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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플라시보 > 유독하고 매캐한, 조금은 중독성이 있는 단편 소설집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제인지 기억은 없지만 모 방송국에서 일주일에 한번 정도 단막극 형태로 해 주데 거기서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라는 제목의 드라마를 본 적이 있었다. 남자 주인공은 아마도 강남길씨 였었는데 억세게 운 나쁜 사나이의 하루를 그린 내용이었다.

김영하의 소설책은 나는 나를 파괴 할 권리가 있다와 검은 꽃 다음 이 책이 세 번째이다. 나는 나를...은 그저 그랬었단 기억이 있었고 검은꽃은 좋긴 했지만 뒷심이 좀 딸리는 소설이라는 느낌이 들었었다. 아니 뒷심이 딸린다기보다는 꼭 종영을 앞둔 인기드라마들이 흔히 그렇듯 자신이 벌여놓은 스토리 수습이 되질 않아서 어떻게든 끝을 내야겠다고 작심한듯이 보였었다.

이 책은 단편집인데 총 9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단편별로 나누어서 감상기를 적어보겠다.

1. 사진관 살인 사건 : 한 사진관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는데 죽은 남자의 아내와 그의 정부를 의심했던 수사관은 끝에가서 사진관 남자가 외도를 하는 다방레지의 기둥서방이 홧김에 죽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무척 짧지만 나는 이 안에 남녀관계에 관한 모든것이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사진관집 여자와 사진을 맡기다가 관계를 가지게 되는 한 남자. 그들은 여자의 남편을 죽이지 않았지만 혹시라도 자신들의 불륜으로 인해 의심을 받게 될까봐 걱정한다. 혹시라도 나중에 밝혀지면 불리해질까봐 어느정도 자신들의 사이를 털어놓기는 하지만 마지막까지 솔직하게 털어놓지는 않는다. 특히 남자가 그런 상황에서 얼마나 비겁해 질 수 있는지를 잘 표현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아홉개의 단편중에 가장 재밌었다.

2. 흡혈귀 : 이건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의 연장선상에 있다. 작가 자신이 직접 주인공이 되고 그 글을 읽은 한 여자가 편지를 보내오면서 얘기가 시작된다. 픽션인지 넌픽션인지 일부러 경계를 모호하게 한 것이었는데 픽션이라고 생각하지만 왠지 넌픽션이라고 믿고싶은 소설이다.

4. 바람이 분다 : 불법 복제 디스크를 파는 남자가 어느날 여직원을 고용하게 된다. 사무실이 집이고 집이 사무실인 그곳에서 충분히 예견된것 처럼 둘은 연인사이가 된다. 하지만 여자는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인물이다. 결혼을 한 것인지 다른 남자가 있는것인지 조차 이 여자는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주인공은 나중에 진실을 알게 되지만 그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 왜냐면 주인공은 이미 그 여자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3.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 아까도 언급했다시피 억세게 운나쁜 남자의 하루이다.

5. 피뢰침 : 벼락을 맞고도 살아남은자들의 모임에 관한 이야기이다.

5. 비상구 : 아무 생각없는 스물한살짜리 남자의 한심한 인생얘기다. 별로 나쁘지는 않지만 결국에는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얼마전에 읽은 정이현의 낭만적 사랑과 사회에도 이것 비슷한 단편이(단 주인공이 여자다) 있는데 두 가지가 꼭 셋트같다.

7.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 당신의 나무(9) : 이 두가지를 같이 언급하는 이유는 서로 많이 닮아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둘 다 남자주인공이 여행을 하고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되짚어보는 좀 정적인 소설이다.

8. 고압선 : 과거에 사랑했던 여자를 다시 만나서 사랑하게 되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여자를 사랑하면 할수록 점점 희미해지다 마침내는 투명인간이 되어 버린다.

끝으로 김영하의 이 소설속에 등장하는 사랑에 대한 얘기를 할까 한다. 사랑얘기라고 보지 않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나는 몇몇개의 단편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사랑에 관한 얘기라고 생각한다. 김영하가 그리는 사랑은 절대 아름답지 않고 가끔은 추하기까지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걸 보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않는다. 내가 생각할때 진짜 사랑도 그런것 같다. 사실 영화에서 보는 그런 아름답고 이쁜 사랑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사랑이야 말로 가장 치사하고 추잡스럽지 않나 싶다. 나는 김영하의 소설속에서 사랑이라는 환상이 사라지고 대신 현실이 징그럽게 앉았는 모습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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