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후대들을 위한, 일종의 기록이다. 소설의 형식을 빌렸다.

 

처음으로 몸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스물일곱 살의 어느 날이었다. 우주태양열에너지연구소에 있는 360°트랙에서 조깅을 하는데, 동기들보다 내가 월등히 빨리 달렸다. 똑같이 출발해도 항상 두세 바퀴 정도 앞섰다. 사용료 내기 게임을 해도 내가 항상 이겼다.

평소보다 신진대사도 빨라졌었다. 평형에서는 프로운동선수들보다 뛰어난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어떤 친구는 ‘이 기회에 수영선수로 진로를 전환해’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그 정도의 기록을 세울 만큼 열심히 운동을 한 적이 없었다. 전문적인 코치로부터 특별한 트레이닝을 받은 적도 없었다. 운동은 그때나 지금이나 취미이다.

거기에다가 두뇌회전까지 빨라졌다. 한 번, 쓱, 본 자료가 잊히지 않았다. 업무에 필요한 자료를 생체컴퓨터에 저장하거나, 여유시간을 쪼개서 따로 공부할 필요가 없었다.

몸 안의 세포들, 장기들의 속도가 너무 빨랐다. 내 의지와는 전혀 무관한 무엇인가가 나를 조종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끔찍한 사고가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공육체를 착육하기 직전까지도 가끔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있었다. 슬쩍 문을 열다가 문을 부순 적도 있었다. 방대한 양의 숫자와 문자들이 머릿속을 점령해서 기절하는 일도 있었다. 잠을 자다가 거의 실신 직전의 상태에 빠져버린 적도 있었다. 침대가 부서져서 방이 엉망이 되고는 했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고는 했다. 그럴 때는 발작이 완전히 멈출 때까지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누리로 인한 육체변형이네요. 직업이 우주태양열에너지 연구원이라고 했죠? 의사들이 모르는 우주로부터 온 파장이나 물질에서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어요.”

의사가 책상서랍을 열었다. 우주태양열에너지로 만든 빛이 블라인드 사이로 내려왔다. 그가 초록색 팔찌를 내밀었다.

“라이프 타이머라고 해요. 육체와 민감하게 반응해서, 삶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초록빛으로 알려줘요.

반 년 정도 남았을 거예요. 어쩌면 더 짧을 수도 있어요. 반년보다 길 수 있긴 해요. 누리로 인한 육체변형에 대해서 아직 많은 연구가 이뤄지진 못했어요. 그래서 더 정확하게 말씀드리긴 힘들어요.

인공육체가 있으니까, 걱정하실 필요는 없고요.”

육체가 죽는다고 해도, 인공육체로 새로운 삶을 계속 살 수 있다. 나라는 존재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인공육체를 착육하면, 50년에서, 길게는 70년까지도 더 살 수 있다.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라이프 타이머를 들고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의사는 실은 할아버지일지도 모른다. 부드러운 살갗 밑의 진실은 고목일지도 모른다. 알 수 없다. 겉모습이 전부가 아니다.

특별하지 않은 죽음 앞에서, 남은 시간을 뭘 하며 보낼지 생각했다. ‘직장에 병가를 낸다, 라이프 타이머를 만지작거리며 집에서 쉰다,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만난다…….’

지선이가 보고 싶었다. 외롭고 쓸쓸했다. 지선이를 못 본지도 꽤 오래됐다. 일에 치여서, 지선이를 만난 적이 없었다.

지선이와의 추억들이 떠올랐다. 처음으로 수줍게, 그리고 매우 어설프게 그녀에게 고백을 하고, 연애를 했던 일들이…….

손목의 생체컴퓨터로 지선이에게 호출신호를 보냈다.

벽면의 스크린에 지선이가 나타났다.

 

나와 지선이 앞에, 물이 담긴 투명한 유리잔이 놓여 있었다. 대기 중의 원자들을 여러 개로 쪼갰다가, 다시 이리저리 합성해서 만든 인공의 물…….

