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플라시보 > 보라색 비가 내리는 책
섀도우 오브 유어 스마일
김윤아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1년 11월
평점 :
절판


김윤아. 그녀는 자우림의 보컬이다. 그리고 약간은 어둡고 우울하다. 원래 보라색이 또 비가 그렇지 않던가... 몽상가와 비관론자들에게는 그 이상의 색. 또 그 이상의 날씨는 없다.

그녀의 노래를 들으면 삶의 처절함은 없지만 센티멘탈틱한 삶의 고뇌는 있다. 즉 연탄불이 꺼져서 방이 추운건 아니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서 맘이 얼어붙을수도 있다는 것이다. 늘 삶과 딱 달라붙어있는 현실적인 고민들은 아니지만 조금 상황이 편할때 적당하게 우울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해주는 노래들이다. 그런 그녀가 책을 냈다. 그녀는 가사도 몹시 예술로 쓰기 때문에 책은 보나마나 잘 썼을것이라 생각했고 고맙게도 그녀는 그런 바램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녀의 글은 신선하다. 그렇다고 해서 오렌지쥬스를 선전하는 여자 아해의 얼굴같은 신선함은 아니다. 오히려 곰팡이가 핀 오렌지의 오묘한 색에서 나오는 신선함과 더 가깝다.

아주 글을 잘 쓰는 그녀를 보면서 생각했다. 세상은 불공평하다고...그녀는 아름답고. 그녀는 노래를 잘 부르고. 그녀는 노래도 잘 만들고. 그녀는... 그녀는...글 까지 잘 쓰다니...그녀의 노래를 좋아했던 팬이었는데 이 책을 사고 나서는 그녀의 글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오히려 함께 있는 음반이 가릴 정도로 그녀의 글 솜씨는 뛰어나다.

*플라시보의 스무자 평 : 신은 공평하려고 생각이나 하시는 걸까?
*함께하면 좋을 음식 : 담배. 술(맥주보다는 위스키가 좋고 와인보다는 꼬냑이 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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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플라시보 > 야구를 알아도, 야구를 몰라도 재밌는 책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기까지 두 가지의 고민을 했었다. 하나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재밌다고, 좋다고 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믿음이 안가는 (참으로 이상한 성격이긴 하지만) 무언가가 있었고, 또 하나는 내가 야구의 '야'자도 모른다는 것이다.(심지어 몇명이서 하는 경기인지도 모르며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도 매한가지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눈여겨 보면서도 선뜻 구입해서 읽지를 못했다. 남들 다 읽었다는 유명한 책 중에서는 나랑 코드가 맞지 않은 책들이 유난히 많았으며 (치즈의 위치 운운하는 책이나 파*포* 같은 혹은 스스로를 귀엽다 생각하는 아해가 쓴 책들이랄지) 이 책 역시 그렇지 않을까 하는 걱정. 그리고 야구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며 알고 싶지도 않은 내가 야구에 관한 책을 읽는다는 것이 과연 가능하기나 할까 하는 의문이 심하게 들었었다. 그런데 나와 가장 친한 친구 이모양이 이 책을 꼭 읽어보라며 추천을 했었다. 이모양으로 말할것 같으면 가끔은 나와 코드가 안맞을때도 있지만 그래도 비교적 그녀가 추천한 영화나 음악, 책 중에서 실패할 확률은 10% 미만이므로 나는 그녀를 믿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뭣보다 '야. 야구 몰라도 이거 재밌어'라는 말이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과연. 이 책은 심하게 재밌었다. 한 페이지당 최고 5회에서 최소 1회는 '푸하하' 하고 웃게 만들었으며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질깃질깃하게 웃기는 맛이 있는 것이. 재미에 이 한평생 걸고 사는 나에게는 딱인 책이었다. 내가 쓴 마이리스트 중 웃다가 죽으리 라는 리스트가 있는데 거기에 넣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심하게 재밌고 웃기는 책이다.

삼미 슈퍼스타즈는 실존했던 프로 야구팀이다. 야구팀하면 삼성 라이온즈, OB 베어스, 한화 이글스, 청보 핀토스 정도만 아는 나에게는 물론 단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팀이다. (청보 핀토스의 전신이었다고 한다.) 그 팀은 무서울 정도로 야구를 못했으며 기록 또한 무시무시했다. 하지만 93년도에는 한 선수의 노력으로 잠깐 태풍의 눈으로 등장한적이 있었으나 다음해에 역시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만연 꼴찌팀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후 삼미 슈퍼스타즈는 사라졌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인 소년은 인천에 살고 있으며 인천을 연고로 둔 삼미 슈퍼스타즈의 어린이 팬클럽이 된다. 그의 인생은 순탄했으나 삼미 슈퍼스타즈의 행보는 순탄치 않았다. 팀이 없어지고 야구와는 무관한 인생을 살던 소년은 어른으로 자라고 대학생을 거쳐 직장인이 된다. 어린시절과는 다소 다른 복잡다난한 인생을 살던 그는 실직을 계기로 다시 삼미 슈퍼스타즈의 팬클럽에 가입한다. 물론 이미 없어진 팀이라서 그의 친구 한명과 삼미 슈퍼스타즈를 숭배하는 일본인 한명. 그리고 대체 왜 가입했는지 모를 떨거지들과 함께. 그들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된다.

