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열일곱 살이다. 이제 겨우 열일곱 살인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영화 《조지아》에서 망신창이 조지아가 부르던 다. 그 노래가 맘에 든다. 성공한 누나의 무게에 짓눌린 주인공의 비극이 내 마음을 할퀴었다.

“소연아. 이번에 내려야 돼. 일어나.”

꾸벅꾸벅 봄잠을 자고 있던 여동생을 깨운다. 내 마음은 지렁이처럼 땅 속을 헤집고 돌아다닌다. 이 나이에 여동생을 깨워서 아버지를 만나러 가야한다니. 한가하게 어머니가 싸준 도시락을 들고 정독도서관에 여자 친구랑 중간고사 공부하러 가고 싶단 말이야.

봄날은 나뭇가지로부터 치렁치렁하게 허공 곳곳에 달려 있다. 햇살은 투명하게 세상을 감싸 쥐고 그 안으로 부드러운 입김을 불어넣는다. 소연이는 언제 졸았냐는 듯이 산뜻한 얼굴로 사방을 감상하며 노래까지 흥얼거린다. 너무 씩씩해졌어. 난 그게 화가 난다. 났으면 책임을 져야 할 거 아니야. 왜 이혼은 해가지고 우리를 이렇게 힘들게 하냔 말이야.

“응. 엄마. 다 왔어. 오빠랑 왔지. 걱정 마요. 잘 놀다가 밥 잘 먹고 갈게. 응. 걱정 마. 응. 그래, 나도 엄마 사랑해.”

어머니 마음도 이해는 간다. 항상 혼자였으니까. 아버지는 너무 바빴다. 게다가 여자도 잠깐 있었고……. 지금 아버지는 다시 혼자인데 어머니가 너무 하시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도 잠깐 들고는 한다. 아버지는 이제 일에 빠져 우리에게 돈만 다달이 보내주신다. 난 아버지라는 존재가 희미하다. 어머니는 그것도 싫으신 거겠지. 근데 또 화가 나는 건 왜 내가 그걸 이해하고 있냐 말이야.

“아빠!”

난 살짝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반듯한 양복 안에 있으시다. 자신의 딸을 보며 웃는다. 아버지의 차를 타고 식당으로 간다. 차창 밖으로는 봄날들이 날아간다. 퍼런 멍 같은 목련과 벚꽃들의 잔해 위로 드라이브를 한다. 아버지는 일상적인 대화 외에 별 말이 없다. 마치 어젯밤에 서로의 방에서 잠들었다가 오늘 점심 약속에서 만난 사이인 것처럼…….

“중국식 냉면 먹어봤니? 맛있어.”

아버지는 여전히 웃고 계신다. 뭐가 그리 즐거울까? 저 사람은, 내 아버지가 맞기는 맞는 걸까? 이런 상황이 현실적으로 연출될 수도 있구나.

“아버지.”

“응.”

“아니에요.”

어머니는 왜 끝내 아버지와 이혼을 하셨을까.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름대로 성실한 가장이었다. 자신의 실수에 대해서도 사과를 했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가 싫으셨던 걸까?

내가 《조지아》에서 조지아가 부른 를 좋아하는 이유가 변했다. 이제는 그런 노래처럼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건 동경이어야 한다. 동경은 현실이 아니고. 하지만 나의 동경이 현실이 되어가는 느낌에 열일곱, 나의 삶은 곱다 못해 미칠 것만 같다. 져서 바람에 날리는 벚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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