600년 전이었다면 나도 땅으로 돌아가 분해됐을 거다. 미생물들의 일상을 위한 일용할 양식이 됐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인간 외에는 생명이 살지 않는다. 지독한 이상기후로 인해 먹을거리의 생산과 유통시스템이 완전히 망가졌다.

“모든 동물은 태어났다 죽는 거야. 그게 생명체의 숙명이라고.”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그냥, 아무런 이유도 없이, 물이나 되고 싶었다.

“아파?”

“괜찮아. 진통제를 먹었어.”

“네 육체변형은 진화잖아. 퇴화한 사람들을 몇 명 만나봤는데,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거 같더라. 인공육체를 착육하면 되잖아.”

난 일종의 동료의식이나 동질감 때문에 이맛살을 찌푸렸다.

진화자나 퇴화자나 오십보백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퇴화자보다는 진화자에게 호감을 갖기는 한다. 진화자는 일반인보다 육체의 기능이 우월해서, 이런저런 일에 도움이 많이 되기 때문이다. ‘도달하기 힘듦’이라는 설정, 욕망의 최종적인 목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진화도 진화 나름이다. 나의 경우처럼, 지나친 진화도 진화라고 할 수 있을까. 그건 퇴화보다 못한, 가장 비루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린 신의 도박판에 던져진 거야.”

“난 그 도박판에서 빠지고 싶은데…….”

“갑자기, 아무런 이유도 없이 네가 보고 싶었어.”

“왜? 몇 년 동안 연락도 안 했잖아. 물론 네가 성공했고, 무척 중요한 일을 한다는 걸 알아. 바쁘다는 것도 알아.”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길지 몰랐어.”

“하지만 노들을 벗어나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잖아. 오래 사신 분들에게 들은 얘기로는, 예전엔 여행도 다니고 했다는데, 우린 못 그러잖아. 하지만 난 노들이 고향이니까, 노들이 좋아.”

노들은 거대한 플라스틱 돔으로 완전히 둘러싸여 있다. 노들은 2813년의 도시를 지칭하는 단어다. 지구상에는 100여개 정도의 노들이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노들의 정확한 명칭은 ‘노들 그리고 서울’이다. 주요도시들의 이름은 이런 형식이다. ‘노들 그리고 베이징’, ‘노들 그리고 뉴욕’, ‘노들 그리고 파리’…….

“나도 떠돌이들, 여행가들을 좋아하는데…….”

“신상에 변화가 생기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법이지. 그 맘은 나도 이해해.”

종업원이 우리의 열 손가락 끝에, 하나씩, 작은 센서를 연결했다. 그리고 우리는 갈비찜과 해물떡볶이를 주문했다. 갈비찜과 해물떡볶이의 맛과 향이 뇌에 그려졌다.

우리가 앉은 식탁의 가운데 부분이 열리면서, 밑에서 위로 작은 장치가 올라왔다. 연이어 갈비찜과 해물떡볶이의 3D 시뮬레이션이 나타났다. 갈비찜과 해물떡볶이의 3D 시뮬레이션에 입을 댔다가 땠다.

종업원이 누리 두 알을 들고 다가왔다.

누리 한 알이면 한 끼의 식사가 해결된다. 한 끼의 식사로 누리 외의 것을 섭취할 필요는 없다.

 

이명한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영혼의 안식’에도 갔다. 이명한 선생님은 당대 최고의 우주태양열에너지 권위자이자, 대학에서 내게 처음으로 우주태양열에너지에 대해 가르쳐주신 분이다.

선생님이 임종에 임박했던 14년 전에는, 지금처럼 인공육체가 세련되게 발달하지 못했다.

지금의 인공육체는 인간복제에 가깝다. 복제된 육체에 뇌를 이식한다.