뭐든 이겨야 하는 세상. 남보다 반보라도 앞서야만 안심이 되는 세상에서 삼미 슈퍼스타즈와 그 마지막 팬클럽은 어쩌면 이 세상에 농담같은 존재들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늘 모든 사람들이 다 선두에 서서 1등 자리를 먹을수는 없다. 누군가가 일등이면 꼴찌도 있어야 하고. 누군가가 열심히 살면 또 누군가는 나무늘보같은 유유자적한 삶을 살 수도 있는 것이다. 소년은 삼미 슈퍼스타즈와 자신의 인생을 통해 그점을 배운다. 벌서듯 살지 않아도 세상은 살 수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어떻게 보면 삼미슈퍼스타즈와 그 팬클럽은 나를 닮은것 같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팍팍하게 벌서듯 사는 삶이고 그래서 나는 언제나 1등이나 주류로 부터는 한참 떨어진 삶을 살았다. 중학교때 부터 공부에 손을 놓기 시작해서 고등학교때는 내신성적 15등급이라는 믿을 수 없는 성적을 거두었고 운이 좋게도 수능이라는 제도가 생겨서 나는 간신히 어정쩡한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 역시 머리 싸매고 공부해야 하는 곳이 아니라 출석만 잘 해도 장학금은 따놓은 당상인 할랑한 과에 들어갔고 교수가 무지하게 봐 줬지만 나는 출석일수가 너무나 턱없이 모자라서 유급생이 되었고 과 최초로 유급생이지만 졸업을 했다. 물론 열심히 다녀서는 아니다. 교수가 불쌍해서 졸업을 시켜 준 것이다. 실제로 나는 과목 하나를 누락하는 바람에 (단 한번도 출석과 시험을 보지 않았다. 그 사실을 졸업할때야 알고 정말 헉겁하는줄 알았다.) 절대로 졸업을 못할 위기에 처해 있었으나 지도교수가 담당 교수님을 만나 사정사정해서 나는 얼치기로 졸업을 했다. (지도교수님은 내 에반게리온 비디오 시리즈를 빌려가서 돌려주지 않고 있지만 이러한 이유로 나는 그 교수님을 용서하고 있다.)

이런 나의 할랑한 삶은 어른이 되어도 달라지지 않았다. 거짓말처럼 친구 따라 갔다가 방송국에 취직을 하고 목소리만 멀쩡하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놀맨놀맨 살았다. 그리고 지금도 역시 한가하고도 나른한 삶을 유지하고 있다. 힘들고 어려운일은 절대 하지 않으며 오직 편하게 돈을 버는 것 만이 나의 최대 관심사이다. 돈을 더 벌고 힘든일을 할래라고 물으면 나는 고개를 저을 것이다. 그건 내가 추구하는 할랑한 삶에서 너무나 벗어난 짓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주인공이 대기업에 들어가서 신나게 뺑이 치다가 어느날 갑자기 퇴직을 강요당한 것 처럼. 내가 그런 삶을 견뎌내거나 성공적으로 끌고 나갈 확률은 희박하다. 남들은 몰라도 나는 그 사실을 잘 안다.

이 책에서 단 한가지 불만이 있다면 뭐랄까 주인공의 대학 이전까지는 논픽션 냄새가 나고 상당히 재미가 있는데 대학 시절부터는 픽션이 강하게 느껴지면서 동시에 별로 재미는 없어진다. 이건 아마도 작가의 상상력이 조금은 후달리는 것에서 오는 피할 수 없는 일인것 같다. 실제로 이야기꾼이라 불리우는 작가들 중에서 상당한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에 의존한다.(물론 아닌척 한다.)내가 보기에 정말 대단한 작가들은 경험을 재밌게 우려내는 작가들도 물론 그렇지만 그보다 생판 처음부터 모든걸 상상해서 써 대는 작가들이다. 그들이야 말로 진정한 이야기꾼이라 불리울 만 하다. 그러나 나는 재미만 있다면 픽션이건 논픽션이건. 작가의 경험이건 머리속에서 창조된 이야기건 별로 가릴 마음은 없다. 그냥 그렇다는 거다.

하지만 다소 주춤거렸던 중후반부와 달리 끝 부분에서 마무리가 아주 깔끔하다. 끝처리가 너저분하면 꼭 단터진 원피스 자락처럼 추한데 이 책은 오버로크로 잘 마무리를 했다. 그래서 다소 재미가 처지던 부분이 쉽사리 용서가 된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아주 훌륭한 책이다. 뭐 지식을 준다던가 뭔가를 깨닳게 하려는 부분 (실제로 작가는 뭔가 전하려고 했지만 나는 별로 느낌이 없었다. 너무 재밌는 탓에 작가의 가르침 으로 재미가 반감되는게 싫었나보다.) 이 크게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재밌다는 것은 얼마나 큰 미덕인가!

