹지? 에 대한 흔한 고민을 채식하면 집에선 뭐먹지? 라는 것까지 확장하는 가족의 형태는, 우리의 육식주의적인 식탁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작가는 아주 유쾌한 태도로 채식을 시작한다. 살짝 겸사겸사 살도 빼고 살짝 겸사겸사 올 해 받은 기도 제목도 실천해보자는 식이다. 사람들은 하나의 가치관을 세울 때 밤새 결정한 커다란 다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모두 은근히 알고있다. 일단 대충 시작해보는 것이 모든 일의 왕도라는 걸.

책은 n차에 걸친 채식 도전과 이에 대한 짤막한 후기들로 구성되어있다. 부분적인 채식을 하는 나에게 가장 와닿았던 대목은 채식을 찾아먹을수록 '내가 정말 많이 처먹는구나...! 이렇게까지 말할 수 밖에 없도록 먹는구나...!' 라는 걸 알게되는 부분이다. 세상의 음식은 많다. 진짜 넘 많음.

이 책의 또다른 매력은 채식을 멈추는 법도 기록한다는 것이다. 지인과 밥을 먹을 때, 누군가에게 초대 받았을 때 등등 다양한 상황에서 우리는 밥을 먹는다. 상대와 함께 즐긴다. 그 자리에서 채식을 멈추는 것은 핑계보다는 장거리 달리기를 위한 쉼이랄까. 이렇게 쓰니 더 핑계같지만 구속하지 않을수록 우리는 더 멀리 달릴 수 있다.

앞서 말했듯 가족과 함께하는 식탁 상황 또한 생생한 재미를 준다. 채식을 시도하는 동생 옆에서 우낀소를 먹는 언니... 채식러라면 오백번쯤 경험할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채식에 대한 흔한 오해처럼! 내 앞에서 굳이 왜 저딴걸 먹지? 하지 않는다. 완벽한 채식주의자란 없고, 상대를 비판하기 위해 채식을 하는 사람도 없다. 다만 나와 즐겨준다면 더욱 즐거울 뿐.

모든 과정을 마친 후기 또한 굉장히 신선하고 솔직하다.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누구나 익숙하고 맛있는 육식을 절제하기란 힘들다. 당신이 아는 그 비건 누구누구도 필시 그랬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채식에 관한 책을 썼으면서 채식만을 하면서 살지는 못하겠다고 고백한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나도 그렇다. 채식을 선호하지만 육식도 좋아한다. 채식을 만들어먹지만 육식도 사먹는다. 그게 나의 솔직하고 강경한 태도다. 이상하게 사람은 완벽하려고 한다. 그 때문에 오점이 생기면 채식을 포기하는 사람도 많다. 그렇게 포기할 바엔 허점을 인정하고 그래도 채식에 대한 사랑을 키우겠다는 태도가 건강하다. 나에게도 지구에게도 모든 당신들에게도.

덧붙여 말하자면 삽화가 정말 예쁘다. 이 가족은 정말 애정이 넘치는 가족인데 그림에서도 왜인지 응원하는 마음이 느껴질 정도다.



가족 중에 채식을 실천하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혹은 채식 해보고 싶은데 겁이 난다면 정말 주저없이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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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펜의 시간 - 제2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김유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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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펜의 시간은 이번 해 한겨레 문학상을 받은 작품으로 야구를 통한 승부의 의미를 조명하고 있다. 이 책의 특이한 점은 승리의 의미보다 지는 것의 의미를 조명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재능을 타고난 것은 아니며 그러므로 승리는 누군가의 패배가 된다. 서로 최선을 다할수록 이 법칙은 처절하게 선명해진다.

​승리감에 도취될 때 기억해야한다. 모든 승리에는 패배자가 있으며 패배자의 삶에도 최선이 있다는 것을. 또한 우리는 다음 경기에서 언제든 질 수 있음을.

그치만 모든 경기에 승패가 있다고 해서, 그게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 필요는 없다. 즐거움을 위해 경기 할 수도 있으며 누군가에겐 경기라는 무대 자체가 꿈이 될 수도 있다. 승패가 결과가 되기 시작한 후 마치 승패가 가장 중요한 것처럼 취급되기 시작했다. 경기에는 수많은 감정이 오가는 것도 잊은 상태로 말이다.

그렇게 모든 삶의 경기가 결국 경마장과 같은 기록이 전부인 운동장이 될 때, 잠시 멈추는 법을 알아야한다. 그 멈추는 법도 배워야 한다. 달리는 법을 배울 때 잘 멈추는 법도 배워야 한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사실이지만 아무도 언급하지 않기에, 멈춘 사람은 낙오자가 된다. 이상한 사람이 되며 결국 포기한 것이라고, 결국 진 것이라고 기억된다.

나를 둘러싼 시선이 어떻게 되든 우리는 마음 속 패배에 대한 공포와 조우해야 한다. 그 공포의 손을 잡고 지는 것의 의미에 대해 얘기해야 한다. 우리는 이기는 동시에 늘 지고 있기 때문이다. 늘 지고 있는 것으로 이기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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