인공육체를 착육하면 생식은 할 수 없다. 하지만 관련 전문가들은 3년 안에 생식기능도 할 수 있는 인공육체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력이 있는 사람이 ‘영혼의 안식’을 선택하는 건 매우 드문 일이었다. 나도 그때 선생님의 선택이 의아했었다. ‘워낙 개성이 강한 분이시라서’라고만 이해했을 뿐이다.

입구에서 신분증을 제출하고, 면회를 신청했다.

‘영혼의 안식’의 외양은 웅장했지만, 내부는 한산했다.

안내인이 날 작은 방으로 안내했다. 텅 빈 방엔 스피커와 마이크가 하나씩 놓여 있었다.

“오랜만이네.”

쾌활하고 힘찬 기계음, 이명한 선생님이다.

“지내실만한가요?”

“못 지낼 건 또 뭔가. 영혼일 뿐인데……. 정확히 말하면 특수물질에 담겨진 뇌이지.”

“센서나 코드들도 연결되어 있으시잖아요.”

“썰렁하군. 농담 실력이 별로 안 느는 거 같아. 참으로 서글픈 일이야.”

그때 진정제를 먹지 않은 게 기억났다. 주머니에서 진정제 한 알을 꺼내 급하게 삼켰다.

“누리인가?”

“아니요. 진정제예요. 저도 곧 죽어요. 누리로 인한 육체변형이에요. 진화이기는 한데요. 너무 많이 진화했다는군요.”

“그래서 날 찾아왔구먼.”

“죄송합니다. 다급해져서야 선생님을 찾아와서요.”

“이곳도 상당히 괜찮아. 영혼이라고 해도 요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다 알 수 있어. 웹에 접속해서 필요한 정보를 보는 것도 가능해. 심심하지 않아. 다른 영혼들과 자유롭게 대화할 수도 있어.”

“저도 선생님의 곁으로 갈지 몰라요.”

“자네가 왜 이곳으로 오나. 자네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아. 인공육체를 선택했으면 좋겠구먼. 요샌 인공육체도 많이 발달했지? 그리고 난 특별한 이유로 이곳을 선택한 거야. 자네는 굳이 그래야 할 이유가 없네.”

“선생님이 좋아서 ‘영혼의 안식’을 선택하신 게 아니에요?”

“누리에 대한 연구 때문에 누리사, 그리고 정부와 마찰이 있었어. 누리에 대한 연구의 결과물을 공개하려고 했거든. 그랬더니 상황이 매우 안 좋아지더군.

그 상황이 어땠는지, 누가 나한테 무슨 말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겠네.

조약했던 인공육체를 착육하기도 싫었고.”

“선생님이 지식인으로서 사회의 귀감이 되기 위해서 ‘영혼의 안식’을 선택했다던, 그 많은 보도들은 다 뭔가요?”

“추측이 아니라면, 정부나 누리사의 보도용 자료를 보고 만든 것이지.

난 나를 ‘영혼의 안식’에 집어넣음으로써 경종이 되고 싶었어. 귀감이 되고 싶었던 게 아니야.”

“경종이요?”

“어. 경종. 미친 속도로 앞으로 달려오기만 한 인간이 만든 끔찍한 이상기후에 대한 경종. 결국 그로 인해 인간과 몇몇 박테리아를 제외하고는 모든 생명체들이 멸종한 것에 대한 경종.

누리로 인해 증가한 사회의 불확실성이 얼마나 큰지 아나.

인공육체를 한 사람이 사람인가, 아니면 다른 생물일까. 자네는 지금 사람과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인가, 기계와 대화를 하고 있는 건가.

노들에 갇힌 사람들의 정신적 분열도 가속화되고 있어. 무엇이 정상이고 비정상인지를 구분하는 사회의 인지적 기능도 백 년 전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네.

난 순수한 사람이 얼마나 이어질 수 있을지도 의문이네. 누리로 인한 육체변형은 이제 시작에 불과해. 100년 이내에 이 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면 인간은 사라지게 될 거야. 인간이 아닌 다른 종이 지구에서 살게 될 거야.