세상을 재미로만 살 수는 없다랄지 혹은 재미가 밥 먹여 주느냐 같은 소리를 많이 듣기는 하지만 그래도 재미는 여전히 중요한 문제인것 같다. 재미 하나로 승부를 걸어서 사람을 이토록이나 유쾌하게 만드는 이 책은 분명 성공한 소설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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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플라시보 > 유독하고 매캐한, 조금은 중독성이 있는 단편 소설집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제인지 기억은 없지만 모 방송국에서 일주일에 한번 정도 단막극 형태로 해 주데 거기서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라는 제목의 드라마를 본 적이 있었다. 남자 주인공은 아마도 강남길씨 였었는데 억세게 운 나쁜 사나이의 하루를 그린 내용이었다.

김영하의 소설책은 나는 나를 파괴 할 권리가 있다와 검은 꽃 다음 이 책이 세 번째이다. 나는 나를...은 그저 그랬었단 기억이 있었고 검은꽃은 좋긴 했지만 뒷심이 좀 딸리는 소설이라는 느낌이 들었었다. 아니 뒷심이 딸린다기보다는 꼭 종영을 앞둔 인기드라마들이 흔히 그렇듯 자신이 벌여놓은 스토리 수습이 되질 않아서 어떻게든 끝을 내야겠다고 작심한듯이 보였었다.

이 책은 단편집인데 총 9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단편별로 나누어서 감상기를 적어보겠다.

1. 사진관 살인 사건 : 한 사진관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는데 죽은 남자의 아내와 그의 정부를 의심했던 수사관은 끝에가서 사진관 남자가 외도를 하는 다방레지의 기둥서방이 홧김에 죽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무척 짧지만 나는 이 안에 남녀관계에 관한 모든것이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사진관집 여자와 사진을 맡기다가 관계를 가지게 되는 한 남자. 그들은 여자의 남편을 죽이지 않았지만 혹시라도 자신들의 불륜으로 인해 의심을 받게 될까봐 걱정한다. 혹시라도 나중에 밝혀지면 불리해질까봐 어느정도 자신들의 사이를 털어놓기는 하지만 마지막까지 솔직하게 털어놓지는 않는다. 특히 남자가 그런 상황에서 얼마나 비겁해 질 수 있는지를 잘 표현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아홉개의 단편중에 가장 재밌었다.

2. 흡혈귀 : 이건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의 연장선상에 있다. 작가 자신이 직접 주인공이 되고 그 글을 읽은 한 여자가 편지를 보내오면서 얘기가 시작된다. 픽션인지 넌픽션인지 일부러 경계를 모호하게 한 것이었는데 픽션이라고 생각하지만 왠지 넌픽션이라고 믿고싶은 소설이다.

4. 바람이 분다 : 불법 복제 디스크를 파는 남자가 어느날 여직원을 고용하게 된다. 사무실이 집이고 집이 사무실인 그곳에서 충분히 예견된것 처럼 둘은 연인사이가 된다. 하지만 여자는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인물이다. 결혼을 한 것인지 다른 남자가 있는것인지 조차 이 여자는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주인공은 나중에 진실을 알게 되지만 그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 왜냐면 주인공은 이미 그 여자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3.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 아까도 언급했다시피 억세게 운나쁜 남자의 하루이다.

5. 피뢰침 : 벼락을 맞고도 살아남은자들의 모임에 관한 이야기이다.

5. 비상구 : 아무 생각없는 스물한살짜리 남자의 한심한 인생얘기다. 별로 나쁘지는 않지만 결국에는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얼마전에 읽은 정이현의 낭만적 사랑과 사회에도 이것 비슷한 단편이(단 주인공이 여자다) 있는데 두 가지가 꼭 셋트같다.

7.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 당신의 나무(9) : 이 두가지를 같이 언급하는 이유는 서로 많이 닮아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둘 다 남자주인공이 여행을 하고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되짚어보는 좀 정적인 소설이다.

8. 고압선 : 과거에 사랑했던 여자를 다시 만나서 사랑하게 되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여자를 사랑하면 할수록 점점 희미해지다 마침내는 투명인간이 되어 버린다.

끝으로 김영하의 이 소설속에 등장하는 사랑에 대한 얘기를 할까 한다. 사랑얘기라고 보지 않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나는 몇몇개의 단편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사랑에 관한 얘기라고 생각한다. 김영하가 그리는 사랑은 절대 아름답지 않고 가끔은 추하기까지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걸 보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않는다. 내가 생각할때 진짜 사랑도 그런것 같다. 사실 영화에서 보는 그런 아름답고 이쁜 사랑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사랑이야 말로 가장 치사하고 추잡스럽지 않나 싶다. 나는 김영하의 소설속에서 사랑이라는 환상이 사라지고 대신 현실이 징그럽게 앉았는 모습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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