노들의 정부는 이 문제가 수면으로 부각되는 것을 억압하고 있어.

인공육체가 인간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안 힘드세요? 그렇게 많은 걱정을 떠안고 사시면요?”

“이건 반은 본능이네. 내 아이디어와 비밀번호를 가르쳐줄게.”

“비밀번호가 만 단위만 아니라면 괜찮아요. 그런데 무슨 비밀번호인가요?”

 

이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선생님의 개인용 웹페이지에 입력했다.

작은 종들이 흔들리는 소리가 나면서 이 선생님의 웹페이지가 열렸다.

일기를 비롯해서, 각종 동영상, 글들이 빼곡하게 들어있었다. 누리에 대한 연구결과들을 담은 폴더도 있었다.

이 선생님의 웹페이지를 훑어보고, 누리에 대한 글을 한편 쓰기로 결심했다. 선생님이 말년에 하시던 누리에 대한 연구와 누리에 대한 그의 견해를 소개하자고. 그가 영혼의 안식을 선택한 것은 시대의 경종이 되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점도 포함해서. 물론 이 모든 상황에 대한 나의 생각도 조금 첨가했다.

글을 완성하는 데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제목은 ‘최고라고 불리던, 이명한 우주태양열에너지 박사의 진실’이라고 정했다.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영혼의 안식’으로 이 선생님을 뵈러가기 전에 이 선생님에게 힘든 척 하고 싶지 않았다. 과도한 진화로 육체의 죽음을 앞두고, 인공육체를 착육해야 하는 혼란 속에서도 최대한 무덤덤한 척 했다.

‘반은 본능’이라는 선생님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었다.

그 글을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기자에게 이메일로 전송했다.

“보도해도 괜찮아?”

“네. 괜찮습니다. 형을 믿어요.”

그리고 그 글을 내 웹페이지에도 게재했다.

2시간쯤 뒤에 내 글에 대한 첫 기사가 나왔다. 그리고 거의 모든 매체에서 내 글을 분석하는 보도를 쏟아냈다.

꽤 관심을 끌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그렇게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올지는 몰랐다.

이 선생님이나 나 말고도 누리와 누리로 인한 육체변형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내심 불만을 품고 있었나보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고, 어딘가에서 뇌관이 터지기만을 기다리고들 있었던 거 같다.

5시간쯤 뒤에는 이 선생님의 인생과 이 선생님이 ‘영혼의 안식’을 선택한 진짜 이유에 대한 특집기사까지 나왔다.

그날 밤에 노들 정부의 보안요원들이 집으로 찾아왔다. 오후 11시쯤이었다.

“저희와 함께하시죠.”

안대가 채워진 채 어딘가로 끌려갔다. 감옥은 아니었다. 아주 한적하고 청결한 가정집의 거실과 같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외부와의 연락은 허용되지 않았다. 웹 접속도 허용되지 않았다.

노들위원회의 관계자, 누리사의 변호사, 법무부의 관계자와 몇 번의 심문 또는 질의응답을 했다.

거의 아침이 다 됐을 때, 날 담당하겠다고 나섰다는 변호사와 짧은 면담을 할 수 있었다.

“겨우 하루 정도밖에 안 된 짧은 시간이었어요. 하지만 그동안 누리를 다르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꽤 많이 늘어났어요.

여론은 한 박사님에게 유리해요. 한 박사님과 박사님의 글, 이 박사님에 대한 우호적인 층이 두터워서, 누리사나 정부가 한 박사님을 고소하는 일도 없을 거 같아 보여요.”

“가족들은 잘 지내고 있나요? 그리고 최근에 옛 애인을 만났었어요. 지선이라고요. 다들 잘 지내고 있죠?”

“한 박사님의 가족들은 일상생활에 별다른 변화 없이 모두들 잘 지내고 있어요. 지선 씨라고요? 지선 씨라는 분에 대해서는 한번 알아볼게요. 특별한 일은 없을 거예요.”

변호사가 돌아가자, 보안요원들이 들어왔다.

 

지선이가 살포시 날아왔다. 지선이가 날개인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언제부터니?”

“나도 너랑 비슷한 시기부터?”

“부작용은 없니?”

“없어. 내 날개는 보다시피 날개인 중에서도 조금 작은 편이야. 높게 날지도 못해. 평소엔 숨기고 다녀. 널 만나려고 특별히 저 앞에서부터 조금 날아왔어.”

지선이가 작은 날개를 힘껏 펼쳤다. 깃털은 없지만, 분명히 어깻죽지로부터 나온 작은 날개였다.

날개인은 광고 모델, 행사 진행 등으로 하루에 몇 억 원을 버는, 현대의 전설이다. 날개인은 누리사나 우리 회사처럼 규모가 큰, 다국적 대기업의 광고에 자주 등장한다.

일반인들에게는 모습을 잘 드러내지도 않는다. 몸값을 높이기 위해서인지, 그들만의 규칙이라도 있는 것인지……. 길거리를 다니면서 날개인을 보는 것은 성탄절에 파란 눈이 내리는 것과 비슷한 확률의 일이다.

허공광고판이 우리 위에 떠 있었다. 성인의 팔 크기만 한 날개를 가진 날개인이 누리를 먹고 있는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인공육체는 어느 브랜드로 할 건지 결정했니?”

“아니. 아직…….”

“여성으로 살아보는 건 어떨까?”

긴 한숨의 끝에, 눈물이 났다. 전자책에서 봤던, 해파리부터 향유고래까지, 인간과 수천 년의 시간 동안 인연을 맺어온 모든 생명체들이, 기억에서조차도 한꺼번에 몽땅 떨어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빅뱅의 순간부터 지금까지, 우주와 태양계 그리고 인류의 모든 순간들, 그 연장선상에 있는 내가 불쌍했다.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한쪽 팔로 지선이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쌌다.

“빨리 어느 브랜드의 인공육체를 구입할 건지 결정해. 같이 가줄까? 우리 엄마도 하셨어. 처음엔 많이 우울해하셨는데, 지금은 괜찮으셔.”

“내 걱정은 안 해도 돼. 진정제를 먹을 시간이네.”

“알았어. 나도 바쁘다고……. 참, 나도 봤어. 그 글을 말이야. 좋았어. 내가 아는 상원이가 맞더라.”

지선이가 날개를 가리는 겉옷을 입고, ‘쉬어, 내 사랑’이라고, 내 귓가에다가 속삭였다.

그리곤 손을 흔들면서, 공중열차정거장을 향해서 천천히 걸어갔다.

지선이가 떠나자, 내 주변의 모든 것이, 마치 빛의 끄트머리에서 홀로 미약하게 존재를 드러내는 탁자처럼 변했다.

멸종한지 500년은 된, 최고 기록으로는 120년까지도 살았다던 바다거북이의 하품 같은 피로가 몰려왔다.

노들의 어딘가에서 바다거북이가 수조의 물을 헤엄치며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상상을 했다.

 

우리 집의 문 앞에서였다.

나보다 더 건장한 사내가 손수건으로 내 입을 틀어막았다. 그는 현관문 뒤에 숨어 있었다.

손수건에 마취제를 묻혔는지, 사지에서 점점 힘이 빠져나갔다. 그리고 의식을 잃었다.

의식이 돌아왔을 때, 사내가 희미하게 보였다. 내 윗옷을 벗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저항할만한 힘이 없었다.

그가 내 팔을 붙잡고, 날 질질 끌어서, 벽 쪽으로 날 옮겼다. 그리고 벽의 고리에 내 양팔을 고정시켰다.

난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한기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서서히 의식이 돌아오면서, 주변의 것들이 점점 또렷해졌다.

수초색의 방이었다.

방에는 6개의 생체센서가 달린 장치가 있었다. 외식할 때 사용하는 센서와 비슷한 유형인데,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최신의 것이었다. 생체컴퓨터와 외식용 센서의 구조를 융합한 것 같았다. 그 장치가 생체컴퓨터, 외식용 센서와 다른 건, 센서의 끝에 작은 바늘이 달려있다는 것이었다.

벗어나려고 이리저리 팔을 움직였다. 하지만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었다.

사내가 내게 다가왔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방에는 사내와 나, 단 둘 뿐이었다.

그가 내 입을 강제로 벌렸다. 그리고 누리 세 알을 내 혀 위에 올려놓았다. 내가 그걸 다 삼킬 때까지 커다란 손으로 내 입을 틀어막았다.

“다른 자료는 없나?”

기계음으로 변형된 목소리.

“무슨 자료? 누리에 대한 자료?”

사내가 내 오른쪽과 왼쪽 가슴의 힘줄에 생체센서를 3개씩 꽂았다.

그가 장치의 버튼을 눌렀다. 길고 가느다랗지만, 매우 강렬한 자극이 육체변형으로 두꺼워진 근육을 뚫고, 내장에까지 쏟아졌다.

자극은 가상과 실재를 버무린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온몸이 생체컴퓨터에 접속한 것만 같았다. 다른 차원이나 공간으로 순간이동이라도 할 것만 같았다. 이대로 존재가 영원히 지워질 것만 같았다.

“이 박사에게서 다른 자료를 받았나?”

사내가 내 양팔과 양다리의 힘줄로 생체센서를 옮겨 꽂았다.

그가 다시 장치의 버튼을 눌렀다.

자극이 팔과 다리의 근육을 경련시켰다. 극심한 고통이 힘줄과 근섬유의 사이사이로 스며들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나를 괴롭혔던 자극도 우리 회사에서 만든 우주태양열에너지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고통이 기억될 뿐이야. 너무 걱정하진 말라고. 널 헤칠 생각이 없어.”

“우리? 넌 누구야? 나한테 무슨 자격으로 이러는 거야. 이런 건 불법이라고.”

“너는 선을 넘었어. 그분도 이 일에 동의하셨어.”

“그분은 누구야? 노들의 위원회와 누리사와도 이미 만났어.”

“아주 소수의 사람들은 자네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알거야. 하지만 자네가 아무리 떠들어봤자, 그들은 절대로 아는 척 하지 않을 거야.

그들에 대해서 알려줄까? 그들은 ‘카랑’이야. ‘카랑’은 철저한 비밀조직이지. 추천으로만 가입할 수 있어.

자네도 10년 뒤엔 ‘카랑’의 회원이 될 거였어. 내가 당신한테 잘 보여야 했을 거라고. 난 더러운 뒤치다꺼리나 하는 사람이거든.”

“카랑? 당신이 말한 그분이라는 사람이 그럼, 노들의 위원장을 말하는 거야?”

“노들의 위원장은 ‘카랑’의 회원이 아니야.

더는 나도 몰라. 마지막으로 이건 가르쳐주지. 누리에 대해서 더 알려고 하지 마. 더 알리려고도 하지 마.”

 

난 노들의 외곽지역에 있는 하수구에 버려졌다. 외곽지역에 있는 하수구에는 찌꺼기와 쓰레기들이 버려진다.

난 손이 뒤로 묶여 있었다.

줄을 느슨하게 묶어서, 이리저리 몇 번 비트니 풀어버릴 수 있었다. 몸에 온갖 오물이 묻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주변사람들이 내게서 심한 악취를 맡을 거 같았다.

하수구의 둑에 걸터앉았다.

온몸에서 통증이 느껴졌지만, 걷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노들을 덮고 있는, 플라스틱의 돔 너머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윤슬이 보였다.

아주 오랜만에 윤슬을 봤다. 윤슬이 있다는 사실조차도 잊고 있었다.

윤슬엔 바람에 흩날리는 먼지만 가득했다. 윤슬엔 제대로 햇빛도 비치지지 않았다. 노들의 빛이 닿는 곳까지만 보였다. 나머지 부분의 윤슬은 거대한 어둠에 짓눌려 있었다.

손으로 몸의 이물질을 대충 닦아냈다.

사내의 말대로, 상처는 없었다. 고통만 남아있었다. 고통이 기억과 통증의 잔영으로 몸과 마음에 새겨져 있었다.

꿈을 꾼 것만 같았다. 하지만 꿈이 아니었다. 통증이 그걸 증명해줬다.

“내가 아니면 노들의 사람들이 살기 힘들 거라는 약간의 과대망상이 포함된 욕심이 문제일지도 몰라. 내가, 또, 그분이라는 분이 그렇게까지 나서지 않아도 세상은 알아서 잘 굴러가.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게 모두를 위해서 더 나을지도 몰라.

내가 한 일도 지나친 일이었는지 모르지. 내 행위가 노들의 안정성을 훼손하는 일이므로 응징을 받아야 한다면, 나도 할 말은 없어. 누리사의 주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나로 인해 피해를 입었을지도 몰라.”

하수구의 둑에 걸터앉은 채 혼잣말을 했다. 나도 그들을 닮아버린 것만 같았다.

하수구를 따라서 걸었다. 간혹 하수구에서 올라온 퇴화자들과 마주쳤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무심히 지나쳤다.

50분 정도를 걸었지만, 일반인이나 진화자는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우리 집이 있는 8구역까지 왔다. 주로 일반인들, 진화자들이 거주하는 곳이다.

심호흡을 했다.

사람들은 나를 노골적으로 피했다. 손가락질을 하기도 하고, 비웃음을 흘리면서 지나가기도 했다.

고개를 숙이고, 집을 향해서 걷기만 했다.

집으로 들어가도 될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봤다.

공중광고판이 허공에 떠 있었다. 누리를 선전하던 날개인이 다울이라는 신약을 먹으며 웃고 있었다.

 

다울이 어떤 약인지 알고 싶어서, 웹페이지에 ‘다울’이라는 단어를 넣고 검색을 했다.

“다울은 누리로 인한 육체변형을 억제하는 약이에요. 다울을 먹으면 당신은 육체변형으로부터 안전해요.”

허공광고판에서 봤던 광고의 영상이 나왔다.

다울의 제작사도 누리사이다. 다울은 누리의 동생뻘쯤 되는 약이다. 누리를 먹으면 다울도 먹어야 한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이제 누리를 먹고, 다울도 먹어야만 한다.

누리사의 주가는 더 치솟았다. 다울이 판매된 이후로, 노들의 위원회에 대한 지지율도 높아졌다.

이 선생님과 내가 다울의 등장에 어느 정도 기여한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다울이 과연 바람직한 대안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것은 새로운 누리인지도 모른다. 다울은 누리로 인해 육체변형에 걸린 사람들을 위한 진통제에 불과하다.

언젠가 우리는 다울로 인한 또 다른 육체변형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다울로 인한 육체변형을 억제하기 위해서, 또 다른 신약을 먹어야 할지도 모른다.

내 개인용 웹페이지에 글을 올렸다. ‘두 달 뒤에 인공육체를 착육하고, 달의 노들로 떠날 계획이다. 한동안은 달의 노들에서도 누리와 다울을 먹으며 살겠지만, 박테리아를 기초로 해서, 상추나 돼지 같은 동식물을 복원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것이다.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 달의 노들에서 당신과 당신의 아이들을 위해서, 당신이 원하는 미래를 함께 꿈꾸고 싶은 사람은 연락을 달라.’는 내용이었다.

서른 명의 사람들이 웹으로 연락을 해왔다. 어린 고아부터 퇴화자들, 다섯 명의 정상인인 가족, 몇 명의 진화자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나와 함께 달의 노들로 떠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무엇보다 반갑고, 다행스러웠던 것은 그중에 바이오테크놀로지 전문가가 있었다는 점이다.

 

‘그분은 실존하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을 거 같아.’

우주캡슐에 앉아서 멀어져가는 지구를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카랑’이라는 비밀조직이 실제로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분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분은 누리일 뿐일지도 모른다.

웹을 통해 모은 서른 명의 사람들과 함께 ‘달로 이주’라는 정부의 계획에 참여했다.

우리는 총 6대의 우주캡슐에 5명씩 나눠 탔다.

달의 노들로의 이주는 아직 초기단계다.

하지만 지구는 인구가 임계수치에 도달했기에 때문에, 노들 정부가 달로의 이주를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다.

달의 노들에는 위원회도, 행정체계도 없다. 그저 살만하고 한적한 동네 수준이다.

우리가 달의 노들로 떠나기 전부터, ‘노들 그리고 서울’의 정부도 우리의 계획을 알고 있었다.

이명한 박사님에 대한 나의 글로 내가 꽤 유명해진데다가, 누리사가 누리의 부작용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그것을 막는 신약인 다울도 내놓은지라, 노들의 정부는 우리에게 지원도 약속했다. 그 약속은 지금도 잘 지켜지고 있다.

방해공작이 또 있을 것이라는 우려와는 달리 또 다른 위협은 없었다.

노들의 정부는 우리의 프로젝트에 대해서 은근히 기대마저도 하고 있다. 영향력이 너무나 커져버린 누리사를 견제하기 위한 정치적인 이유도 있는 거 같다.

하지만 그건 나완 상관없는 일이다.

우주캡슐의 둥그런 좌석에 푹 파묻혔다. 여유로움 속으로 별빛이 흩어졌다.

눈을 감았다.

무한함수 그래프가 나타났다. 무한함수 그래프의 부드러운 곡선을 따라서, 긴 미끄럼을 탔다.

영원히 지하로 내려앉을 것만 같은 어둠속으로 빠져들었다.

가장 밑바닥에 도달했을 때, 난 우주에서 가장 말랑말랑하고 탄력적인 물질로 변했다.

영원히 튀어 오를 것처럼, 통통, 위로 튀어 올랐다.

 

달의 노들로 이주한 후, 처음으로 지구에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영상을 만들었다.

“이건 배추와 무에요. 이제 곧 고추도 복원할 수 있어요. 그러면 김치를 만들 생각이에요. 김치를 만들기 위해서 아주 오래된 자료들도 살펴보고 있어요.”

나래방송사와는 프로그램도 제작하기로 했다. 우리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성과와 우리의 일상이, 주기적으로 방송을 타고 지구로 전달될 것이다.

나의 목표는 지구로 돌아가는 것이다.

지구의 노들을 포기하고, 우리만 ‘달의 노들’에서 오순도순 행복하게 사는 건 아닌 거 같다. 닭과 돼지, 소의 복원과 사육까지 성공하면, 이 기술을 가지고 지구로 돌아가는 게 우리의 최종적인 목표이다.

“다음 주에 고추의 복원을 완수할 수 있을 같아요.”

“몇 세대가 지나는 동안, 음식물을 전혀 먹지 않았기 때문에 위장이 많이 약해져 있을 거예요. 위장을 보호하는 특수한 점액물질도 만들어야 해요. 그 물질도 완성이 되면, 그땐 김치를 만들어서 먹자고요. 조촐한 시식회도 열고요.”

나래방송사와 함께 제작하는 프로그램에 우리가 지구로 돌아가기까지의 과정을 담을 것이다. 우리가 결코 우리만 잘 먹고 잘 사는 목표를 가진 게 아니라, 복원한 먹을거리와 식사문화를 갖고 지구로 돌아갈 것임을 지구의 사람들에게도 알린다면, 보다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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